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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기자 Jun 17. 2019

'기생충', 찝찝해도 뜬 이유는?

'왜 떴을까 연구소' <1> 영화 '기생충'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동안 주변에서는 "'기생충' 봤냐?"가 안부를 대신했다. 평소에 별로 영화에 관심없는 친구들도 그렇게 물어올 정도니 이 영화의 흥행은 어느 정도 감지됐다.


  칸영화제부터 감독과 제작사의 신신당부대로 '스포일러'가 생각보다 많이 안풀렸기 때문에 극장에서 직접 영화를 확인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영화는 투자배급사의 내부적인 목표라는 700만을 넘어 800만을 돌파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다른 작품과 반응이 영 다르다. 다른 작품과 달리 수많은 이야기거리를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영화를 보고 나서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는 사람도 많고, 뭔가 불편한 구석이 있었다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그럼에도 흥행에 성공한 이유는 왜일까.


  사실 '괴물', '설국열차' 등 대부분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사회적 메시지에 재미와 유머, 카타르시스를 갖춘 상업적인 요소가 있었다. 반면 이번 영화는 유머와 긴장감은 있지만, 재미 보다 의미가 강하고, 카타르시스 보다는 사회 비판 의식이 더 강하다. 때문에 상업 영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보고 나서 고개를 갸우뚱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예상치 못한 전개와 꽉 짜여진 플롯과 반전 등 영화적 만듦새는 지루하지 않고 몰입도를 높인다. '극한직업'(1600만), '어벤져스'(1300만) 등 잘빠진 상업 영화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사회풍자적인 메시지가 강한 '기생충'은 다소 새로운 지점으로 작용했을 법하다. 여기에 영화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이 주는 권위는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기생충'은 신자유주의 속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빈부 격차를 다루고 있다. 이것은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공감할만한 보편적인 소재다. 여기에 스릴러, 코미디, 풍자가 더해졌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재미 없기 어려운' 조합이다. 봉준호의 모든 장르가 담긴 '종합선물세트'라고 불리는 이유다.


 하지만 '기생충'이 보고나서 씁쓸함을 지울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을'들이 겪는 불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빈곤 포르노', '가난 전시'라는 말까지 나온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부자는 착취하는 탐욕스러운 계급, 빈자는 착취당하는 불쌍한 계급으로 그려지지만, 영화에서는 그 반대다. IT 기업 대표인 박사장의 부인 연교는 세상 물정 모르는 부자지만, 푼수지만 누구에게도 해악을 끼치지 않는 착한 인물이다. 반면 기택(송강호)의 가족은 부자를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로 누군가에게 누명을 씌우는 악행을 저지른다. 게다가 또다른 기생 가족과는 생존권을 위해 '을'끼리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

 

 사실 '기생충'이라는 말 자체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누군가를 비하할때 쓰이는 'OO충'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누구나 영화를 보면서 감정 이입할 대상을 찾게 되는데 대부분의 관객은 박사장 보다는 평범한 기택네 가족에게 감정 이입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이들의 비위와 볼썽사나운 모습에는 동의하기란 쉽지 않기에 씁쓸함을 더 한다.


 두번째 중산층의 몰락과 더이상 '개천에서 용이 날수 없는' 흙수저 계층의 고착화는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 박사장네 기생하는 두 가족은 공통점이 하나 있다. 대만 카스테라를 팔던 자영업자였지만, 사업이 망하면서 하층민으로 추락했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직원인 중산층으로 살다가 '치킨집' 운영 등 자영업자가 되는 현실 속에서 결국 삐끗하면 하층민으로 추락하는 것은 주변에서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실제로 올해 한 여론조사기관이 진행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나는 중산층'이라고 응답한 사람들이 갈수록 줄고 있다. 1989년 갤럽 조사에서는 국민의 75%가 "나는 중산층"이라고 답했다. 당시는 경제 고도 성장기로 계층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중산층은 2003년 56.2%, 2009년 54.9%, 2013년 51.4%로 위축됐고, 올해는 48%로 뚝 떨어졌다. 누구나 더이상 하층민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사회적 불안감이 팽배한 상황에서, 나 역시 언제든 '기생충'으로 전락하게 될 수도 있다는 불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더이상 계층의 이동이 불가하다고 느낀 두 가족은 무력감에 휩싸여 갑에 해당하는 박사장네에게 과도한 충성을 하게 된다. 대놓고 '기생'하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이처럼 무력감의 발로에서 생긴 충성심은 '을'로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을 느낄 법한 감정이다. 기택의 반지하 집이 물에 잠겨 수재민 구호소에서 잠을 청하면서 계획이 있다고 주장하던 아버지에게 아들은 '그 계획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기택은 다소 자조적인 어투로 이렇게 말한다.


 "최고의 계획은 무계획이다. 계획은 하면 틀어지거든. 그대로 되질 않아. 대신 무계획은 그럴 걱정이 없다."


  계획을 세운다고 해서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는 뜻이 담겼지만, 자본주의적으로 해석하면 아무리 발버둥쳐도 되는 계층 이동의 가능성은 없으니 그냥 무계획으로 살자는 '자포자기식'의 자조적 의미가 담겨있다. 이는 공고화된 신자유주의에 더이상 반항할 수 없고, 이는 거스를 수없는 질서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무력감은 관객들에게도 그대로 전염된다.

 

 세번째는 갑의 위선이다. 어쩔 수 없이 을, 병, 정으로 살아도 인격까지 모독하는 갑의 위선에는 부아가 치밀기 마련이다. 특히 박사장이 수시로 '선을 넘지 말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나 '냄새'로 계층을 분류하면서 무시하는 갑의 횡포는 상당히 노골적이다. 인디언 분장을 하고 박사장 아들의 생일 파티까지 참여하게 된 기택이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자 박사장은 "월급에 포함된 것 아니냐"며 근엄한 표정으로 권위를 드러낸다. 이처럼 박사장이 끊임없이 언급하는 '선'은 철저히 고착화되고, 더욱 심해져가는 양극화와 사회구조적인 모순을 의미한다.


 일단 '이 작품을 보고 나서 오만 생각이 다 들게 하고 싶다'는 봉감독의 의도는 적중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흥행 이후 우리 사회에서 '기생충' 찾기는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영화적 해석을 찾기 위해 N차 관람을 하는 관객들도 있다.


 사실 숙주처럼 기생하면서 누군가의 돈과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은 보는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다. 관점에 따라서는 기택네 가족의 노동에 기생하고, 그들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박사장이 기생충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정치적인 해석을 하는 이들은 마지막 인디언 분장을 통해 박사장이 인디언을 침략해 노동력을 착취한 미국을, 기택네 가족과 지하실 가족을 각각 남한과 북한을 의미한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선을 넘지 말라는 미국의 협박 아래 남북한이 서로 엉겨붙어 싸우는 꼴을 은유했다는 것이다.  

 물론 영화는 속 캐릭터를 일반화한 나머지 '부자는 착하고, 빈자는 나쁘다'는 이분법적 구조로 해석하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다만 영화를 보고나면 복잡한 마음만은 떨칠 수 없다.


 영화는 숙주에 기생하기 위해 제 색깔 바꾸는 '기생충'처럼 자본주의 틀 안에서 돈으로 양심도 버리고, 인격도 버리고, 상황에 따라 가치관도 버린채 벌레처럼 변하는 인간상을 총칭하는 것일 수 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돈에 기생한다면 인간이길 포기한 '기생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영화는 이렇게 직접적으로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은 상황에 따라 얼굴을 바꾸고 '기생충'이 된 적이 없느냐고. 지금은 자기 안에 혹시라도 존재할지 모르는 내 안의 '기생충'을 점검해볼 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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