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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영 Apr 18. 2019

여행지에서 맛집이란

그래서, #포르투 맛집이 어디야?

여행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신난다.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여행지에서만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음식 이야기일 것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먹방 프로그램은 이제 글로벌하게 해외로 뻗어 나가고 있다. 유명 연예인의 집에 찾아가서 냉장고를 터는 대신, 연예인이 직접 찾아가는 맛집에서 나 대신 맛있는 음식을 먹어주는 모습은 아예 관전 포인트로 자리 잡았다.


여행 이야기라면 둘째 가면 서러울 정도로 할 말이 많은 나지만, '어느 여행지에서 꼭 먹어봐야 할 어떤 음식 메뉴' 따위를 말하는 데에는 잼병이다. 미식가도 아닌 데다 '먹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루 한두 끼에 간혹 간식을 더하면 그걸로 족하는데, 그마저도 여행지에서는 특히 '아무 데나'에서 '아무거나' 먹어도 괜찮더라는 것이다.(대신 와인이나 맥주는 그 지역의 것을 꼭 탐한다.) 이런 나를 이해 못하는 지인들은 내가 여행을 떠날 때마다 '거기 가면 그거 꼭 먹어봐.', '어느 도시에 어디가 맛있대.' 같은 조언을 해주지만 그 말을 듣고 따른 적은 없던 것 같다. 믿기 어렵겠지만 포르투갈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그 에그타르트를 (한 달간) 딱 한 개 사 먹었다. -과연 비할 데 없이 바삭하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달콤한 커스터드 크림이 입에서 살살 녹더라. -


여행 습관이 이렇다 보니 간혹 난제에 부딪히기도 한다. 걷다가 '아무 데나' 들어가서 먹은 식사가 별로였던 날엔 적어도 다음날은 어디서 무얼 먹을지에 대한 고민이 없지 않아 생기기도 했던 것이다.

숙소에서 조식을 제공하지 않을 때는 적당히 트렌디하고 아담한 크기의 브런치 가게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고 싶었다. 어제의 저녁식사가 별로였다면 오늘은 인테리어가 무심하더라도 맛있는 로컬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을 찾고 싶었다. 이왕이면 옆 테이블의 여행자들과 대화를 할 수 있고 로컬 분위기를 담빡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면 더없이 좋겠고. 결국 검색의 힘을 믿게 되고, 외국인들이 찾는 음식점 사이트를 찾아 리뷰어들의 말에 현혹될 수밖에 없는 날들이 지속되기도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머물고 있는 숙소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여행하다 인사를 주고받은 같은 여행지 친구들에게 묻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그리 내키는 방법이 아니었다.  괜스레 까끌까끌한 느낌을 가진 물음 같았다. 사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흥미롭고 맛있는 질문이라는 것을 여행 경력 10년이 넘어서야 깨달았다. 이제는 그들이 가르쳐준 식당을 찾아가는 행위, 그 여정 자체가 나에게 모험이 되기도 한다. 마치 꼬불꼬불한 미로를 탈출한 아이들이 느꼈을 법한 미션 수행의 기쁨이라는 것을 십분 느끼며.




그래서,
포르투갈 맛집은 대체 어디라는 거야?


이상하리만치 포르투갈은 내게 맛집 탐방의 기회를 선사하지 않았다. 북부에서 중부를 거쳐 남부를 훑는 포르투갈 한 달 여행 중 맛집 탐방 성공률은 1할쯤 될 것이다. 물론 '아무 데나' 들어갔는데 '성공'했던 집은 제외시켰다. 그렇게 찾은 곳에 대한 성공률은 꽤 높은 편이다. 예를 들어 대학교의 구내식당이라던지, 우연히 마주친 벼룩시장 한쪽 코너에서 사 먹는 간식거리라던지, 단지 간판이 예뻐서 들어가 본 카페라던지 말이다.



1

포르투 숙소에서 추천해준 해산물 맛집 <Ostras Coisas>는 성공적이었다. 예상치 못한 생선구이 불쇼가 눈 앞에 펼쳐졌고, 그들이 추천해준 에피타이저격의 해산물은 너무나 신기하게 생겨 사진을 10번 이상 찍어댔다. '메인 메뉴 나오기 전에 이거 한 번 먹어볼래? 포르투갈 북부 바다에서 나는 유명한 거야.'라고 말한 그는 그것을 손에 들고 껍질을 벗겨내어 쪽쪽 빨아먹는 시범을 직접 보여주더라. 생선위에 뿌려진 소스 맛이 너무도 맛있어서 '와, 이게 뭐지?' 하며 테이블 한 편에 놓인 소스병을 살펴보니 포르투갈 유기농 올리브 오일이었다! (이럴 수가!) 그곳에서 만난 직원이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며 사진을 보내달라 하였고, 손님으로 와 있던 노란 머리의 소년들은 헤죽 웃으며 내 주변을 탐방하다가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동양인라 그런 것 같다) 늦은 점심시간에 찾아간 터라 금세 손님들은 빠졌고 조용한 시간이 찾아왔다. 브레이크 타임이 걸렸을 거라 예상하자 마음이 급해졌지만 그들은 끝까지 느리게 식사하는 여행자의 권리를 빼앗아가지 않았다.


생각보다 크고 튼실한 생선을 즉석 소금구이 해주다!
버진 엑스트라 오일 Quinta do Javali Douro
홍합과 조개사이, 포르투갈 북부 특산 메뉴, Barnicles





2

리스본에서는 매일 아침 다른 곳에서 브런치를 먹었다. 구글링을 하면 할수록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브런치 맛집이 넘쳐나고 있었다. 어느 여행지나 외국인들이 정착하여 오픈한 카페나 공방 같은 것들이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최근 리스본에는 특히 유럽풍의 트렌디한 카페들이 생겨나고 있음을 느꼈다.


 <Fabrica Lisboa>가 그랬다. 다닥다닥 붙어 앉은 손님들은 메뉴 두 개와 음료 두 잔이면 꽉 차는 테이블에서 아침을 열기엔 불편할 법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따뜻한 조명이 흘러나오는 라운지 음악 선율에 맞춰 흔들리고 있었다. 이른 시간부터 손님들이 몰려들자 직원의 얼굴에선 점점 웃음기가 가시는 것 같았지만 (제이는 그녀를 보고 스카이캐슬의 김주영 선생 같다고 했다!) 기분 나쁘기는커녕 내가 일어나서 서빙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아보카도 샌드위치와 연어 샌드위치의 생김새가 단출했다. '기대한 만큼 실망도 큰 걸까.'라고 생각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자마자 '으음~' 같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푸석해 보이는 못생긴 빵은 촉촉함과 바삭함 사이 완벽한 중립을 지키고 있었고, 적당하게 다진 아보카도와 구운 연어 역시 최대의 풍미를 내고 있었다. 절대 멋 부리지 않은 커피를 두 잔이나 마셨다.






3

그 날 저녁은 간판이 잘 보이지 않아 지나치기 쉬운 <da Prata 52>라는 곳을 찾았다. 'simple dinner'를 겨냥해서 찾은 곳이지만, 1인 2개의 타파스를 주문하는 것이 규칙이었다. 레스토랑 입구에는 LGBT 환영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는데 운영하는 남자 두 명이 다정한 사이일지도 모르겠다는 추측을 했다. 커다란 오크통이 테이블 역할을 하는 벽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한 편에는 네모난 테이블이 보통의 카페처럼 놓여있었고, 가게를 가득 메우는 음악 소리는 어디서 나는 것인지 궁금해 스피커를 찾느라 구석구석 눈을 떼지 못했다. 타파스 한 개의 가격은  € 6.9 ~ € 8.9 정도로 높은 편이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저렴한 스페인식 타파스와는 달리 요리방법이나 재료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문어요리를 좋아하는 제이가 같은 종류를 두 개 주문하자, "우리가 두 개씩 주문하라고 한 이유는 다양한 음식을 맛보게 하기 위해서인데, 정말 같은 걸로 할 거야?"라고 되물었다. "문어를 좋아하거든." 하고 웃어버리며 대신 나는 다른 종류 두 개를 주문할 거라 대답했다. 그들은 음식을 내온 후에도 두세 번에 걸쳐 "음식 어떠니? 괜찮아?"라는 질문을 건넸고, 함께 시킨 상그리아에 더 단 맛이 돌기 원하면 스프라이트를 더 넣어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본인은 너무 단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말해주니 그냥 그렇게 마셔야 할 것만 같다. 새삼스레 기분이 상그리아 속에 담긴 커다란 오렌지 조각처럼 발그레해졌다. 레스토랑을 나서기 전에 "음악이 너무 좋다. 스피커는 어디 있는 거니?"라고 물었다.


알고보니 따뜻한 주인장들 / 상그리아 잔이 포르투갈식 도자기 같았다.
각기 다른 맛을 볼 수 있도록 메뉴를 구성한 레스토랑











4

실패에 관하여


내가 경험한 포르투갈 맛집을 다 열거할 수는 없으니, (앞으로 이어질 여행기에서 소개하겠다.) 실패의 경험을 조금 나누려 한다. '실패'를 대신할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했다. '아쉬움'이나 '여운'같은 단어가 더 좋겠다.


포르투에서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이었다. 예약해둔 와이너리 투어를 위해 숙소에서 나서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 같이 완벽하다!) 사진이 예쁘게 나오는 스폿이나 도우루 강을 한눈에 내려다보기에 좋은 뷰포인트 같은 것들을 알려주었다. 심지어 신호에 걸려 차가 멈춘 순간에는 자신의 핸드폰 사진첩을 내보이는 친절함을 덧붙였다.

'혹시 문어(Polvo) 요리 맛있는 식당 알고 있나요?'라는 질문을 하자마자, 그런 것쯤은 내게 맡기라는 어깻짓을 하며 그 식당에 대한 인기와 역사와 그가 추천하여 방문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만족감을 표했는지에 대해 늘어놓았다. 그는 직접 종이에 식당 이름을 적어주었다. 택시에서 내릴 무렵 거짓말같이 하늘이 개었다.



하지만 그날 저녁 찾은 그곳은 영업 중지 중이었다. 일주일간 휴가라는 안내문이 A4용지에 적혀있었다. 하-


이런 비슷한 일은 포르투갈에서 여러 번 일어났다.


포르투의 유명한 <Majestic Cafe : 조앤 롤링이 해리포터를 집필했다고 하는 곳>는 내가 찾은 여름에도 문을 닫은 기간이더니, 다시 찾은 겨울에는 무려 2주간 직원 장기 휴가기간이란다. 두 번 다 문 앞에서 울상을 하고 기념샷을 남겼다.

오비두스(Obidos)의 동화 같은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추천해준 성곽 안의 로컬 레스토랑은 이미 문을 닫은 뒤였다. (그땐 이미 저녁 시간이 훨씬 지나있었고, 밤늦게까지 영업을 하지 않는 곳이었다.)


어느 날 저녁 포르투에서는 '무얼 먹을까' 하며 30분째 걷다가 어여쁜 간판에 사로잡혀 들어가려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대여섯개 남짓 있는 테이블에 거짓말 안 하고 한국 사람들로만 꽉 차 있었다.

리스본에서 몇 번 파두 레스토랑을 찾았을 때도 그랬다. 비긴 어게인 방송 전인 2017년 찾은 '아무' 파두 레스토랑에서는 관객과 소통하며 노래를 하는 여러 명의 파두 가수들로 인해 온 몸이 전율한 것에 비해, 비긴 어게인 방송을 탔다는 유명한 파두 레스토랑은 일부로 찾아갔건만 아무런 감흥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별로'였다.


남부 도시, 라고스(Lagos)에서 며칠 머무는 동안 숙소 라운지가 너무 좋아 그곳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일이 많았다. 하루는 하루 종일 동네 산책을 하다가 로컬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까지 해결하고 올 요량이었는데, 그 날 따라 오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라. 우산 하나로 모자랄 지경이라 예정보다 일찍 귀가하여 숙소 레스토랑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웬걸, 하필 그 날은 셰프를 초대하여 코스요리를 주문할 수밖에 없는 이벤트 데이였고, 하필 그 날의 주제는 'Japanese Peru Fusion'이었다. 끄응... 선택의 여지가 없어 '기념으로' 합류했지만, 먹는 양이 적은 내게는 과했을뿐더러 평소에도 자주 접하는 일본식 꼬치와 롤, 미소장국 같은 것이 계속 나오는 바람에 와인만 벌컥벌컥 마셨던 걸 기억한다.










흠...

포르투갈 한 달 여행 중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없을 것 같아 앞으로의 에피소드에 녹여내기를 기약한다. ( 맛집을 부러 찾지 않으며 실패가 많은 나 같은 여행자라도 말이다! )

네이버에서 준 파워블로거쯤으로 활동하는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여행지에서는 네이버와 안녕한다. 세계 어딜 가도 한국인은 만난다는 말처럼 네이버에도 세계 여행 정보는 넘쳐나지만 한정적이다. 내게 영어가 친숙해서인 이유도 있겠지만 여행지에서의 구글링과 낯선 이들과 잠깐이라도 나누는 정보들은 그야말로 충분할 만큼 '최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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