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여행 #코임브라 가는 날
새벽에 눈을 떴다. 창 밖에서 파도 소리 같은 것이 들려오고 있었다. 빗소리였다. 창문을 조금 열자 진한 비의 향기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지난 계절에 나는 스스로를 Pluviophile이라 칭했었지 : 비를 좋아하고, 비의 냄새로부터 편안함과 즐거움을 찾는 사람.
코임브라 기차 시간을 검색했다. 미리 기차표를 예약하는 것이 백번 나았지만 코임브라에서 얼마나 오래 머무르고 싶을지 가늠하기 어려워 그만두었다. 돌아오는 기차의 막차 시간 정도만 알아두고 코임브라에서 양껏 머물 생각이었다. 전날 사두었던 기념품들을 만지작 거리다가 조금 더 잠을 청했다.
8:30A.M.
간단한 요기를 하려고 포르투의 가장 오래된 극장 아래에 있는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커피 창고라는 뜻의 <ARMAZÉM DO CAFFÈ> 창가 자리에 앉아 한숨 돌리려는데 이른 시간이라 브런치 메뉴는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게다가 그녀는 영어를 할 줄 몰랐다. 관광지 한가운데 있는 카페 이지만 관광객들이 찾지 않는 곳, 영어는 신경 쓰지 않는 곳이라니, 괜히 매력적으로 다가오더라.
어쩔 수 없이 카페를 나와 상벤투역으로 향했다. 펼쳐 든 우산이 발걸음에 맞춰 흔들거릴 때마다 출근하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출근하는 마음과 여행하는 마음은 다를 것이다.
상벤투역 안쪽으로 기차표를 사는 창구가 여러 개 있다. 지하철로 한 정거장 이동 후 기차로 갈아타서 코임브라 B역에 내려 코임브라 대학교 가까운 코임브라 역으로 다시 갈아타야 했다. 굉장히 복잡하게 들리겠지만 사실 서울 지하철 갈아타는 여정과 비슷했다. 기차표는 편도 17.2유로였다.
기차 출발시간까지 대략 30분 정도 남아있던 것 같다. 포르투를 여행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눈여겨보았을 상 벤투 역 왼편에 붙어있는 <Jeromymo Cafe>에서 커피 두 잔과 에그타르트(Pastel Nata)와 포르투갈식 크로와상을 주문했다. 다 합해서 5.55유로밖에 안 했는데 5.6유로를 건네니 0.05유로 줄 거스름돈이 없다고 미안해하던 종업원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우리는 제로니모 카페의 로고가 귀엽다고 이야기하며 창 밖에 지나가는 우산들을 바라보았다.
9:20A.M.
기차인지 지하철인지 아직도 아리송하다. 버튼을 누르고 타야 하는 유럽 기차 시스템에는 갈 때마다 적응 중이다. 4분 뒤 첫 번째 역에서 갈아탈 것이다. 차창밖의 도우루 강은 아름다웠다. 옆자리에 앉은 노부부는 한국인일까 궁금한 사이 그들의 대화가 들렸다. "이 사진 봐요, 여기 참 좋았는데..."라고 말하는 모습 역시 도우루 강과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환승을 위해 내린 곳에서 역무원에게 코임브라 기차 타는 곳을 물어보니 "에이또, 에이또"라고 반복하셨다. 8번 기차 레일을 찾아가란 뜻이었다. 친절함에 감사하여 나 역시 " Obrigada. Obrigada." 반복하여 인사했다.
9:40A.M
2등석 기차는 콘센트와 쓰레기통이 구비한 깔끔함을 자랑했다. 머리를 댈 수 있는 쿠션이 덧대어 있고, 책을 읽거나 랩탑을 할 수 있는 커다란 트레이가 장착되어 있었다. 신호가 약하지만 와이파이도 있다는 걸 자랑으로 내세우고 있었다. 기차 안에서 여행자에게 꼭 필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출퇴근 시에는 유용할 것이다.
서류가방을 오버헤드빈에 올리려던 신사는 손가락으로 훑어 먼지가 있는지 확인 중이었다. 그는 갈색 수트를 입고 뿔테 안경을 끼고 있었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내가 아는 그와 비슷한 사람을 떠올리고 있었다.
10:52A.M.
코임브라 B역에 도착했다. 포르투에서 함께 기차에 올랐던 이탈리안 여인 세명과 이번에도 함께 내렸다. 우린 '진짜 코임브라 역'에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는지에 대해 눈빛으로 대화하며 함께 우왕좌왕하다가 함께 해결책을 찾았다. 3번 레일에서 20분을 더 기다렸다가 11:10A.M. 기차를 타고 10분을 더 가서 코임브라에 도착했다. 코임브라에는 잠시 비쳤던 비가 다시 내리고 있었다.
비가 내리는 코임브라 역에서 약 10분 정도 가만히 서있었다. 코임브라 대학교는 역에서 가까운 곳이라, 비도 오고 그래서, 택시를 탔다. 젊은 남자 기사분이 가리키는 건물에서 입장료를 지불하고 가장 먼저 조아니나 도서관으로 향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손꼽히는 곳.
비로 인해 질척거리는 땅을 밟고 우산을 손에 들고도 발걸음만은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