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도 오매불망 가고 싶던 여행지에 가면 주책맞게 눈가가 촉촉히 젖어왔다. 가끔 가슴 저 밑바닥에서 뭉클한 것이 올라올 때도 있다.
2년전 이맘 때 어느 늦은 밤, 영국 런던 히드로 공항에 내렸을 때도 그랬다. 드디어 다람쥐 쳇바퀴처럼 숨막히는 한국 생활을 뒤로 하고 왔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멀리서 007 영화에서 보던 MI6 건물과 짙은 어둠속에서도 웨스터민스터 사원이 눈에 들어오자 새로운 시작에 가슴 한켠이 떨려왔다.
아마 여행지에 가서 눈물이 나는 것은 그동안 일상에 매몰됐던 자신에 대한 연민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동안 자의반 타의반 자신을 벼랑끝까지 내몰았지만, 이제야 자신의 내면을 보듬기 시작했다는 데 대한 일종의 무의식적인 반응이다. 어쨌든 당신도 지금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다면 스스로에 대한 위로와 위안이 필요한 때라는 신호일 수도 있다.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것만으로도 누구나에게나 큰 의미를 준다. 자신이 살던 일상과의 단절, 즉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은 자신이 살던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가 살던 곳이 아니기에 그동안의 삶의 방식을 버려야할 때도 있다. 물론 그래서 더 새로워 좋은 반면 불편할 때도 있다. 그러면서 그동안 몰랐던 삶의 이면들을 깨닫기도 한다. 사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이 '생경함'에서 오는 색다름과 깨달음을 얻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저서 '여행의 기술'에서 "행복을 찾는 일이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면, 여행은 그 일의 역동성을 그 어떤 활동보다 풍부하게 드러내준다. 여행은 비록 모호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일과 생존 투쟁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삶이 어떤 건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 그 눈물은 치열한 경쟁에서 벗어난 데 대한 안도와 서글픔 중간쯤 어디 정도라고 해두자.
난생 처음 런던에서 6개월 간 살면서 처음에는 기쁨과 호기심으로 들떴지만 이내 그 뒤에는 불편함이 줄줄이 따라왔다. 이미지가 좋아 보여 덜컥 계약한 집은 방 한칸에 100만원을 호가할 정도로 비쌌고 이 마저도 다른 사람들과 주방과 화장실을 공유하는 '플랏 셰어' 방식 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화장실과 샤워실을 쓸 때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본다는 것은 적잖은 스트레스였다.
무엇보다 런던에는 오래된 집이 많아 방음 장치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화장실 시설도 역시 낙후된 경우가 많았다. 비싼 땅값 때문인지 집들이 찻길 옆에 바로 붙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내 방에서도 빨간 2층 버스에 탄 승객들의 옷차림이 훤히 보일 정도였다. 어느 날 밤은 쌩쌩 달리는 차소리에 심장이 벌렁벌렁거려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아침에는 아스팔트를 두드리는 경비용 기마대의 거친 말발굽 소리가 귓가를 때려왔다. 딱 길거리에 나앉은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한달 정도 소음에 익숙해질 무렵 또다른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옆방에서 꿈이 가수라는 이태리에서 온 플랏메이트가 '고음불가' 노래를 매일 밤 불러대기 시작했다. 인근 식당에서 밤늦게 까지 일하던 스무살 대학 신입생이던 그녀는 화장이 점점 짙어지더니 급기야 함께 일하던 남자 셰프와 눈이 맞아 연애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제집 드나들던 남자친구와 공동 식당에서 문을 닫고 애정행각을 벌이는 통에 한바탕 또 난리가 났다. 해외 생활에 지친 탓인지 심신이 불안정해 야심한 시각에 종종 노크를 하거나 컴컴한 복도에 앉아있던 악몽같은 여자 플랏메이트는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
그래도 런던 생활이 좋은 기억으로 남은 것은 생경함이 주는 새로움 때문이다. 수백년이 된 고풍스러운 건물들은 나를 오래된 영화 속 한장면으로 이끌었다. 도심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각종 갤러리와 뮤지컬 극장은 도시 전체에서 문화의 향기에 젖어있는 듯했다.
도심 속 푸르른 자연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어 땅이 아닌 하늘을 보게 만들었다. 틈만 나면 템즈강 벤치에 앉아있거나 인근의 하이드파크를 산책하면서 '멍 때리기'를 하는 것이 주요 일과 중 하나였다. 지금껏 기억에 남는 것은 화려한 것들 보다는 아주 사소한 것들이다. 낮과 밤, 비오는날의 템즈강의 전경, 하이드파크의 풀밭과 여왕 소유의 오리들. 공원 안에 있는 호수 근처에서 마셨던 플랫 화이트와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늘어진 버드나무 등등. 자연은 참 신기하다. 작년 여름 제주도의 바다와 숲도 그랬고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다 괜찮아"라고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과거에는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섭렵하고 돌아다니는 '주마간산'식 여행이 인기였지만 최근에는 기간이 얼마가 됐든 한곳에서 살아보는 방식으로 여행이 변화하고 있다. 지금과 다른 곳에서 느리게 호흡하면서 앞만 보고 달려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는 흔히 말하는 '허세'와는 거리가 멀다. 그곳이 어디든 자신을 찾고 삶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면 그것은 허세라기 보다는 삶의 반경을 넓히는 일에 가까울 것이다.
여행은 인생과 닮아있어서 어느 날은 마치 럭키박스를 여는 것 같은 짜릿함을 주지만 어떤 날은 '머피의 법칙'처럼 좋지 않은 일이 연이어 일어나기도 한다. 내집 안방도 아닌 해외에서 그런 일을 당하면 두려움이 엄습한다. 하지만 그럴 때면 어디선가 기적처럼 도움의 손길이 오곤 한다.
런던에서 포르투갈로 여행을 떠나던 날도 그랬다. 어쩌면 난데 없이 하룻밤 신세를 지겠다며 찾아온 지인은 머피의 법칙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말을 듣고 지하철을 타고 가려는 계획을 변경해 런던 루턴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탔고 고속도로에서는 교통 사고가 발생했다. 비행기 이륙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피가 말라가는데 버스는 길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같으면 사고 현장을 정리하고 교통 흐름을 원활히 할텐데 그곳 사람들은 그냥 무작정 기다렸다. 기사에게 따져봤지만 속수무책. 묻거나 따지는 승객도 별로 없었다. "내려서 뛰어 갈까?" 사람들은 차도에 내려서 세월좋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걸어가기엔 공항까지 거리가 너무 멀었다.
결국 비행기를 놓쳤지만 그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었다. 유럽의 저가항공사(LCC)들은 승객이 올때까지 찾고 기다려주는 '친절함'과는 무관했고 교통 사고 상황 역시 전혀 참작되지 않았다. 나는 다시 런던으로 돌아와 200파운드라는 거금을 들여 그 다음날 브리스톨 공항까지 기차를 타고 가 포르투갈을 가야했다. 그 당시에는 시간과 돈을 잃은 충격적인 경험이었지만 포르투갈의 아름다운 풍광을 더욱 잊지 못하게 된 이유기이도 하다.
유럽 여행 막바지에 친구와 의견 충돌을 빚어 결국 암스테르담에서 런던으로 빈털털이로 혼자왔지만 친분도 많지 않은 누군가 약속을 취소하고 마중을 나왔고, 노팅힐 카니발 축제에서 시위대를 연상케하는 축제 인파에 떠밀려 위험천만했지만 함께한 일행 덕에 안 좋은 기억을 빨리 지울 수 있었다. 여행은 이렇게 자신을 위험하고 위태로운 상황에 자발적으로 노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당시에는 아픈 기억이지만 지금 돌아보면 추억으로 자리한다.
대부분 여행의 목적을 물으면 '나 자신을 찾기 위해서'라는 답이 가장 많이 돌아온다. 다시 말해 여행은 사람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혼자 여행할 때는 나 자신과 외로움을 발견하는 순간이고 둘이라면 그동안 몰랐던 그 사람의 다른 생각과 면모에 당황할 수도 있다. 물론 감동을 받을 수도 있다. 집에서 지지고 볶고 싸우던 엄마를 태운 비행기가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내 메시지를 봤을 때 남몰래 눈물을 훔친 것을 엄마는 지금도 모를 것이다. 물론 그 이후에도 한동안 티격태격은 계속됐지만.
어떻게 보면 인생은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여행과 닮아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주어진 삶을 살아야하고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 속에서도 균형을 잡아야한다. 여행에는 만남과 헤어짐이 있듯이 인생에도 뜻하지 않는 고마운 만남이 있는가하면 생각지도 않은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다. 가끔은 동행자와 다툼이 발생할 수도 있고 아픈 기억으로 남지만 그만큼 인간의 속성에 대해 배우는 기회가 되기도 된다. 인생에서 아무리 힘든 시간이라도 버티면 그 시간들을 추억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
여행지에서 한가지 사건에 집착해 가던 길을 중도에 멈출 수 없는 것처럼 인생도 한가지 부정적인 사건에 매달려 집착하거나 감정을 쏟을 필요가 없다. 때로는 사람이 아니라 시간이 해결해 주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막다른 골목처럼 보이는 곳에서도 결국에는 길을 찾는 여행자처럼 우리는 인생을 여행처럼 긍정적으로 살 필요가 있는지도 모른다.
돈과 시간, 같이 갈 사람이 없다고 여행을 미루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나 역시 그중 하나였지만 어렵사리 떠난 모든 여행의 끝에는 크고 깨달음이 있었다. 혼자든 여럿이든, 국내든 해외든 돌아올 곳이 있는 것이 여행이라면 결국 깨닫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소중함과 주변에 대한 감사함이다.
지금 훌쩍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동안 삶을 돌아보고 자신에 대한 상처를 보듬기를 스스로 원하는 때가 온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어떤 장소로부터 돌아오자마자 기억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이 바로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생각하며 보낸 과거의 많은 시간이라고 했다. 어디론가 떠날 때 우리가 가장 얻고 싶은 것은 앞뒤가 꽉 막힌 사면초가의 지금 상황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인지도 모른다.
매일의 일상을 여행처럼 두근거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픈 기억은 빨리 털고 씩씩하게 새로운 길로 들어서는 성숙한 여행자처럼 말이다. 인생을 여행처럼, 여행을 인생처럼. 어차피 우리에게 주어진 삶 자체가 기나긴 여행일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