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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영 May 26. 2019

빛이 출렁이는 곳, 조아니나 도서관

비 오는 날 코임브라 기차여행 #2

조아니나 도서관(Biblioteca Joanina) 투어 시작 시간을 10분 정도 남겨두고 티켓을 손에 넣었다. 코임브라 대학교 탐방과 도서관 입장 티켓을 묶어 구입하면 1인당 12.5유로이다.


어린 시절 학교 운동장에서 첨벙 대던 고인물 같은 것이  흙바닥 곳곳에서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운동장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조아니나 도서관으로 걷는 동안 후드득후드득 빗방울이 거세진 바람에 그만, 위아래서 통통 튀는 물방울에 꺅꺅거렸던 것 같다.


왼쪽 끝 건물 옆에 난 계단으로 내려가면 나오는 입구



11:50A.M.

조아니나 도서관은 분명 운동장에 있는데 입구는 계단을 내려간 곳에서 시작한다. (알고 보니 입구와 출구를 달리한다.) 지하 2층 입구에서 맞이하는 그녀에게 티켓을 건네자 학생 감옥으로 사용된 공간을 먼저 둘러보고 계단을 올라가면 좋을 거라는 설명을 해주었다.

 

학생 감옥?

 Prisão Académica (Academic Prison)이라 불리는 이 곳에는 규율을 어기거나 행동거지가 바르지 못한 학생들이 갇혀 있었던 곳인 모양이다. 학생들을 가두기에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닌가 라는 섬뜩한 마음이 들자 하얀 벽에서 서늘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듯하여 서둘러 계단을 올랐다.


지하 1층은 오래되어 헤진 책을 보수하고 유지하는 곳이었다. 같은 시간대에 도서관 투어 티켓을 거머쥔 사람들은 그곳에 모여 기다렸다가 도서관으로 향하는 문이 열리자 들뜬 표정을 그대로 내보였다.



지하1층 따로 보관 중인 오래된 책들
기다리는 동안.




#조아니나도서관

장엄하다. 어두운 곳에 살아 숨 쉬는 책들이 놓여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엄숙해질 수 있을까. 오래된 책이 주는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는지 잠시 생각해보았다. 창문으로 비가 그쳤음을 알려주는 빛이 들어왔다. 책 사이에서 출렁이는 빛의 추임새는 분명 아름다운 도서관 분위기를 더욱 살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한껏 숨을 들이 마신 채로 조용히 걸으며 단 한 권의 책도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최대한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필요에 의한 빛이 새어 들어오는 동안 적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여 책이 상하지 않도록 보관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박쥐 공격 대비책을 세워 두었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사실 박쥐는 조아니나 도서관이 설립되었을 무렵부터 함께하고 있었다고 한다. 보통의 박쥐보다 훨씬 작은 크기(약 1인치)의 박쥐들이 책장 구석에서 잠을 자고 있다가 밤이 되면 나타나는 책벌레들을 먹어치운 다는 것.



이 아름다운 도서관의 이름은 <Noble Floor : 장엄 홀>이다.
보통의 박쥐보다 훨씬 작은 크기의 박쥐가 300년이 넘는 세월 책을 보호하고 있었다?! (사진 출처 :smithsonianmag.com)


포르투갈 조아니나 도서관 (약 10분 정도의 짧은 도서관 관람이 끝난 후에는 이 문으로 나온다.)






12:30P.M.

때마침 점심시간이었다. 도서관 탐방의 시간은 아쉽지만 10분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왕 대학교에 왔으니 학생 식당을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식당은 두 군데가 있었던 것 같다. 가까운 곳으로 들어가니 반계단 아래로 내려간 곳에 정겨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포르투갈을 상징하는 국기 등의 굿즈들이 식당 한 구석을 장식하고 있었다. 식당에서 토론이나 공부를 한다고 두꺼운 책을 펼쳐둔 학생들은 지구 상 곳곳 어디에나 있나 보다.


줄을 서고 식판을 들었다. 단출한 메뉴, 무엇을 먹을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포르투갈 정통 음식인 Alentejo(알렌테주 : 지역 이름이기도 하다)를 골랐다. 영어로 <Pork and Clams>라고 불리는 알렌테주는 말 그대로 삶은 돼지고기와 조개를 섞어 요리한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된장 보쌈과 비슷한 맛을 내는 듯 하지만 조금 더 퍽퍽한 고기에 조개를 더했다고 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하얀 밥과 함께 먹으면 짭조름한 양념 맛에 씹는 맛이 더해져 무난하면서도 맛있는 한 끼를 해결하기에 좋다.


포르투갈 전통음식 Alentejo 한 끼 식사 4.5유로 (한화 약 6,000원)
코임브라대학교 학생식당 입구 (벽에 덕지덕지 붙은 포스터가 눈길을 끈다. )
흐린 날 오후 코임브라 대학교





대학교를 둘러보려는데 직원들의 점심시간이란다. 그들은 점심시간 등의 휴식을 정확히 지키기 때문에 (우리나라 식당의 Break Time과 비슷한 개념) 그동안에는 대학교 시설에 접근하기 힘들다. 아쉽지만 기념품샵에서 도자기로 구운 자석과 컵받침, 코임브라 스케치 연필을 구입한 뒤 코임브라 대학교를 떠나기로 했다.



1:30P.M.

비가 그쳤다. 대학교를 나가 내려가는 길에 보이는 마을은 포르투나 리스본에서 본 마을과 느낌이 또 다르다.

올라올 때와 달리 내려갈 때는 걸어가는 것을 택했더니 꼬불꼬불한 길을 제대로 알 길이 없다. 푸니쿨라를 발견했지만 주말에만 운행한단다.

복슬복슬한 개와 함께 있는 노인 두 분에게 길을 물었더니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지도를 꺼내 펼쳐 보인다. 알고 보니 그들도 여행자들이었다.


"우리도 여행자들이야, Dutch."




2:00P.M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할 무렵 운 좋게도 택시를 잡았다. 이번에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영어를 도통 하지 않는 택시 기사와 신기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졌다. 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파르고 좁은 돌길을 파르륵 내려갔다. 겨우 10분도 안되는 구간이었지만 놀이기구라도 타는 양 'Oh, my!'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올라왔던 길과 내려가는 길이 다른 이유가 무엇일까?'


알고 보니 이 근방 길은 죄다 일방통행이라 올라왔던 길로 내려갈 수는 없던 것이었다. 택시에서 내릴 무렵 '블라블라' 말을 걸어왔지만 느낌상 이대로 포르투까지 가자는 말인 것만 같아서 "No."라고 대답했다. 훗. 택시 아저씨와는 사이좋게(?) 헤어졌다.







비가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하였다. 두어 군데 기념품 가게를 구경하고 골목을 걸었다. 시들어가는 야채와 과일이 진열된 가게를 지나고, 자전거를 탄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길을 잃은 건 아닌가 걱정할 무렵 원점에 도달했다.



3:00P.M.

아무 식당에 들어가 맥주를 시켰다. '아무'맥주를 주문했더니 너무 '시큼'한 과일향이 강해서 그만, 맥주를 바꿔달라 요청하니 흔쾌히 바꿔주신다. 포르투갈 에일 1906을 마시며 이번에는 문어요리를 주문했다. 문어가 없다며 '오징어(깔라마리) 어때?' 하는 말에 이번엔 내가 양보하기로 한다. 흔하디 흔한 오징어튀김만은 아니길 바랐지만 꽤 훌륭한 오징어 요리(Grilled Squid with vegetables)가 나왔다. 레스토랑에서 라이브 노랫소리가 들렸다. 손님 중의 한 명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모양이다. 창 밖은 다시 비가 그쳐 빛이 닿을 듯했지만 식당을 나서니 다시 비가 내렸다.




오래 걸으면

'외로움'은 '그리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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