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vs 에어비앤비
포르투 공항에 발을 내디딘 첫날, 그 날의 선명한 색깔을 기억한다. 마드리드에서 포르투(OPO)로 넘어오는 여정을 끝내고 발 디딘 순간 벅찬 가슴을 기록했었다. 비행기가 한 시간 넘게 연착하여 밤 9시에 도착했지만 아직 환한 여름이었다. 에어비앤비 숙소에 도착할 때쯤 해가 지더라. 차에서 내려 오르락내리락 돌바닥을 걸어 에어비앤비 숙소를 찾아가는 동안 흥이 올랐다. 발이 아파 속도가 더딘 게 아니라 두리번거리고 마음을 뺏기느라 도착이 늦었다.
숙소 주인은 젊은 부부였다. 10살쯤 되어 보이는 딸이 함께 나와 나를 맞아주었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다양한 숙소에 머무는 편이었지만 이렇게 주인이 (함께 살지 않는 이상) 굳이 나와 인사를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게 도착 직전에 메시지로 집 비밀번호를 알려주거나, 집 열쇠가 있는 상자가 위치한 곳을 알려주곤 하니까.
이들은 나와 눈을 마주치고 웃으며 문 열쇠 돌리는 법을 직접 알려주었다. 나의 방문 이전에도 한국인 여자가 혼자 여행을 왔었는데 열쇠 돌리는 걸 어려워했다는 이유였다.
아, 얼마나 따뜻한 사람들인지.
유럽여행을 하다 보면 유럽식 열쇠 돌리는 방법 때문에 애먹는 여행자들을 종종 본 적 있다. 크기도 다양한 열쇠들, 게다가 중세시대에나 썼을법한 커다란 쇠로 된 모양의 열쇠까지 접해본 이후로 척척까진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적응한 터였다. 왜 아직도 적응 중이냐고? 그도 그럴 것이 왼쪽으로 두 번, 오른쪽으로 한번, 혹은 세 번, 혹은 문고리를 살짝 당기며. 철커덩 소리를 들어야 하거나 느낌대로 열거나 하는 통의 불규칙적인 방법 때문에. 사실상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할 것만 같다.
2년 뒤 다시 찾은 포르투갈 여행 중 포르투 숙소는 호텔로 정했다. 2월이었다.
지난 기억 속 포르투갈 여행의 기억으로 남은 7할쯤은 공교롭게도 추위였다. 여름이라 가벼운 옷가지만 챙겨간 게 문제였을까. 스페인의 타는 듯한 태양을 체감한 직후라 그랬던 것일까.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한낮의 햇빛 테두리 안에서만 따뜻했던 기억이 있다.
늦은 밤 숙소로 돌아가면 빠른 샤워 후, 침구에 몸을 구겨 넣기 바빴다. 작지만 아늑한 테라스에 향초 한번 켜볼 여유가 없었다. 하루는 기어코 테라스 분위기를 내보겠다고 테이블을 침대 아랫켠에 두고 맥주를 마셔보았지만 한 병을 다 마시지도 못한 채 이불속으로 달려들어 둥그렇게 몸을 웅크렸다.
그게 이유였다. 호텔을 숙소로 정한 이유.
포르투는 추운 도시인 것만 같아서. 도우루 강바람이 불어와 창문을 열었을 때 내 손가락을 스치길 바라면서도 숙소는 따뜻한 곳이면 좋을 거라 생각했다.
여행지에서 호텔을 이용할 때는 직접 호텔 사이트에서 예약하는 경우도 있지만 -프로모션이 있는 경우다- 부킹닷컴 같은 숙박 사이트를 주로 이용한다. 숙박업체 사이트는 일정기간을 정해두고 랜덤으로 파격적인 가격 할인을 할 때가 있다. 운 좋게 그 기간에 눈에 띈 숙소를 잘만 잡으면 50% 이상의 할인을 받고 꽤 괜찮은 호텔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포르투에서는 같은 숙소에서 4박 5일 머물고 남쪽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옮겨 다니는 여행은 어쩔 수 없을 때만 해도 충분하다. 다양한 숙소를 접하는 게 재미있어 하루씩 짐을 풀었다 싸는 행위를 반복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한 곳에 오래 머물며 쉼과 여행이 공존하길 바랐다.
포르투는 가만가만 거니는 시간도 반짝인다. 전에 한번 가봤던 곳이라 해서 이번엔 안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렇게 걷다가 낯선 곳에 도달하면 기분은 더없이 생긋하다. 어디가 더 좋다는 말을 감히 하고 싶지 않다. 이렇게나 저렇게나 걸어서 갈 수 있는 작은 동네 같은 느낌의 아늑한 도시지만 조금 멀다 싶을 땐 트램이나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상 벤투 역 근처에 있는 호텔로 정했다. 예약하던 순간에 가격 할인 중인 것이 큰 이유이기도 했지만 오래된 건물 그대로의 느낌을 살려둔 곳이라는 것에 끌렸다. 룸 사이즈는 작은 편이었지만 며칠 지내는데 큰 불편함은 없을 터였다. 체크인을 하는 내 모습은 꾀죄죄하기 그지없다. 밤 비행기로 시작해 터키에서 새벽을 보내고 도착한 오후. 그래도 밝게 웃어주는 호텔 직원들과 인사 나누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는 동안에도 포르투갈이 얼마나 좋아서 다시 왔는지 구구절절 내뱉는다.
첫날 저녁부터 '포르투의 공기를 익숙해질 만큼 가득 마셔야지.' 했던 생각은 무리였나 보다. 짐을 풀고 나서 저녁을 먹고, 작은 서점에 들러 책 한 권을 샀더니 피로가 몰려왔다. 기어코 서점 앞, 작은 플리마켓 거리에서 맘에 드는 핸드메이드 기념품들을 두어 개 고르고야 발걸음을 돌렸다.
8시쯤 되었을까? 숙소에서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그게 밤새도록 이어지고 말았다.
새벽에 눈을 떴다. 커튼이 조금 열린 틈새로 세찬 가로등 불빛이 하얀 침대를 비추고 있었다. 여름이었다면 불빛으로 몰려든 벌레들이 까맣게 그림자를 일렁이고 있을 터였다.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여행지에서는 항상 새벽에 눈을 떠 운동화를 챙겨 신고 새벽 공기 마시며 조깅하는 습관을 들였다고 했다. 사람들이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세상을 뛰면서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은 다르다는 것이었다.
나는 보통 밤거리의 분위기에 잠겨 여행의 기분을 한껏 끌어올리던 터라 이렇게 마주한 새벽의 한 장면이 더없이 뭉클거렸다. 지금이라도 당장 뛰어나가 조용한 돌바닥에 터벅터벅 울림을 만들어볼까 하던 생각은 잠시, 포근한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갔지만.
세차게 비가 내리던 날에는 창 밖을 바라보는 일이 더욱 행복했다. 그것은 하나의 일과였다. 하루 종일 유리창을 흘러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고만 있어도 괜찮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었다. 작은 호텔방에서 머문 이방인의 날들은 푸근하고 편안하고 평화롭고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