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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영 Feb 20. 2019

긴급여권 받은 사연

생각지도 못한 여권 재발급

어쩐지 일찍 도착했다 싶었다.


여행 전 증후군이라도 겪는 걸까, 출발 직전엔 항상 늦는 나였다.


2008년, 뉴욕 JFK 공항에서는 한국행 비행기를 놓쳤다. 버지니아주에서 자그마치 5시간 택시를 타고 뉴욕으로 나달렸건만. 한국에 ‘무슨 일’ 이 있어 급하게 결정한 귀국행이었다.


2012년 홍콩 가는 날 아침에는 항공사에 전화해 다짜고짜 ‘저 가는 중’이라고 알렸더랬다. 마치 친구들과 여행하는 날 “나 빼놓고 가면 안돼”.라고 징징 거리듯.


 여행가는 날은 늘 그랬다. 공항 구경은커녕, 출국 수속을 마치자마자 게이트 찾아 뛰어가기 바빠서, 나란 사람은.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 날 만큼은 ‘공항에서 여유’를 부릴 만한 햇살 쨍한 여름의 한낮 이더라. 깡총한 청 반바지에 하얀색 루즈핏 티셔츠가 꽤 잘 어울렸다. 질끈 끌어올려 묶은 머리의 컬마저 마음에 드는 생긋생긋한 기분.




갑자기 여권 두개가 내 손에!






울기 직전이었다.


 어쩐지 일찍 공항에 도착한 그날은 오전 10시 55분부터 체크인 시작이라는 항공사의 공지사항부터 확인했다. 사람들은 벌써 줄을 서있다. 나도 얼른 그 틈에 끼어본다. 체크인 시작 전에는  줄어들지 않는 '라인’에서 사람들과 마주한다. 가지각색 여행자들의 모습은 귓가에 흘러들어오는 음악만큼이나 들떠있다.


"네에?!"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두 번째 카운터에 앉은 승무원과 마주하자마자 내뱉은 말이다. 여권을 휘리릭 넘겨보더니 '출국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한단다. 불과 6개월 전에도 문제없이 미국 여행을 다녀온 여권이 트집 잡혔다.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여권 뒷 페이지에 수하물 바코드 스티커를 몇 개 붙여놓은 게 화근이었다. 나에게는 티켓을 줄 수 없으니 당장 여권을 새로 만들어오라는 승무원의 채근을 받아들이기 싫었다. 도착지에서 입국허가가 불가할 수 있고, 그것은 고스란히 그들 항공사에 불이익이 있을 거라는 이유였다. 그때는 항공사가 시비 거는 것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더라. 충분한 양의 ‘짜증’이 치솟고 있었지만 내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 여권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나의 탓. 지성인스럽지 않았던 나의 과거인걸. ‘내가 왜 그랬지, 기념 도장 하나라도 찍으면 안 되는 여권에!’ 라며 울먹거리기도 전에 여행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긴급 여권 발급 서비스'를 받을 시간, 딱 그만큼 일찍 공항에 도착했던, 어쩌면 운수 좋은 날이 아니었다면.



출국장 G게이트 뒤편
오전 9시~오후 6시
전화번호 : 032-740-2777~8
긴급여권 발급 소요시간 : 1시간 30분
발급 비용 : 15,000원 / 여권사진 촬영 시 : 10,000원




    긴급 여권 발급 서비스를 요청하러 뛰었다. 영사민원센터에서 계신 분들은 ‘수많은’, ‘긴급한’, ‘해괴한’ 상황을 겪을 만큼 겪으셨겠지. 여권발급 신청서를 작성하고,실물  E-ticket을 제출해야 한다. 스마트폰 앱에 티켓이 있기 때문에 따로 E-ticket을 출력하지 않은 나는 해결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는 걸 인지하고 이젠 정말 눈물을 흘리기 직전이었지만 (비행기를 못 타면 큰 일 날 것만 같았다!) 함께 여행길에 오른 제이의 도움으로 다리에 힘을 실었다.


 "‘12시 50분까지’ 여권을 만들어오면 티켓을 주겠다."라는 으름장을 듣고 온 나는 “빨리 해주세요.” 안달복달이다. 백 미터쯤 떨어진 간이 포토부스에서 맨얼굴로 여권사진을 찍었다. 울상이 따로 없는 극사실주의 못난 사진이 만원, 여권발급이 만 오천 원이나 했는데, 게다가 점심시간이라고 더 기다리란다. 갈 곳 잃은 내 모습은 생긋생긋하긴 커녕, 푸시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비행기 탈 수 있었어?



    “마지막 탑승객입니다.”라는 멘트는 늘 그렇듯 내 차지였다. 앞에서 세 번째 창가 좌석은 내가 자세를 바꿀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아침 식사는커녕 두 시간 훌쩍 지나도록 물도 못 마신 나는 서러움에 빼꼼히 나온 눈물을 삼켰다.  창밖으로 이륙 준비 중인 비행기 날개만 주시하고 있었다. 갑자기 생긴 여권 1+1 사태를 되돌려보기로 꿀꺽 마음먹었다. 한 개가 아닌 두 개의 여권과 함께 시작하는 여행이라니, 금세 기분이 나아졌다. 비행기가 이륙한다는데 굵은 빗방울이라도 떨어질 듯 창 밖이 흐려 보인 건 찰랑거리던 눈물 탓이었겠지.  




긴급여권 (=단수여권)으로는 자동출입국심사가 불가능하다.
면세품을 찾을 경우, 단수여권 복사 절차가 따른다.
해외에서 (국내선 이용 포함) 출입국시, 단수여권 발급이유에 대한 설명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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