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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리카팕 Sep 07. 2022

아저씨 발

#구경거리로써 흰머리

얼마 전 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다급하게 내리려다가 지하철 문에 발이 끼어버린 아저씨를 봤다. 나만 본 것이 아니다. 스몸비처럼 핸드폰을 보던 시선들이 일제히 아저씨의 발을 향했다. 위태로웠다. 혹시라도 아저씨의 발이 낀 채로 지하철이 출발할까 모두 긴장하며 상황을 지켜봤다. 다행히 아저씨의 발과 신발 모두 출발 전에 빠져나갔고, 아저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군중 사이로 스며들어 걷기 시작했다. 아저씨를 향하던 시선들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사람의 시선은 본능적으로 더 역동적이고 더 독특한 구경거리를 향한다. 자기 손안에 자기가 고른 자기 입맛에 꼭 맞는 구경거리를 보고 있다가도. 그것은 풍자가 소개하는 또간집 일 수도 있겠고, 슈카월드가 될 수도 있고, 보나 마나 속 터지는 뉴스일 수도 있고, 뉴진스의 청량감 넘치는 무대일 수도 있고, 노련미 터지는 소녀시대의 영상일 수도 있고, 웹툰일 수도 있고, 보정 중인 본인의 셀카일 수도 있다. 그러다가도 무언가 새삼스러운 것이 나타나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선이 향하는 것이다.

나는 자주 아저씨의 발이 된 기분이다. 정확하게는 내 하얀 머리가 아저씨의 발이 된 기분이다. 다른 곳에 있던 시선들이 별안간 내 정수리를 향하게 되면 어서 빨리 발을 빼고 싶다. 어서 풍경으로 스며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시선들의 방향이 본능적이라 악의적이지 않다는 것,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두 차례 이상 생각의 공정을 걸쳐 시냅스들이 하이파이브를 한 결과다. 스스로 주눅 들지 않도록 학습된 과정의 산물이라는 것이 스스로 연민에 젖게 하기도 한다.

다른 한 편으로는 내 흰머리 역시, 새삼스러운 것을 향하는 시선만큼이나 내 몸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부분이다. 이렇게 태어난 것을 어째? 혹여나 나의 흰머리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기쁜 마음으로 신나게 이야기해줄 의향이 다분하다. 기꺼이. 나의 하얀 머리를 받아들인 지 오래라고. 하지만 새롭게 마주하는 모든 시선들을 붙잡아 설명할 수 없는 노릇이라 참 피곤하다.

그럼 내가 다시 검은색으로 염색을 하냐? 아니지. 어림도 없지. 어림 반푼 어치도 없다! 나는 풍경에 스미는 방향보다는 흰머리의 에리카팕이라는 대명사로 굳어져서 나를 바꾸지 않는 방향을 선택했다. 그러니까 나는 유명해지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딘가에 끼인 위태로운 상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상태니까. 아저씨 발이 아니라 내 머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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