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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기자 Mar 29. 2019

명품백 권하는 사회

 

 가끔씩 명품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올 때가 있다. "이 가방만 들면 너는 다른 사람과 달라보일거야." "지금 초라한 니 모습을 바로 바꿔준다고", "이제, 아무도 너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거야."

 
 이런 생각은 마치 스폰지처럼 여과없이 내 생각에 파고들었고,  '잘 나가는 사람'들이 입고 드는 명품 브랜드가 뭔지를 파악하려고 더듬이를 한껏 뽑아 레이다망을 풀 가동시켰다.

 
 지금이야 '핵인싸'되는 법이 유튜브에 널려있고, 유행하는 브랜드를 친절하게 알려주는 매체도 많지만, 몇년 전만 해도 길거리에서 세련되고 예쁜 여자들이 하고 다니는 차림새를 마치 스캔하듯 도장처럼 머리에 꾹꾹 새겨넣었다. 어떨 때는 꽤 괜찮아 보이는 가방이나 구두를 발견하면 멀리서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집에는 해마다 유행하는 명품 브랜드의 가방이나 구두가 하나둘씩 쌓였다. 명품을 척척 살 정도로 여유가 있지는 않았지만, 몇달씩 돈을 모아 가끔 해외 출장을 나갈 때면 꼭 하나씩 구입하는 것은 일종의 통과의례가 되었다. 마치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참새같았다고 할까.

 
 그런데 신기한 것은 고심끝에 용기를 내서 산 명품들은 어찌된게 애물단지로 전락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물론 살때는 반해서 샀지만, 막상 자주 들게되지는 않았다. 마치 첫눈에 반했지만, 왠지 불편하게 느껴저 자주 만나게 되지 않는 사람처럼. 명품을 쟁취했다는 일종의 '성취감'이나 자아도취도 그렇게 오래 가지 않았다.

 
  살면서 그렇게 삐까뻔쩍하게 차려 입고 나갈 자리도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일상에서 자주 들고 나가게 되는 것은 무거운 명품백 보다는 가볍고 실용적인 가방들이었다. 매일의 일상을 채워주는 가방은 무거운 무게로 나를 어깨와 허리를 짓누르는 명품이 아니라 내 몸과 기분을 가뿐하게 해주는 에코백이었다. 비싼 명품 구두들도 마찬가지였다. 걷다가 발이 아파 피까지 날 때면 명품이고 뭐고 다 벗어던지고 맨발로 걷고 싶었다.

 
 물론 명품 자체를 폄하하자는 것은 아니다. 명품의 전통적 가치를 충분히 이해하고, 한 제품을 오래도록 소장하고 쓰는 데 의미를 두는 의견도 존중한다.  

 

 하지만, 몇년전에 교복처럼 유행하던 명품 브랜드가 사라지고 어느새 또 새로운 것이 등장하고, 명품 회사들이 '이 때다'하고 유독 한국에서 가격을 올릴 때면 뭔가 뒷맛이 씁쓸하고 영 개운치가 않다. 더불어 지금은 유행이 지나 들지 못하는, 방 한구석에 먼지만 쌓인 채 방치된 나의 백들이 하나 둘 눈 앞에 떠오른다.

 
 철없는 시절, 어떤 브랜드의 가방을 들었고 어떤 옷을 입었는지로 누군가를 평가하던 때가 있었다. 유명 브랜드에 집착하는 남자가 소개팅에 나가 상대방의 목뒤의 옷 라벨을 뒤집어 확인했더라는 전설적인 이야기에 치를 떨면서도 명품 브랜드의 노예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인생을 살면서 내 시간을 채우는 것은 특별함 보다는 하루하루 소박한 일상들이었고, 힘들 때 곁에 있어준 친구들도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이들이었다. 수백 수천만원의 명품백을 들었더라도 갑질을 하거나 남에 대한 배려가 없는 이기적인 이들을 보면, 인품이나 교양은 절대로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단지 명품이 누군가를 빛나게 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는 누군가 어떤 물건을 소유했는지 보다 어떤 멋진 생각과 존경할만한 마인드를 갖췄는지가 더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사람이 명품이어야 진짜 빛나는 사람이지. 물건이 사람을 절대로 빛나게 할 수는 없는 거라구."


 엄마가 예전에 그런 말을 했을 때 "칫. 명품 살 능력이 안되는 거겠지"라며 속으로 빈정댔지만 이제는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비싼 돈을 지불하고 진짜로 사고 싶었던 것은 명품이 아니라 자존감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마음이 외롭고 허할 때, 내가 초라해 보일 때 물건으로 그 자리를 대신하려고 했다는 것을.

 
 지금이라도 또 어떤 명품으로 누군가에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 쇼핑을 검색한다면 잠시 중단하고 잠잠히 내 마음을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오늘도 명품 권하는 사회는 세상은 당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무의식적으로 소비할 것을 강요한다.


 하지만 그대로 조종당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당신의 선택이다. 수동적이고 무계획적인 소비는 더 큰 허무함만 남긴다. 지금이라도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나를 지키는 단단한 '명품' 내면을 가꾸기 위해 시간을 소비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소비라면, 아무리 많이 쓰는 과소비라도 아깝지 않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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