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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영 Sep 09. 2021

제주 애월 고요한 건축가의 집, 시오


애월의 좋아하는 책방,<몽캐는 책고팡> 나설 즈음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안으로 뛰어들까 했지만, 쏟아지는 빗속을 조금  걸었다. 돌담 틈에서 뻗어 나온 두툼한 나무줄기와 제법 퉁퉁한 수박밭을 지나 제자리로 돌아왔다. 우산 밖으로 삐져나간 옷깃에 빗방울이 스며들고 있었다.








애월에는 인기 많은 대형 카페가 많아서 여행 콘텐츠를 만들 계획이 있었는데, 갑자기 생각이 바뀌었다. 비 내리는 오후가 되자, 조용하고 아담한 공간을 찾고 싶었다. 제주가 언제부터 이렇게 크게 느껴진 걸까. 이제는 하나의 나라처럼 느껴질 정도로 마을마다 ‘가볼 만한 곳’이 넘쳐나고 있다.


마침내 마음이 끌린 곳은 ‘건축사무소가 운영하는 건축가의 집’이라는 타이틀. 골목 안에 지어진, 겉으로 보이에는 평범한 집인 것만 같은, 그러나 ‘건축가가 직접 지었으니’ 창이 예쁘게 나있을 것 같은 곳, <시오>였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설 때쯤 비가 그쳤다. 신발을 벗고, 준비된 슬리퍼를 신고 들어가니 정말이지 이웃집에 놀러 온 기분이 든다. ‘어디에 앉을까…’ 고민하는 사이 창가 자리가 비었다. 끼익 문을 열고 나가는 사람 뒤로, 창밖을 바라보며 앉는 의자 두 개를 스르륵 꺼내 앉았다.




‘아, 좋다.’


마침 창을 통과한 햇살이 팔뚝을 감싼다. 아직 빗방울을 머금은 나뭇잎을 통과하며 햇살이 일렁거린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천장에는 세모난 창이 나있다. 그 옆에는 커다란 팬이 무심하게 돌아가고 있었으며, 사람들의 조용한 말소리와 어우러진 음악소리에 이내 평안해졌다.


편안함.


나는 고요함 속에서 편안한 사람이다. 가만히 있을 때… 무언가를 끄적이거나 가사에 집중해 노래를 들을 때, 책을 읽다가 표식을 하고 그 문장을 옮겨 적을 때, 터벅터벅 걷다가 멈추어 서서 그림자에 잡힌 바람 사진을 찍을 때 찾아오는 평온함에 안도한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불안한 마음을 감춰줄 것은 내겐 정적이었다.


책장 한편에 놓인 그림책을 보다가 말고 커다란 창가로 다가갔다. 창밖에는 아기 고양이들이 장난을 치고 있었는데, 따스한 햇살과 제주의 돌담이 어우러져 꽤 영화의 한 장면 같아졌다. 으르렁거리듯 물고 뜯는 아기 고양이들의 움직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낮잠을 자는 어른 고양이가 부러워졌다. 이 공간에서 이룬 릴렉스한 시간을 도시에서도 이어가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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