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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딸바보’들은 어디로 갔을까

by 은기자

말 그대로 '들불처럼' 번지는 미투 운동을 보면서 그동안 영 풀리지 않았던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맞춘 느낌이다. 그동안 성범죄 판결에서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심신 미약'이라는 말도 안되는 면죄부가 가해자에게 왜 그렇게 자주 주어졌는지, 왜 그렇게 관대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이제서야 알게 됐다. 법조계에서조차 그런 일이 만연하게 벌어졌으니 일종의 공범자 의식이 작용하지 말란 법이 없다.

 '관행적으로 벌어진 일', '서로 연애 감정이 있었다'는 식의 가해자들의 아전인수격의 변명을 보면서 얼마나 그동안 우리 사회가 얼마나 남성 중심으로 돌아갔으며 여성의 인권이 바닥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여성에 대한 성추행은 인권을 짓밟는 저열하고 무식한 범죄라는 죄의식이 그들에게는 전혀 없던 것이다. 일부는 아직도 자신의 행동이 왜곡된 성의식에서 비롯된 범죄 행위라는 인식을 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서는 더더군다나 더.

 만일 속으로 여전히 "왜?" "늘상 그랬던 것 아닌가?" "왜 그렇게들 예민하지?"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딱 2~3초만 시간을 내 '역지사지'를 해보기를 권한다. 만일 당신의 딸 또는 누이나 동생, 아내나 어머니가 누군가에게 그런 행동을 당했다고 생각해보라. 예능 프로그램 '아빠를 부탁해'에 출연했던 조민기와 조재현씨는 이 역지사지를 반드시 적용해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모든 가해자들은 본인들의 비인권적 범죄에 대해 통렬히 반성하고 사죄하기를 바란다.

 생각해보면 한국 여성들은 학장 시절부터 크고 작은 성범죄에 노출되어 왔다. 가끔 희화화되기는 했지만 학교 주변 '바바리맨'의 출연은 공포 그 자체였고, 등하굣길에 버스 안에서 엉덩이 뒤로 밀착하던 아저씨에 화들짝 놀라 버스에서 내린 기억이 누구나 한두번쯤 있을 것이다. 그때의 더러운 기억은 수십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하다. 성범죄란 이런 것이다. 타인의 인권을 짓밟고 수치심을 들게 하는 것. 이것은 어쩌면 앞으로 이 땅에서 벌어질 성범죄에 대한 경보였는지도 모른다.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 시절. 그나마 개방적인 외국계 광고계 광고회사에 잠시 다녔을 때의 일이다. 십여년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기억은 생생하다. 회식을 마치고 노래방에서 나이 든 한국인 중역은 폭탄주를 돌리더니 휴지를 벽에 던지는 유치하기 짝이없는 퍼포먼스를 하더니 여직원들에게 부르스를 추자고 했다. 물론 신체가 밀착되는 수준은 아니었고 친목이 이유라지만 혹시 나에게 '마수'를 뻗칠까봐 도망다니다가 그 노래방을 빠져나왔다. 물론 그 회사를 곧 그만둘 생각이었기 때문이었지만 만일 회사를 계속 다닐 생각이었다면 상황이 어땠을까 아찔하다.


 처음 언론사에 입사했을 때 수습 기자들에 대한 교육이라고 앉아서 술을 먹이던 기억도 생생하다. 이미 노란 위액까지 나온 마당에 술을 또 먹여서 구토가 넘어와 기도까지 막힐 지경에 점점 의식을 잃어가던 순간. 그런 나를 아랑곳 없이 어렴풋이 자기들끼리 도우미가 나오는 술집에 가자고 했던 그들의 대화를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자 선배들이래봤자 서른 안팎의 나이에 그런 행동이라니. 되돌아보면 어이 없다는 표현밖에 나오지 않는다.

 아마 미투 운동의 발원지인 서지현 검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술에 취한 가해자는 그 장소가 룸살롱이고 옆에 있는 사람을 접대부로 착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늘상 술 취하면 하던 그 버릇 그대로 했을 뿐이다. 때문에 별 죄의식도 없고 기억도 나지 않는 것이다. KBS 기자들의 '미투' 고발 영상에서도 보듯이 여자 후배들을 '쟤는 이쁘다', 안 이쁘다' 등의 외모에 품평을 늘어놓고 신체 접촉을 하는 것처럼 남성 우월 주의에서 나오는 그들의 말과 행동은박하기 짝이 없다.

 당시에는 그들의 권력 때문에 "당신들의 시각이 잘못 됐고, 이는 엄연한 인권 학살"이라는 표현을 아무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이 틀렸다고 당당히 말해야한다. 일방적인, 위계에 의한 성추행은 엄연한 범죄라고. 그런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당신은 범죄자라고 말이다. 본인이 모른다면 전 사회가 반드시 일깨워줘야한다. 그것이 바로 작금의 '미투' 운동이다.

  직장 생활이 아니더라도 일상 생활에서도 우리 사회의 성추행은 만연하다. 단지 이것이 성추행인지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소개팅을 나갔는데 차안에서 추행을 하는 남자, 결혼정보회사 주선으로 미팅을 하러 나간 자리에서 보자마자 DVD방에 가자는 남자, 첫만남에 이자카야를 가자고 속이고 모텔 앞으로 끌고가는 남자, 미팅을 나갔을때 아무렇지도 않게 팔을 툭툭 친다거나 음담 패설을 늘어놓는 남자 등등.

 물론 이들은 호감이 있다며 한 행동이라지만 이는 궁색한 자기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이에 대한 인식 없이 착각이나 무지나 분위기 속에 끌려가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는 경우의 신체 접촉과 음담 패설은 명백한 성추행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지위나 권력이 좀 있는 경우, 직업이 좋다거나 집에 돈이 있다는 이유로 이성을 함부로하는데 아무런 죄의식이 없는 경우가 있다. 나이가 어리건 많건 이들은 성추행자, 성범죄자에 지나지 않는다. 인권을 짓밟는 지식과 돈은 천박한 쓰레기에 불과하다. 당신의 인권은 그 정도에 놀아날 수 없는 소중하고 존엄한 것이다.

 많은 이들은 피해자들에게 왜 그런 경우에 도망치지 않느냐고 말하겠지만 공공연한 장소에서 성추행을 당했을때 그런 것을 말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당신은 용기를 내야하고. 그런 일이 반복되는 회사라면 이를 공공연하게 알려야한다. 그래도 고쳐지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이직을 하는 편이 낫다. 인권에 대한 인식이 없고 성평등 인식이 없는 시대에 뒤떨어지는 회사라면 앞으로도 발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소중한 것은 당신 자신이다. 그들의 속임에 넘어가지 말라. 다른 기회는 반드시 온다. 자신의 자존감과 양심을 망가뜨리면서 얻은 그 기회는 반복되고 결국 당신을 힘들게 할 뿐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지키는 힘이다. 당신은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 이는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고 이에 반한 자는 법의 처벌을 받는다. 당신은 피해자이지 가해자가 아니다. 이는 한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여성들이 이렇게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사람 있다면 반드시 공개적으로 알려주기를 바란다. 우리의 언니, 동생, 친구의 희생을 막기 위해. 적어도 그들을 경계하라는 아주 작은 정보라도 소중하다. 이윤택을 집단 고소한 성폭력 피해자의 변호인단이 무려 101명이라는 것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것만은 기억하라. 당신은 절대로, 어느 순간에도 혼자가 아니다. #me too, #withyou.


Q. 당신은 일상 생활이나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있다면 언제이고 어떻게 대처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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