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리섬 은 내 거야
쵸이가 파란 눈의 영국 남자를 데리고 왔다. 발리에서 만났다는 그의 이름은 토미(Tommy)였다. 토미는 키가 크고 턱수염을 길렀으며 반짝이는 눈망울로 대화를 하는 듯 말수가 적었다. 쵸이는 토미와 토미의 친구들을 만나 발리뿐 아니라 길리섬마저 정복했다고 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파라다이스, 길리섬.
"에린, 길리섬에 꼭 가봐."
한국에 돌아온 쵸이는 갑작스레 싱글이 된 내게 여름방학 맞이 길리섬 여행을 추천했다.
쵸이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음악에 쉽게 취하는 사람이었다. 한밤중에 아스라이 피어오르는 달무리 같은 사람.
나는 이토록 드라마틱한 로맨스를 꿈꾸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발리 항공권을 끊어버렸다. 발리 시내에서 한참 들어간 서핑 캠프도 찾았다. 무작정 혼자 떠난 여행이었다. 여행을 떠날 때의 마음이 생각나지 않는다. 무더위와 추억이 버무려진 서울 공기에 숨이 턱턱 막혀 지쳐있었다는 것뿐.
“파당파당 비치(Padang Padang Beach) 서핑을 배우고, 여행자들을 만나야지. 스미냑 해변에서 태닝을 하고, 발리 맥주를 마시며, 길리섬에 하나밖에 없다는 사마사마 레게 바에 가서 실컷 레게 음악을 들어야겠다.” 같은 생각들은 비행기 안에서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서핑 캠프는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었다. 너른 잔디밭에는 온종일 따스한 햇빛이 비추고, 아침에는 새소리와 함께 바람이 불어왔다. 서핑 수업은 주로 새벽에 있었다. 유럽 전역에서 온 여행자들은 연인끼리, 친구끼리 혹은 혼자 그곳에 장기간 머물고 있었고, 어느 날 찾아온 동양 여자 사람에게도 금세 마음을 열어주었다. 서핑을 가르쳐주는 세명의 현지 서퍼들과 두 명의 캠프 관리자와도 모두 친구처럼 지냈다.
우리는 저녁에 바닷가에서 펼쳐지는 파티 음악을 찾아가곤 했었는데 스쿠터를 탈 줄 모르던 나는 항상 누군가의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오르막 내리막을 달리는 스쿠터와 살결을 스치는 바람, 아득한 곳에서 들려오는 음악을 쫒는 우리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서핑 캠프에서의 날들은 평화롭게 지나갔다. 빈탕 맥주를 자유롭게 꺼내먹고 냉장고 옆에 적힌 이름 옆에 내가 마신 맥주병의 개수를 스스로 기록했다. 다 함께 모여 카드게임을 하거나 각자 책을 읽었다. 어떤 이는 기타를 치고, 어떤 이는 색칠을 했다. 독일에서 온 여자아이 세명은 비키니를 입고 요가를 하며 나에게 "Don't look!"이라 외치곤 했다. "I won't look!"이라 외치며 서로 깔깔대는 평범한 하루하루가 그렇게 지나갔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보통날들이었다.
발리에서 길리 트라왕안 섬에 갈 때는 빠당바이에서 에카자야 배를 타는 것이 가장 쾌적하다. 영문 홈페이지에서 직접 예약을 마친 후 -윤 식당 방영 후에는 예약할 수 있는 옵션이 생겼단다.- 정해진 픽업 장소 중 알맞은 곳에서 기다리면 미니밴이 나를 태우고 부둣가에 내려준다. 다음은 배로 옮겨 타면 되는 것이다.
길리섬으로 가는 날 아침 내 상체만 한 배낭을 메고 픽업장소 중에 하나인 맥도널드로 향했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이 없었다. 아침 요기 거리를 간단히 하고 나니 미니밴이 도착했다. 맥도널드에서 짧게 대화했던 독일 남자와 함께 미니밴에 올랐다.
일이십 분이 지났을까. 우리의 목적지가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참 도로를 달리고서야 깨달았다. 미니밴이 눈 앞에 도착했다는 이유만으로 여행자의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올라탄 잘못이었다. 그들은 가까운 선착장에 무작정 우리를 내려놓았고, 함께 있던 독일 남자아이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으리라) 허연 얼굴만큼이나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보다 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주변에는 오토바이를 하나씩 차지한 현지인 무리들이 있었다.
"혹시 여기서 길리섬으로 가는 에카자야 배를 타려면 어떻게 해야 해?"
"여기 아닌데... 너희 잘못 왔어."
"그건 나도 알아,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배가 출발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데?!"
나는 울기 직전인 표정으로 아무 상관없는 그들에게 애걸복걸하듯 '지금 빨리 길리섬으로 향하는 배를 타야 한다'는 것을 어필했다. 그들 중 한 명이 구세주처럼 다가와 나를 태워주겠다고 했다. 자신의 친구를 데려와 허여멀건한 독일 남자아이도 함께 태웠다.
간신히 배에 타고 한숨을 돌렸다. 나와 독일 남자는 다시 헤어졌다. 길리섬에 도착한 후 딱 하루 저녁에 그를 마주쳤을 때는 묻지도 않았는데 다짜고짜 여자 친구가 있다고 하더라.
‘What?!’
정작 해야 할 말인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다니, idiot.
길리섬은 기대만큼이나 동화같이 소박하고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섬 외곽을 도는데 2시간이면 충분했다. 맑고 푸른 바다는 철썩거리는 파도만 아니었다면 하늘인지 바다인지 구별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골목으로 들어갈라치면 우거진 바나나 잎과 아기자기한 집들이 시선을 끌었다.
미리 예약하지 않았지만 어렵지 않게 찾은 숙소, Brothers Bungalow는 스머프 마을처럼 작은 초가집 같은 방들이 모여 또 다른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아침마다 그들은 Jaffles(재플스: 발리 전통 샌드위치)를 만들어주었고, 나는 접시를 들고 바닷가 썬베드에 앉아 하루를 시작했다. 이병률 시인의 책을 가져가서 매일 읽다가 마지막 날 숙소에 남겨두고 왔다. 그렇게 그들의 프런트에는 여행자들이 남기고 간 각국 언어로 쓰인 책들이 쌓여가고 있었다.
사마사마 레게 바에 가보기로 했다. 첫날은 섬을 한두 바퀴 돌면서 분위기만 살폈던 곳. 이곳에서 흘러나오는 신나는 레게음악은 길리섬을 가득 메웠다. 첫 방문에는 저녁식사를 주문했다. 수수한 볶음밥 한 접시(나시고랭)였고, 파티를 즐기기엔 한참 이른 시간이었기에 손님은 나 하나밖에 없었다. 오픈 시간에 맞춰 레게 바에 가는 일이란. 귀엽지 않은가? 훗. 여자 직원 둘과 남자 직원 넷과는 순식간에 친구가 되었다. 내가 밥 먹는 내내 외롭지 않을 만큼 옆에서 말을 시켰다. 함께 사진을 찍고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그것이 그렇게 좋지도 싫지도 않았다. 그렇게 밥을 다 먹은 후에는 산책 후에 다시 찾아오겠다 약속했다.
밤이 내린 후 사마사마레게바는 열기를 채울 준비를 마친 후였다. 1층에는 사람들이 마음대로 춤을 즐길 수 있는 얕은 높이의 무대가 있었지만 밤이 깊어질수록 리듬에 몸을 맡기는 사람들이 늘어나 무대라는 개념은 필요 없어졌다. 직원들 중 한 명이 나를 2층으로 데려갔다. 2층에는 가운데가 뻥 뚫려 1층 무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bar형태의 테이블이 있다는 이유였다. 실제로 그 자리는 명당이라 할만했지만 2층에 있으니 파티를 즐기는 무리에 합류할 기회가 줄어들었다.
그날 밤 사실 나는 ‘나도 파란 눈의 인연을 만날지도 모른다.’라는 기대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친구가 된 직원들은 ‘보호’라는 명목 하에 번갈아가며 내 자리 옆을 떠나지 않았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혼자 앉아 칵테일을 마시는 내게 멋진 누군가는 말을 걸었으리라.
방갈로에서 며칠 지내다 보니 친해진 친구가 있었다. 그는 길리섬에서 가장 멋진 선셋 포인트에 나를 데려갔다. 지는 해를 삼키는 수평선 너머를 함께 바라보며 모래 무덤에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나에게는 그 뿐이었다.
하지만 그날 밤 그가 내 방문을 두드리고 말았다. 문을 열어주지 않았더니 충격을 받았던 걸까. 다음날 내내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날은 길리섬을 떠나는 날이었다. 배를 타기 전까지 반나절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길리섬을 천천히 걷다가 친구들을 만나 인사하고, 바다 뷰가 좋은 카페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고 떠날 예정이었다.
조조(Jojo)라는 친구가 내게 말을 걸었다. 섬을 떠나는 날이라 하니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길리섬에서 유명한 포토존에서 그네를 타며 사진을 찍었느냐 물었다. 커플들의 전유물 같은 그곳에는 가보지 못했다 하니, 급히 나를 데려갔다. 어디선가 자전거를 빌려왔는데 한참 타다 보니 바퀴에 구멍이 났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아는 지름길을 질러가는 내내 진흙탕물이 종아리에 튀었다. 꺅꺅 거리며 도착한 그곳에서 그는 내게 인생 샷을 남겨주었다. 그 언젠가 조조가 한국에 오면 내가 여행 친구가 되어주기로 약속했다.
*1년 뒤에 나PD의 윤식당이 방영되었다. 나를 비롯한 주변의 길리섬 여행자들 (그곳에서 만난 스위스 남자친구와 아직도 사랑하고 있는 S포함) 은 모두 슬퍼하며 메세지를 주고 받았다. 우리만의 추억이 깃든 곳이 알려지기 싫다는 한 마음이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