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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영 Mar 19. 2019

밤에 찾은 상벤투역

그리고 비파나(Bifana)

#도착


포르투 공항에서 오랫동안 하늘에 시간을 빼앗겼더니 저녁시간이 한참 지났더라. (숙소에 짐만 내려놓고 나왔는데도)  골목길을 여기저기 기웃거릴 시간이 없어 보였다.

다행히 숙소 아래 식당 두세 개가 모여 있었는데, 개중에는 가게 앞마당 테이블까지 손님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아 거리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은색 망토를 두르고 노래를 부르던 그녀의 목소리에 잠시 사로 잡혔지만, 밤이 되니 살을 스치는 바람이 차갑게 느껴지는 순간 이어서. 게다가 여행의 시작은 항상 작고 더 작은 로컬 식당에 끌리는 여행 습관 때문에. 작은 테이블이 4개 남짓 있을 법한 [ Piken Box ]로 들어갔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로컬 푸드 Bifana와 로컬 맥주 Super Bock을 주문했다.


접시를 가득 채운 햄버거 모양의 포르투 Bifana를 한 입 베어 물고 나서야 포르투갈 음식은 짠 편이라는 말을 기억해내고 말았다. ‘덜 짜게 해 주세요.(com pouco sal=low salt)’ 라는 말을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로 연습했었으면서 미리 말하는걸 잊고 말았다. 배고파서 먹는 식사였다기보다 포르투 로컬 식당 분위기를 만끽하는데 들떴기에 맥주 한 모금으로 마음을 달랬다.


그때였다, 갑자기 온 세상이 어둠으로 덮인 것은.  지지직거리는 그 어떤 경고음도 없이 내 주위는 마치 내가 좁은 동굴의 입구로 들어간 순간처럼 어두워졌다.

정전이었다! 사람들은 침착한 것 같았기에 나 역시 그들의 일부가 되어 몇 분쯤은 그대로 있었다.


수분이 흘렀을까? 문득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내가 만들어낸 소리를 내가 주워 담았다. 피식.이라는 표현은 누가 만들어낸 걸까 하고 생각했다. 대체 불은 언제 들어오는거냐며 소리치는 사람이 없었다. 밥은 어떻게 먹으라는 거냐며 화를 내는 심보 나쁜 사람도 없었다. 양초를 가져다주거나 하는 친절 대신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뜻으로 추정되는) 포르투갈어를 두어  외쳤을 뿐이었다.



Bifana는 햄버거 모양의 번(bun) 사이에 패티(patty) 대신 미리 재워두었던 돼지고기나 닭고기 등을 얇은 조각들로 찢어 넣어 먹는 샌드위치의 일종이다. 만들기 쉬워 보인다. 실제 그런 이유로 2013년부터 포르투갈의 맥도널드에서는 McBifana를 팔기 시작했는데, 로컬 음식 팬들의 일부는 이것만큼은 인정하지 않는다. 아무리 단순한 레시피를 내건 메뉴일지라도 패스트푸드의 일환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그들 주장. 실제로 고기를 재우는데 드는 정성과 고기가 부드러워질 때까지 천천히 익혀야 한다는 조리시간은 무시할 수 없겠다. 게다가 로컬 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 각종 시즈닝, 그리고 함께 어울려 마실 화이트 와인 혹은 맥주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겠느냐는 말이다. 잘 만들어진 Bifana를 한 입 베어 물어 잘게 찢긴 고기의 맛을 음미하다가 시원한 맥주 한 병으로 입가심할 수 있다면, 하루의 문을 닫는 낙을 다한 것이 아닐까. 포르투 첫날밤의 첫 식사가 내게는 그랬다.






#상벤투역 São Bento Railway Station (Portuguese: Estação de São Bento)





이대로 하루를 마감하기엔 '여행 첫 날'이 주는 의미가 무색해질 것 같았다. 어두운 밤에 더 빛이 난다는 상벤투역이 바로 눈 앞에 있는데 말이다.


파란색과 하얀색. 보다는 청색과 백색 아줄레주라고 쓰면 조금 더 어울릴까. 마냥 밝고 예쁜 느낌만은 아니어서.

오랜 시간과 정성이 느껴지는 예술작품에 견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영어로는 blue-and-white azulejo 밖에 더 되겠느냐고.그렇다고 일부로 붙이는 과한 수식은 아줄레주의 정적인 화려함에 해가 될 것 같다.


"직접 보고 느끼는  느낌이어야  ."





밤이라는 시간은 마법 같아서 하얀 낮에는 볼 수 없던 매력을 파랗게 파랗게 빛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반짝거리는 모습에 어린 아이처럼 흥분하여 가슴이 쿵쿵대더라. 궁전 같은 그곳으로 걸어 들어가면 호그와트 마법 학교로 데려다 줄 기차가 숨어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잠시 순수한 마음을 가져봐도 어느 누가 흉보지 않을 밤이었다.





2016년에 100주년 생일을 맞은 상벤투역은 외관에서 느껴지던 화사함 만큼 내부에서도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류가 죽도록 갖고 싶었던 적이 있다고 표현했던 보석, 블루 토파즈만큼이나 투명한 파란색이었다.

아줄레주 타일벽화가 말을 걸었다. 약 2만 개의 아줄레주 타일 하나하나가 모여 포르투갈의 역사적 장면들을 큰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마지막 기차에 급히 오르는 사람들과 마지막 기차에서 내려 분주히 역을 빠져나가는 사람들 모두 파란색 그림의 일부로 스며들어버렸다.

가만히 서서 그들에 섞여 보려는데 역 한가운데 있는 시계가 벌써 자정임을, 이제는 집에 갈 시간임을 알려주었다.



아르누보 양식 (the art nouveau style)의 시계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차역인 만큼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자정이 가까운 무렵, 열차도 잠이 들고


역에서 바라본 밤의 포르투






비행기에 올라타고  시간 지나지 않아 완전히 다른 세상에 도착한다는 사실 - 중간에 놓인 개별적인 모습들을 받아들일 시간도 없이- 그레고리우스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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