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기자 Oct 02. 2021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아마 십수년간 수백번은 족히 들어봤을 듯한 그 질문. 남에게 듣기도 많이 듣고 하기도 많이 했던 그 질문.


이상형을 물어오는 질문은 때와 상황에 따라 여러가지로 해석된다. 소개팅 자리에서 이상형 이야기가 나오면 '과연 이 사람과 내가 잘 될 수 있을 것인지'를 가늠해보는 잣대가 될 때도 있다. 상대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에게 이상형을 물어오면 '혹시 나에게 관심이 있는건 아닌지?'하는 상상에 빠지기도 한다. 


마음에 드는 상대가 꼽은 이상형에 나와 비슷한 점(이라고 생각되는 점)이 한두개라도 등장하면 '혹시, 이건 그린라이트?'라면서 가슴이 쿵쾅대기 시작한다. 상대방이 나와 정반대의 스타일을 이상형이라고 꼽으면 이내 실망한다. 

 

어린 시절 아니 최근까지도 '이상형'이란 참 가슴 뛰는 질문 중 하나였다. 언젠가는 이상형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회로'가 돌아갔기 때문이였을까. 이상형을 이야기하는 순간, 좋아하는 배우의 얼굴이 오버랩되면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웃음이 새어나오기도 한다. 마치 상상 속에 그 인물을 마치 만난 것처럼.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형이라는 질문을 들으면 대답하기가 조심스럽고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져왔다. 이상형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 비현실 너머 이루어지기 힘든 '이상'적인, 그저 '희망 고문'일 뿐이라는 걸 알아버린 즈음부터였던 듯하다. 그것은 꿈만 꾸고, 꿈만으로 먹고 사는 '순수한' 시절은 이제 지나갔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누군가 이상형을 물으면 '없다' 혹은 '요즘은 없어졌다'라고 답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그게 정답인 것 같아서다.  실제로 나이가 들면서 이상형이란 것이 계속 바뀌기도 하고 아무리 이상형을 외쳐봤자, 이상형을 만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이상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본의 아니게 머쓱해지곤 한다. 상대방은 '눈이 굉장히 높으시네요'라며 에둘러 공격(?)적인 언사를 하기도 하고, 지인들은 '그러니깐 아직 솔로인거야. 눈을 좀더 낮춰'라며 핀잔을 주기도 한다. 누군가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 대신 가끔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기도 한다.


어린 시절 신나게 대답했던 이상형에 관한 질문이 이제는 '마음의 짐'이 된 것 같아 서글프지만, 세상을 보는 시야가 한층 넓어졌다고 생각해두기로 했다. 그만큼 많은 사람 경험을 통해 인생에는 다양한 '경우의 수'가 있다는 걸 알게됐다는 이야기니까.


이상형이 반드시 자신과 잘 맞지는 않을수도 있다는 것, 이상형과는 정반대의 사람이라도 나랑 잘 맞을 수 있고, 내가 어떻게 변화하느냐에 따라 나의 이상형도 바뀔 수 있다는 것. 뭐 그런 인생의 이면들을 알게 됐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손에 잡히지 않는 '이상' 보다는 땅에 딛고 있는 '현실'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겉모습보다 본질에 집중하면서 이상형은 확실히 변화한 것 같다. '어떠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도망가지 않고 내 곁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으로. 인간 사이에 믿음과 신뢰가 얼마나 값지고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면서부터였던 이상형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또한 자신이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는 것도 당연한 것이겠지만.  


가끔은 과거에 이상형으로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 캐릭터에 한두가지를 섞어서 말했던 순수했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외적인 매력 보다 그 외의 것들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인간과 인생을 보는 시각이 한층 더 풍요로워지고 성숙해졌다고 믿고 싶다. 누군가 '정신 승리 한번 세게 하시네요'라고 얄궂은 농담을 던져도 이젠 웃어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니까.


이전 02화 차라리 짝사랑이 마음 편한 몇가지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