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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손.절.매.

by 은기자

난생 처음 주식 투자를 시작한 날. 누가봐도 우량주를 사 놓고 속으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떨어질 리 없는 우량 주식에 투자를 했으니 이제 오를 일만 남았겠지. 왜 주식으로 돈을 날린다는 거지?”

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 마저 들 때 즈음. 얼마 올랐을까 매 시간 주식 거래 창을 들여다보는 것은 마치 썸남으로부터 온 카톡을 확인하는 것 만큼 짜릿했다. 그날은 다행히 소폭 오름세에서 장이 마쳤다. “이렇게 나도 개미 대열에 입성하는구나. 얼른 부자가 될테야."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날이었다. 누구나 알만한 그 우량주는 추풍 낙엽처럼 속절없이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다음날을 괜찮겠지 했지만 며칠째 날개 없는 새처럼 끝도 없이 곤두박질쳤다. 하한가를 뜻하는 파란 그래프는 좀처럼 빨간색으로 바뀌지 않았다. 몇천원, 몇만원을 개미처럼 아껴서 한 주식인데 눈앞에서 몇 만원이 순식간에 마이너스를 그리니 눈 앞이 하애졌다. 그제서야 이해를 했다. “아 이래서 주식으로 돈을 벌기 힘들다는 거구나. 역시 세상에 쉬운 일은 없는 거였어.”

 그제서야 주변의 사람들의 조언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보너스로 받은 주식을 팔아 투자를 시작했다는 모 회사 과장은 이미 수십만원 넘게 손해를 본 손익계산서를 보여주며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니 안심을 하라고 했다. 또 다른 이는 어느 정도 감수할만 하면 손해를 보고라도 파는 ‘손절매’를 권유했다.

 손.절.매. 말로만 듣던 손절매가 이것이었구나.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더 큰 손해를 막기 위해 약간의 마이너스를 감수하고 주식을 파는 것. 그는 손절매 타이밍마저 놓치면 완전히 물려 나중에는 팔지도 못하고 그대로 주식을 깔고 앉아야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때부터 나의 가슴은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이래서 다들 주식에 손대지 말라는 거였구나. 이 주식을 언제 팔아야 되지? 언제 놓아야되지?”

러면서 드는 생각이 인생의 많은 순간에도 ‘감정의 손절매’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속절없이 빠져드는 짝사랑도 처음에는 '마치 사랑이 이루어질 것처럼' 짜릿하지만 오래되다보면 어느 순간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될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정도 예상되는 기간에 사랑의 마이너스를 봤다면 적절한 시점에 손을 떼는 용기도 필요하다. 차라리 다른 주식(사랑)에 투자를 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물론 장기 투자를 계획하고 어느정도 감정의 손해를 감수했다면 모르는 일이지만 이 역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짝사랑은 자신에게 치명타만 안길 뿐이다. 때문에 대박을 노리다 쪽박을 차기전에 적절한 시점에 반등의 기운이 없다면 손절매를 하는 것이 낫다. 주식도 사랑도 투자자를 보호하지는 않으니까. 어느 경우든 원금을 다 날릴 정도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는 투자는 위험하다.


 인간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 많은 정을 주고 시간을 투자했지만 늘 만나고 나면 감정의 마이너스를 경험하게 될 때가 있다. 왠지 기분이 좋지 않고 마음이 헛헛해지는. 물론 사람 관계를 주식에 비유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기분이 든다면 아무리 오래된 관계라도 적절한 시점에 빠져나오는 편이 더 낫다. 그런 관계는 오래될수록 결국 나에게 상처만 안기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 관계는 사랑과 달리 '분산 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계산적으로 따지라는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과 정서적인 안정을 얻을 수 있다면 그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하는 것이 맞고 그렇지 않다면 더 깊은 관계가 되어 발을 빼지 못하기 전에 서서히 투자를 줄이는 편이 낫다.

 일전에 소설가 김영하는 '말하다'라는 책에서 "마흔이 넘어서 알게된 사실 하나는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잘못 생각했던 거죠. 친구를 덜 만났으면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웠을 것 같아요"라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일견 맞는 말이기도 하다. 사랑이든 인간 관계든 감정적으로 독립되지 않고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관계를 맺다보면 어느덧 자기가 더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는 자신도 모른 채 감정적으로 종속된 채 자신에게 손해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원치 않는 관계에 대해 '감정의 손절매'가 되지 않은 채 끌려다는 관계는 상처를 넘어 시간의 낭비만 될 뿐이다. 물론 사람 관계가 마음대로 끊고 싶을 때 맺고 끊고 싶을때 끊을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감정과 인생을 갉아먹는 관계라면 서서히라도 정리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 관계에서 감정의 마이너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빨간 상한가를 그리는 날도 많다. 외롭고 힘든 날, 회사 상사에게 혼나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날, 속내를 터놓고 싶을 때 속을 내보일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친구의 진심어린 격려의 말 한마다에 위로를 받을 수도 있고, 생각이 앞뒤로 꽉 막혀 도저히 탈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지인과의 대화 속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도 있다. 사람이 재산이라는 말이 있듯이 마치 오랫동안 묻어둔 주식이 뒤늦게 오르는 것처럼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위기의 순간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때문에 진짜 오래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판단했다면 장기적으로 꾸준히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편이 낫다. 물론 감정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대상이 되도록 노력해야한다.

평소 아끼는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에는 "사람이 온다는 건/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중략)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연인이든 친구든 사람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기쁨 뿐만 아니라 슬픔도 함께 할 준비가 되어야한다.

때문에 내가 그런 시간과 감정을 함께할 만한 사람인지, 나도 그렇게 어깨를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인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종교를 떠나 '인연'을 말할 때 자주 언급되는 법정 스님의 글로 마무리를 하고자 한다.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은 구분해서 인연을 맺어야 한다.
 진정한 인연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인연을 맺도록 노력하고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지나쳐버려야한다.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헤프게 인연을 맺어놓으면
 쓸만한 인연을 만나지 못하는 대신에 어설픈 인연만 만나게 되어
 그들에 의해 삶이 침해되는 고통을 받아야한다.

 인연을 맺음에 너무 헤퍼서는 안된다. 옷깃을 한번 스친 사람들까지 인연을 맺으려고 하는 것은 불필요한 소모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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