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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기자 Sep 17. 2022

차라리 짝사랑이 마음 편한 몇가지 이유

지은씨는 일명 '금사빠'이자, '프로 짝사랑러'다.   

 

 어느 자리에서건 마음에 드는 사람 한두명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금사빠'라는 말에는 약간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있지만, 굳이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다른 사람의 장점을 잘 발견하는 사람' 정도라고 해두자.


  '짝사랑'도 적잖이 에너지가 드는 일이다. 사는게 바빠 이제는 그것마저 좀 귀찮아졌지만. 암튼 그렇다는 아야기다.


 물론 '금사빠'의 첫번째 기준이 외적인 면이라는 것을 부인히기는 어렵다. 하지만 외모가 무조건 제1기준은 아니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시야가 넓어지면서 외모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과 지적 수준도 보게 된다. 적어도 이기적인 아집과 고집으로 똘똘 뭉치거나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인간형은 피해야한다도 다짐을 해본다.


 누구나 그렇듯이 짝사랑의 역사는 학창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외모도 준수하고, 매너도 좋고, 공부도 잘하고, 여학생들에게 인기 많은 그 남자를 애써 안좋아할래야 한 좋아할 수가 없었다.

 

  '나는 정말 남과 다른 눈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인가. 무슨 불나방도 아니고 왜 늘 이렇게 치열한 경쟁을 해야만 하는 것인가.'

 

 그래도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어쨌거나 짝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나름 행복하다. 비록 '원사이드러브'일 지라도 일반적인 사랑의 시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가 내쪽을 바라보면, '혹시나.,,'하는 마음이 들고, 혹시 이쪽으로 걸어오거나 우연히 말이라도 걸면. '흠,, 다음 단계는?'하면서 벌써부터 진도를 빼는 행복한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덕분에 외모도 더 가꾸게 되고, 그 사람이 오가는 길에 더 매력적으로 보이려 애쓴다. 쌍방은 아니지만 짝사랑도 삶의 활력소가 되는 이유다.

 

  그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엔돌핀이 생기고, 멀리서 걸어오는 것만 봐도 가슴이 뛴다. 진짜 사랑에서 일어나는 화학작용의 절반 밖에 되지는 않지만, 혹시나 그 사람과 눈을 맞추고 대화를 하는 날은 '운수 좋은 날'이다.


 여기서 잠깐. 짝사랑에도 나름의 '밀당'이 있다. 어느 정도 대화를 할 수 있는 관계의 사람이라면, 나름대로 먼저 관심의 표현을 해보기도 하고. (물론 소극적이지만) 먼저 메시지를 보내보거나 더 과감한 경우는 직접적 대시를 하는 사람도 (있다지만 한번도 해본적은 없다.) 소심해서 혹은 그 정도로 마음을 뒤흔든 경우는 없어서 그렇게는 해보지 못했다. 기껏해야 콘서트나 영화에 초대하거나 그 정도에 불과했다.

 

 짝사랑을 하다보면 '간보기'의 달인이 된다. 물론 사랑의 감정은 마치 재채기처럼 숨길 수가 없어서 이미 상대방도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너무 '티나지 않게', 너무 들이대지 않는 식으로 접근을 해본다.  '아 이 정도 했는데 관심이 없다' 싶으면 거기서 바로 접는다. '금사빠'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빠른 포기다. 기껏 마음을 줬더니 '이 산이 아닌게벼'하고 상처를 받고 산을 내려오는 것 보다는  '아니면 말고'식의 긍정적인 마인드는 정신 건강에 좋다는 것을 지은씨는 오랜 삶의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짝사랑이 가장 크게 발현되는 것이 바로 TV 드라마다. 티비 리모콘만 틀면 이상형에 가까운 이성들이 한 트럭 쏟아진다. 이상형을 발견하면 일단 커뮤니티 사이트를 한번 들어가본다. 이미 연예인과 짝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온갖 '떡밥'들을 모아두기 때문이다.


 물론 거의 드라마나 영화 캐릭터를 보고 그 사람과 동일시 해 짝사랑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작가가 써놓은 그 인물과 실제 연예인과는 거의 다른 인물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한참 시간이 흐른 뒤였다.)


 거의 이상형에 가까운 외모(로 다듬어진)인 연예인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어렵지 않다. 때로는 그의 외모나, 목소리에 빠진다. 가수나 배우 등 연예인에 빠지면 일정 시간은 '약'도 없다. 게다가 팬덤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진 만큼 연예인들도 팬들과의 소통을 중요시해서 스스로 수많은 '떡밥'을 투척한다. 때문에 오래 알던 사람처럼 '라포'가 형성되고, 그가 어려운 일이 닥치면 두팔 걷고 돕게되고, 그의 성공을 위해 두팔을 걷어부친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시간과 돈을 쓰는데 아낌이 없어진다.


 누군가는 연예인 짝사랑을 한심하게 여긴다지만 그들에게 한번쯤 묻고 싶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그런 위로와 즐거움. 마음의 위안을 준 적이 있느냐고.


 "그런다고 그 연예인이 니 이름이라도 안대? 몇년전에 어떤 연예인은 팬들을 'ATM'이라고 부른 거 못봤어? 정신 좀 차려"


 누군가는 이런 뼈아픈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런 타박에 이렇게 응수를 해본다.


 "그게 돈으로 살 수 있는 건가? 짝사랑도 내 맘대로 못하냐?"


 물론 이렇게 답변은 하면서도 한쪽에는 마치 사표처럼 늘 '탈덕'할 기회도 동시에 품고 있다.


 그런데 짝사랑의 특징은 분명 '유효 기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느정도 이성의 감정에서 접근했을 경우에 한하지만, 짝사랑의 대상이 연애하는 상대나 결혼을 발표했을 때, 희안하게도 짝사랑의 감정은 그와 동시에 사라진다.


 그때부터 왠지 모르는 본전 생각이 들면서 더 이상의 짝사랑은 거기서 멈춘다. 그간 좋았던 점이 안좋은 점으로 변화하고 먼지 모르는 배신감 마저든다. 원래 나 혼자 시작한 사랑이니 끝도 꽤나 심플하다.

 

 여기서부터 짝사랑의 진가가 발현된다. 짝사랑에는 흔한 이별의 과정이 생략된다. 물론 일반적인 사랑의 과정처럼 누군가에게 실망하는 포인트가 발견되고 '탈덕'을 하는 순간 그간의 허무함이 밀려오면서 씁쓸함이 들지만 일시적인 감정일 뿐이다. 그것이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위해를 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의 과정에서는 누군가를 좋아하다 실망하고, 싸우고 다시 개선하면 (다행이고) 또다시 그런 문제가 반복되다가 서로의 민낯을 확인하고 이별을 겪게 된다.

 

 짝사랑은 서로에게 실망할 일도 없고, 밑바닥을 보이며 싸울 일도, 이별의 과정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단계도 생략된다. 보복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사랑이 남긴 상처를 온전히 받지 않아도 된다. 물론 누군가는 연애와 사랑은 '아픈만큼 성숙해진다'고 인생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은씨의 경우는 연애 끝에 늘 상처를 얻는 경우가 많았다. 서로의 오랜 습관이나 습성을 버리지 못해 부딪히고, 맞춰가는 과정이 서로에게 부담이나 상처로 다가가 포기하고 이별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감정이 삶에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동안 숱하게 사랑에 대한 상처를 받고. 그 뒤끝이 그리 좋지 않았던 것은 감안하면 굳이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결국 지은씨가 짝사랑을 선택한 이유는 그녀가 금사빠이기 때문도, 프로 짝사랑러이기 때문도 아니다. 그간 수많은 사랑의 과정 속에서 받은 상처와 외로움, 인간에 대한 실망과 배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물론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아직 진짜 사랑을 못 만났기 때문이라고. 혹은 사랑에 실패하는 사람들의 '정신 승리'라고.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짝사랑도 사랑이라고, 그 순간에는 행복감이 들고 안하는 것보다는 하는게 낫다는 것이다. 수많은 중년 여성들이 트로트 가수에게 무조건적 지지를 보내는 이유를 들여다 볼 필요는 있다. 그 분들이 이성적인 관점으로만 그 가수를 좋아하는 것은 아마도 아닐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 무해하고, 삶에 확실한 활력소를 주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지은씨는 그냥 사랑의 불확실성을 견디기에는 사람에 지치고 그 모험을 할 용기가 사라진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이제는 무해한'짝사랑'마 감행하는 것도 쉽지 않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고, 체력과 에너지마저 고갈됐다. 그녀가 다만 '짝사랑'의 연애세포라도 사망하지 않고 계속 살아있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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