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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기자 Feb 15. 2019

일에 지쳐 '번 아웃'한 당신에게

  그녀는 누구보다 일을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 주입식 교육을 받고 대학에 들어와 진로는 더욱 묘연했지만 치열하게 '내 일'에 대해 고민한 결과 그녀는 비교적 원하는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일을 하는 것이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 월급은 많지 않았지만,그녀에게 사회 생활은 거대한 신세계였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월급까지 준다니...' 그녀는 행복했고 길을 걷다가도 일에 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초년병때는 새벽까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기록다. 토요일 하루만 쉬고 가끔씩 공휴일이나 일요일에 일을 해도 크게 힘들지 않았다.

 

 나를 발전시킨다는 뿌듯함, 뭔지는 모르지만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는 안정감. 모든 것이 좋았다. 여자로서 한국 사회에서 무시 받고 살지 않으려면 경제권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엄마 세대를 보며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에 그녀의 목표는 일단 결혼보다는 일이었다. 심지어 '안정적인 직업적 반열에 올라서야 결혼을 하리라'라는 생각은 더 굳건해졌

 

 일에 빠져들고 나니 일로 인정을 받고 싶어졌다. 어느새 일과 나는 동일시되어 있었고, 일 이외의 인간 관계는 어느새 점점 줄어들었다. 그녀는 남보다 두세배 더 고민하고, 열정적으로 일에 임했다. 그 결과 어느정도 회사 내외에서 그녀의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을 수록 그녀에게는 더 많은 일이 주어졌고, 그녀는 그 역시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어떨때는 몸이 아파서 내게 맡겨진 일을 하지 못할까봐 걱정이 될 정도로 일이 우선이었다. 내 몸보다는 더이상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더 일이 잘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그녀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에 휴식도 필요할 수 있지만, 그녀는 자신이 자리를 비우면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자리를 낚아챌 것만 같은 두려움에 끝까지 일을 물고 늘어졌다. 그러는 사이 그녀의 체력은 점점 떨어졌고, 몸과 마음의 건강도 나빠졌다.

 

 그러는 사이 '절대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사건이 벌어졌다. 그녀가 목숨같이 여겼던 '일'이 하기 싫어진 것이다. 사실 그녀는 속으로 그런 권태기가 오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신을 수없이 스스로 어르고 달래고 자신의 기분에 늘 신경을 썼다. 그런데... 그 '사건'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내가 가장 잘한다고 생각했던 일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자 그 영향은 생활 전반에 미쳤다. 머리 속에는 더이상 아무런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았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머리가 멍했다. 가슴속에 뭔가가 가득차 아침에 기상을 하면 가슴에 돌덩이를 얹은 것 같고 더이상 깨어나고 싶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신이 나서 했던 일, 내가 전부라고 생각했던 일이 싫어지니 내 인생 전체가 거대한 수렁에 빠진 것만 같았다.
  
 그녀도 잘 안다. 산해진미라도 많이 먹으면 질리기 마련이고, 아무리 비싸고 좋은 옷도 자주 입으면 질린다는 것을. 하물며 노는 것도 아닌 '일'을 10년 넘게 해오다보면 기계가 아닌 이상 한번쯤 마음의 고장이 나기 마련이지 않을까.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과 동일시하고, 자신이 인정을 받는 통로가 일이었기 때문에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두려움에 빠진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대책도 없이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고, 말 그대로 진퇴양난이다. 한동안 그녀의 무기력증은 계속됐다. 일을 해도 아무런 즐거움이 없었고, 가슴에 응어리만 가득찼다.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아무런 슬럼프도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부러움과 질투심을 동시에 느꼈다.


 이럴때 과연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노력한다고 열정이 다시 살아나지도 않고. 어떨때는 '삶에 늘 열정이 넘쳐야한다'는 말조차 부담으로 다가온다. 이럴때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를 믿고 조용히 기다려주는 것. 하지만 알면서도 그렇게 하기란 참 어려웠다. 어쩌면 우리는 '늘 뭔가를 열심히 해야한다'는 명제 속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뭔지 모를 죄책감과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나만 뒤쳐진다는 불안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가만히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한번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봐주는 것. 그녀는 어렵지만 조금씩 노력해보기로 했다. 우리는 힘든 친구에게는 '괜찮다'고 위로해주면서 어떻게 보면 자기 자신에게는 너무 가혹했는지도 모른다. 어색해도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자신에게 한번쯤칭찬을 해주는 것은 어떨까. 또한 일은 당신을 정의하는 도구가 아니다. 사회적인 명함이 없어도 일이 아니어도 당신은 존재만으로도 가치 있는 사람이다. 한번쯤 일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돌아봐야할 때인지도 모른다.


 지금 당신이 '번 아웃'했다면, 다시 일어날 어떤 용기도 생기지 않는다면. 너무 자신을 자책하거나 다그치지도 말자. 연못의 잔잔한 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듯 가만히 자기 자신을 바라보자. 어차피 인생이란 누군가와 경쟁하는 속도전이 아니라 혼자서 살아내는 여행이자 여정이다.


 때로는 방황하고 마음이 어려워도 그 시간도 긴 여행 길 속 한 순간이다. 인생이란 수많은 파도와 장애물이 있고 그 속에서 많은 감정들때문에 때론 무너질 정도로 흔들리고 죽을만큼 괴로울 때도 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감정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인정하면서, 삶을 두려워하지 않고 걸어가는 것.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길을 걸어가는 여행자에게 주어진 권리이자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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