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기자 May 01. 2019

그대, 외롭지만 혼자 걸을 수 있어

  그녀는 누군가를 만날 때 습관적으로 왼쪽 넷째 손가락을 유심히 보는 습관이 있었다. 굳이 묻지 않아도 결혼 유무를 가장 빨리 알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가끔은 일부러 반지를 끼고 나오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결혼 여부를 확인하는 순간은 호기심 반, 설레임 반이다. 하지만 나이가 한살한살 먹으면서 꼭 누군가가 마음에 들어서라기 보다는 또하나의 '싱글' 동지가 있음을 확인할 때의 안도감이 더 컸다.


 사실 그녀는 겉으로 보기에는 꽤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에, 비싼 것은 아니더라도 사고 싶은 것은 살 수 있을만큼의 수입에, 가족이나 친구 관계도 원만한 편이다.


 하지만 그녀는 유독 '연애' 이야기만 나오면 위축된다. 명절 때 친척들의 걱정을 가장한 비아냥은 쿨하게 넘길 수 있었지만, 싱글로 살면서 수십년째 사회에서 강요한 여성상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무의식적인 불안이 그녀를 휘감았다. 어쩌면 그녀는 사회에서 정해주지 않은 '자신만의 길'을 홀로 걷고 있다는데 대한 실체 없는 불안감이 더 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녀가 '연애 기피자'는 아니다. 서로에게 책임지는 아름다운 사랑을 찾고 싶었지만,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주말마다 소개팅, 미팅, 결혼정보회사는 기본. 친구들과 클럽은 물론 소개팅앱까지 깔고 이성을 만나려는 노력을 해봤지만 인연을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그 순간 억지로 불특정한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애쓰느라 만신창이가 된 그녀에게 누군가 '고고하게 살어! 구질구질하게 말고'라고 말했다. 이성을 찾는 과정을 절대 ‘구질구질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순간 사회적인 관습에 나를 끼워맞추고, 누군가의 잣대에 맞추느라 자기 자신도 잃어버리고 돈과 시간, 에너지를 쏟은 그녀에게 하는 일갈이었다. 그녀는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았다.


 사실 집과 학교, 어디에서도 서른이나 마흔 이후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삶 보다는, 나이가 먹으면 결혼하고 애낳고 가사와 육아를 하는 여성의 삶을 당연시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길을 가지 않고 있는 여성들을 '돌연변이' 취급하는 지도 모른다.

 

 물론 요즘은 도처에 '싱글' 동지들이 있고 사회적 편견도 덜하다지만, 때로는 '모든 게 때가 있다는데 억지로라도 저 대열에 합류해야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때도 있다. 하지만, 싫은 것을 억지로 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또한 다른 사람의 눈치 보느라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르느라 진짜 원하지 않은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신념은 그녀들을 붙들었다.

 

 당신이 지금 연애나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기회가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마땅한 사람을 못 찾아서, 혹은 사랑에 대한 실패나 두려움 때문에. 그 이유도 다양하다. 그 모든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그것은 전혀 비정상적인 일이 아니다. 실패자나, 낙오자는 더더욱 아니다. 때문에 당신이 지금 싱글인 상태에 조급해 하거나 자기 연민에 빠질 필요가 없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혼자' 또는 '싱글'이라는 말에 대한 편견 혹은 죄의식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 사람은 왕따일 것이라거나 모난 사람 같다' 혹은 '뭔가 하자가 있을 것'이라면서 쑤군대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누구나 똑같은 인생의 계획표를 따라야하는 것은 아니듯 같은 삶의 패턴을 가져야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싱글이 뭔가 잘못되거나 채워지지 못한 결핍되고 불안정한 상태가 아니다.

 

 안다. 어느 날은 카페에 들어가도, 공원에 가도 커플들만 보이고, 지하철에서건 버스에서건 '나를 따라다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한 애정 행각을 벌이는 이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때가 있다는 것을. 그 속에서 때로는 민망하기도 하고 외롭고 초라해보이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럴수록 눈치 보거나 위축되거나 자책하지 말고 현재의 '싱글', '솔로'의 삶에서 의미와 즐거움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혼밥, 혼영, 혼공도 즐겨보면서 나 자신과의 관계에 집중하면서. 혼자 성숙한 사람은 인생이라는 긴 여행에서 만남도 이별도 성장의 과정으로 만들 수 있다. 외로움 때문에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휘둘리는 사랑 보다는 나를 먼저 이해하고 시작하는 사랑이 더욱 풍성할 수 있다.
 
 '홀로 길을 걸을 때는 좋은 친구가 필요해/다정스레 얘길 나눈다 해도/모두 좋은 친구 일수 없는 거야/그래 외롭지만 혼자 걸을 수 있어'
 
 노래 가사가 좋아서 기억 한편에 저장 해둔 '봄여름가을겨울'의 히트곡 '외롭지만 혼자 걸을 수 있어'의 한 대목이다. 인생길을 걸을 때 동반자가 필요하지만 모두 좋은 상대일 수는 없다. 지금 혼자인 당신은 누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당신 그 자체로 빛나고 아름다울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은, 그리고 우리는 때론 외롭지만 혼자 걸을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명품백 권하는 사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