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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기자 Aug 08. 2021

어느날, 썸남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느날 휴대폰에 모르는 번호가 찍혔다.

 010-XXX-XXXX. 


 전혀 모르는 번호였다. 사심 없이 받았다.

 "누구세요?"

 "나 몰라? 나 OO야"

 "아.."


 구 '썸남'이었다.  기억이 저 편에 있던 애매한 사이의 썸남. 

 예전같으면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았을테지만, 요즘 사람이 그리웠는지 전화를 덜컥 받았다. 오랫만에 듣는 목소리가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너무 오래전일이다보니 그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생각은 나지 않았다. 다소 달뜬 것 같은 그의 목소리. 예전 감정은 잠시 접어두고 나도 잠시 그 감정에 전염됐다.


 오랫동안 연애도 하지 않고, 삭막하게 지내는 와중에 구 썸남의 전화에 아예 설레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고보니 작년 이맘때도 그는 뜬금없이 전화를 했던 것 같다. 올해는 더 외로운지, 그의 전화에 마음이 살짝 설렜다. 그동안 너무 팍팍하고 건조하게 산건 아닐까ㅠㅠ 


 최근 어디선가 나의 근황을 들었다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의 어떤 모습을 본거지? 그래도 가장 궁금한 건 하나.


 대체 그는 왜 전화를 했을까? 

 

 오랫만에 서로의 근황을 물었다. 그냥 오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을 때와 비슷했다. 어색해서 이말 저말 하는 와중에, 그는 '니가 그때 예쁘고 착했잖어', '네가 초콜릿만 줬었어도....' 알 수 없는 말들을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나를 기억하는 누군가와 마주한다는 것은 참 복잡한 감정이 드는 일이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의 내 모습은 어땠을까. 그에게 기억된 내 모습은 어땠을까. 다행히 빈말이라도 나쁘게 기억하지 않는 말을 듣고 요즘 엉망진창인 나의 삶을 돌아본다.


 그제서야 그와 헤어진 이유가 떠올랐다. '잊을만 하면' 연락하는 스타일 때문이었다. 소통되지 않고 뭔가를 숨기고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느낌.


 그의 전화를 통해 지나간 썸남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물론 생각하기도 싫은 사람들도 많다. 지금 생각해도 무례했고, 가짜인데 진짜인 척한 사람도 많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게된 것들. 

 

 매번 시작은 진짜이기를 바라고 시작했던 썸들. 썸남이 아니고 진짜 사랑이기를 바랐지만,  늘 어긋났고 비껴갔다. 누구의 잘못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인연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어장관리였다고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이라면 그런 불안하고 불확실한 사랑에 시간과 돈을 쓰지 않겠지만, 그 당시는 썸남들과의 불안한 사랑에, 때로는 모든 것을 걸었던 것 같다. 여러가지 가능성에 노출되다보면 언젠가는 진짜 사랑을 만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지만, 선택지가 많다고 정답을 찍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머릿속에 사랑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했는데, '사랑해야 한다'는 숙제를 받아들고 해결해야하는 사람처럼 행동했던 것 같다. 그래서 썸남과의 연애는 재미 보다는 늘 힘들었고 불안했다. 


 의외로 썸남 보다는 그때의 나의 빛난 시절이 그리울 뿐이다.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할까. 


 그때의 나와 마주한다면, 조금 외로워도 불확실한 사랑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너 자신을 더 단단하게 하라고 이야기해줬을 것 같다. 그리고 불안감에 휘둘리지 말라고. 어느 순간에건 가장 중요한 것은 너 자신이라고. 그리고 인생에는 더 중요한 것들도 많으니, 너 자신을 소중히 하라고. 


 전화를 끊은 뒤, 구 '썸남'에게서 또 다시 전화가 걸려온 것을 한참 뒤에 확인했다. 버튼을 잘못 누른건지,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지 모를 일이다. 이전의 나라면 '어쩌지? 무슨 일일까. 다시 전화해야 하나?'하고 전전긍긍했겠지만, 오늘의 나는 쿨하게 넘어갔다.


 '필요하면 다시 연락 오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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