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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영 Feb 28. 2019

시간을 사다 : 포르투 첫 날

포르투갈 항공사, 라이언에어 탑승기


포르투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밤 9시. 과연 해는 서쪽으로 서쪽으로 내린다더니, 두 시간을 날아와도 한 시간이 앞서있다.


8월, 그들의 밤은 우리들의 낮처럼 환하다.

공항 활주로 한가운데 착륙한 비행기는 계단차와 마주하고 나서야 문을 열어주었다. 하얀색 콘크리트 땅 위로 하늘은 막 막을 내릴 참이다. 신선이 사는 곳에 서린다는 보랏빛 노을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서늘하고 적막한 시간이었지만 노을이 따뜻하게 물들이고 있어서 이 곳은, 마치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깔끔한 외관을 민낯으로 드러낸 포르투 공항으로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갔다. 뭇 공항들처럼 붐비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드문 드문 지나가는 여행객과 천장에 매달린 텔레비전 화면을 번갈아가며 쳐다볼 만큼 고독한 분위기도 아니었지만.


냄새의 기억이 사라진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뜨거운 열기와 함께 나에게로 훅 스며들던 방콕 수완나품 공항의 냄새 같은 기억이 없어지고 만 것이다. 비행기는 나를 공항이 아닌 거대한 활주로에 레고 인형 다루듯 가만 내려놓았고, 그런 나는 포르투의 하늘과 하늘의 색,  너와 너의 눈 빛을 한꺼번에 얼버무리느라 골똘하였던 것. 그렇게 공기의 냄새는 잃어버렸지만 선홍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하늘을 한참 바라보던 나를 기억한다.




마드리드에서 포르투
: 라이언항공 (Ryan Air), 나를 데려가!


첫 포르투갈 여행은 2017년 여름, 스페인 남부 소도시를 함께 둘러보기로 정했다. 국내선을 타고 마드리드에서 포르투로 가는 날이었다.


라이언에어는 저가 항공인 만큼 악명 높은 포르투갈 항공사였다. 그렇다고 저렴했을까? 포르투갈 최고 성수기인 8월인 만큼 원하는 시간대 비행기와 원하는 자리를 찾기도 어려웠지만 항공권 가격 역시 오를 만큼 올라있었다.


아무렴 어때, 나는 포르투로 떠난다!


마드리드에서는 운전으로 국경을 넘는것보다는 시간을 훨씬 절약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내린 결정이었는데 실은 공항 가는 시간, 체크인하는 시간, 대기하는 시간 등을 합치면 큰 차이가 없었던 것 같다. 대여섯 시간 운전하는 것보다야 체력은 아낄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내게 공항에서의 시간은 쉽게 흘러가는 법이 없단 걸 잊고 있었다.



"What?"


나의 첫마디였다.

공항에 일찍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돌아온 그녀의 말 때문이었다.


"오버부킹이야. 대기해야겠네."


"뭐라고? 왜 이렇게 당당해? 이거 너네 문제잖아. 대책은 없이 대기만 하라고?"


"거의 모든 항공사가 다 그래. 글쎄... 뭐라 할 말이 없네. 기다릴래, 말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차들로 꽉 찬 고속도로 같았다. 어느 길 하나 빠르게 해쳐나갈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티켓을 받았지만 좌석번호가 없었다. 보딩(boarding)이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리가 나면 부르겠단다. 재빨리 구글링을 해보니 오버부킹으로 유명한 항공사다운 검색 결과들이 나왔다. 오늘부터 시작할 포르투 렌터카 여행, 숙소, 소도시 여행과 리스본, 한번 더 타야 할 국내선, 이어지는 스페인 남부 여행. 모든 스케줄이 꼬이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지났다. 이륙 지연이었다. 포르투 에어비엔비 주인이 메시지를 보냈다. 매우 늦을지도 모르겠다고 답했다. 지연으로 인해 지친 사람들은 미리 줄을 길게 서있다. 현지인과 여행객이 반반 섞여있겠지. 그들의 노랗고 까맣고 갈색인 머리 모양새들이 점점 동그란 크래커의 모양새로 바뀌고 있었다.


나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줄이 끝난 지 1,2분쯤 되었을까.


"나 대기 중인데, 어떻게 됐어? 좌석 있니?"

물으며 좌석번호 없는 티켓을 보여주니 왜 이제야 왔냐며 호들갑이다. 부당하도록 불친절한 느낌 따위는 받지 않았지만 기분이 묘하다.


‘휴’

드디어 자리에 앉았다. 공항에서 보낸 시간은 실제 머문 시간보다 체감적으로 훨씬 길게 느껴졌다. 예상보다 한 시간 늦게 도착하겠지만 하루가 늦은 게 아니라 다행이었다. 나 빼고 세상은 적당한 속도로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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