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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기자 Apr 23. 2018

욱하는 사람에게 쿨하게 대처하는 법

 미선 씨는 오늘도 출근하자마자 부장의 얼굴 상태를 살피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사무실은 독서실처럼 적막하고 저 멀리서 누군가의 마른기침 소리는 바로 옆자리 인양 가깝게 들려온다. 무거운 사무실의 공기는 마치 죄인이라도 된 듯 미선 씨를 짓누른다. 부장이 왠지 기분이 좋아 보이는 날은 미선 씨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그런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상사의 별로 웃기지도 않은 농담에도 크게 웃는다. 혹여 부장의 기분이 저기압인 날은 혹시 자신이 실수라도 한 것은 아닌지 주눅이 들어 하루 종일 안절부절못한다.
  
 미선 씨가 이토록 눈치를 보는 이유는 시도 때도 없이 욱하는 상사 때문이다. 직장 생활이 꽤 오래된 미선 씨지만 얼마 전 새로 온 부장은 좀처럼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대부분의 상사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정도가 다른 '욱'을 갖고 있었고 어떤 패턴을 보였지만 불시에 욱하는 상사는 그녀의 몸과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날도 미선 씨가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냈다고 안도하는 순간, 상사는 무방비 상태에서 작정하고 고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쭈뼛쭈뼛 서고 마치 온몸의 피가 멈춘 듯했다. 그녀는 언어 폭력이 신체 폭력보다 더 심하다는 말을 새삼 실감한다.

 

  세상에는 사람들의 무례한 '처사'로 인해 남모르게 속을 썩고 있는 수많은 미선 씨가 있다. 우리 주변에는 나이, 지위, 돈으로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천박하고 무례한 사고방식이 도처에 존재한다. 이는 소위 '갑질'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무례하고 '갑질'하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증상 중 하나가 바로 '욱'이다. 요즘 말하는 분노조절장애가 여기에 해당한다. 신문 지상에서 우리는 욱하는 심정에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다는 기사를 읽을 때가 있다. 자기 내면에서 올라오는 분노를 자제하지 못해 다른 사람에게 무례를 넘어 몰상식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화병'처럼 '욱' 역시 한국에만 있는 말일 것이다. 우리는 가정은 물론 학교, 직장에서 욱하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욕설을 하기도 하고 여기서 더 나아가 때로는 폭력으로 이어질 때도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이 욱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자신보다 사회적 약자에게 가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자기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다고 생각하거나 경제적 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거나 나이가 적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가해진다. 요즘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도 광고주와 광고대행사를 갑을 관계로 상정하고 자신의 성질과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욱하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다.


 또 물리적으로 힘이 세다고 생각하는 남성이 여성에게 욱하는 나머지 위해를 가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이는 주로 가정 폭력에서 발생한다. 자신 내면의 화나 분노를 억누르지 못해 아내나 자식에게 폭력을 가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성격 탓으로 돌리기에는 가족 구성원에게 끼치는 정신적 피해가 너무 크다. 또한 폭력 가정 하에서 자란 아이들은 심리적인 장애나 심한 경우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


 직장 상사들은 주로 부하들에게 욱하는 성질을 부리는 경우가 많다. 본인 나름의 가르치는 방식이라는 말로 합리화를 하지만 쓸데없이 신경질을 내거나 소리 지르고 윽박지르는 경우 그 상사에 대한 적개심만 커질 뿐이다. 물론 월급이 직장 내 인간관계의 부당함과 어려움을 견디는 대가라는 말도 있지만 본인의 욱하는 성질 하나 다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리더가 됐다는 게 실망스러울 때가 적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욱하는 사람들의 문제는 자신 마음 속 화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는 명백한 본인들의 잘못인데도 점점 역치가 높아져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는지 모른 채 점차 '괴물'로 변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욱하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쿨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사실 만일 다른 사람이 나에게 욱한다면 그 순간 당황스럽다. 이유가 없다면 더욱 그렇다. 그들은 자신들의 방식을 강요하고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는 것을 주장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일단 그런 공격이 시작된다면 전쟁터에서 갑옷 입고 방패 들고 머리에 보호구를 쓰듯이 최대한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심리적으로, 물리적으로 최대한 다치지 않도록 말이다.


 포탄이 쏟아지는 순간은 소나기처럼 그 순간은 피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아무리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다닌다고 해도 그 순간 바로 사표를 내고 회사를 그만두기는 쉽지 않다. 때문에 피할 수 없는 비라면 적당히 맞은 뒤 바로 안전한 곳으로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일단 최대한 자신이 다치지 않는 곳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자. 왜 하필 오늘 비가 오는지 왜 하필 오늘 우산을 갖고 오지 못했는지 자신의 부주의함을 탓할 필요는 없다.


 일단 안전한 곳으로 피했다면 더 이상 자신을 자책하거나 힘들어하지 말자. 특히 욱하는 사람들의 페이스에 말려 스스로를 인민재판대 위에 올려놓지 말자. 그들이 틀렸는지, 당신이 틀렸는지는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사람의 행동이 무조건 맞고, 내가 무조건 틀릴 수는 없다. 시시비비는 시간이 가려주는 것이다. 겉으로는 그런 액션을 할지언정 바로 내가 틀렸다고 인정하지는 말자.

 

 마음이 안정됐다면 이제 제3자의 시선에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찬찬히 살펴보자. 상대의 지적에 수긍이 가는 부분이 있다면 수용하면 되지만,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면 자존감에 상처를 입을 필요는 없다. 이는 상대방의 심리적인 문제에 기인할 가능성도 있다. 대한항공 갑질 사태 즈음에 우연히 범죄심리를 연구하는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의 강연을 듣게 됐는데 그는 대부분의 범죄 사건이 어린 시절 부모와의 애착 손상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인간의 정서 발달은 친밀감과 상호 애정이 중요하고 이는 유아기의 주요 애착 대상인 어머니에 의해 좌우된다. 어린 시절 아이가 도움을 처했을 때 엄마의 즉각적 반응은 기본적인 안도감과 신뢰감을 형성한다. 철이 들기 훨씬 이전에 겪은 체험을 통해 뇌 깊숙히 인식한다. 즉 애착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경우 인지적 사회적 발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욱하는 것이 범죄와 직결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분노조절장애는 상대방의 심리적인 상처나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꼭 성장 과정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미처 파악할 수 없는 본인 개인의 정서적인 문제에 기인할 가능성도 있다. 때문에 당신의 소관이 아닌 일 때문에 불필요하게 위축되거나 주눅들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제3자의 시점에서 찬찬히 따져본 뒤 억울하거나 부당하다고 생각된다면, 또 그런 일이 자꾸 반복된다면, 일시적인 일이 아니고 피할 수 없는 장기적인 관계라면 차분하게 기회를 봐서 이야기를 하는 편이 났다. 물론 이때는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건조하고 객관적으로 팩트만 말하고 자리를 피해야 한다. 객관적으로 피해를 입증할 증거가 있다면 더 좋다. 하지만 양질의 사람이라면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인정하고 사과할 수도 있겠지만 감정을 자극했다가는 또다시 욱할 수 있는 불상사가 벌어지기도 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만일 당신의 컨트롤 밖의 사람이라면 적당한 거리를 두는 편이 낫다. 대부분 앞서 말한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원인에 의해 형성된 성격은 가족도 바꾸기 쉽지 않기 때문에 타인이 지적한다고 해서 바꾸는 경우가 많지 않다. 다만 사람과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더 상처받을 수 있으므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본 브런치 9번째 글 '착한 사람들은 왜 더 많이 상처받을까' 참조) 이는 단순히 관계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를 보호하고 지키기 위한 자기 방어에 가깝다.


 오늘 잘 넘긴 미선 씨는 언제 욱할지 모르는 상사 때문에 불안해하는 중이다. 하지만 내일은 그런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더 이상 당황하거나 상처받지 않고 당당하고 쿨하게 상황을 헤쳐나가기 바란다. 결국은 직장 생활도 상사도 다 지나가는 과정이고, 대부분의 직장 관계는 회사를 그만두는 순간 사라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마음 건강을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세상의 모든 미선씨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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