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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영 Mar 21. 2019

타인보다 민감한 사람들의 특권

(feat. 걱정인형)


“너는 너무 예민해.”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

“다른 사람 신경 쓰지 마.”


귓가에 쟁쟁하게 울리는 이런 말들이 사실 나를 괴롭히지는 않는다. 여전히 나는 걱정하고 신경 쓰고 예민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신경 쓰이는’ 일들에 대해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과정이다. 선천적으로 예민 세포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 겪어야 할 난관이자 특권이겠다.







당신은 주변의 미세한 부분까지 감지하므로 여러 면에서 유리하다. 반면 자극적인 환경에 오래 있거나 신경계가 모될 때까지 시각과 청각이 공격을 당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쉽게 피곤해진다. 따라서 매우 민감한 사람들은 장단점을 동시에 갖고 있는 셈이다.
#타인보다더민감한사람 #일레인 N. 아론



프롤로그를 읽는 도중 벌써 마음이 그렁거렸다. 나를 너무 잘 알아주는 세상 하나 뿐인 친구가 내게 해주는 말인 것만 같았다. 그랬다. 예민하게 반응하는건 비단 심장이나 머리가 시킨 일이 아니었다.


암막커튼을 치지 않으면 해 뜨는 시간 어김없이 눈이 떠졌다. 크고 작은 소리들은 자주 나를 괴롭혔다. 여름에 휴가를 가면 뜨거운 태양빛 아래에서 태닝을 할지언정 선글라스는 필수였다.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듣는 노래소리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면 흠뻑 신경이 쓰였다. 아빠가 발을 쿵쿵대며 다닌다고 잔소리를 했더니 내 앞에서만큼은 발뒷꿈치를 들고 살살 걸으셨다. 학생들이 맨 뒷자리에서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 대답을 해주면 학생들은 깜짝 놀라곤 했다. "선생님, 이게 들려요?"


시각과 청각이 예민하다는 핑계로 끝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에린은 너무 예민해."라는 말은 이런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상처를 받는 일도 왕왕 생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내 주변의 미세한 부분까지 알아차린다는 장점으로 설명 될 수가었다.


보통의 사람들(=민감하지 않은 사람들)이 기분이 좋을 때만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특기를 발휘한다면,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들은 평온한 상황에서 미묘한 차이를 잘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모임에 참석했다고 가정해보자.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주변 상황을 파악하고 상대방을 배려할 포인트를 얼른 찾아낸다. 상대방이 원치 않는 배려라도 어쩔 수 없다. 내가 처한 곳의 분위기, 공기의 맑고 탁한 정도, 심지어 살림살이나 그림등이 배치된 특징까지 이미 스캔 완료한 이후에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민감한 사람이 특별한 존재라도 되냐는거냐고 갸웃거릴 수 있겠다. 실제로 민감한 사람들은 소수집단에 속하고 그들은 특별한 것이 맞다. 사회적으로 통찰력이나 열정을 가지고 성공한 사람들 중 다수가 민감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면 놀랄 것이다.



그럼에도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비난 아닌 질책을 받아온 사람들은 '둔감'해지고 싶어하기도 한다. 나는 민감해서 훌륭한 사람이라고 잘난척이라도 하려 했다가는 이내 후회하고 미안해하고 말 것이다.








어제는 서랍 깊숙히 잠들어있던 걱정인형을 꺼냈다. 자다가도 이불킥을 하게 만드는 기억들은 어느 순간 몰래 찾아왔다. 오해를 받거나 미움을 받으면 한동안 신경이 쓰이곤 했었다. 그렇다고 오해를 풀어보려는 노력도 해본 적이 없었다. 제3의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해서였다. 그렇게 지나간 일들은 나를 지치게도 만들었지만 관계의 벽을 쌓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하였다.


쓸데없는 생각들은 가져가라고, 스릴러소설같은 내 꿈도 가져가라고 걱정인형의 작은 볼에 입맞춤을 하고 속삭여보기로 마음먹었다.



영어로 sensitive라는 단어나 국어로 예민하다는 말은 이젠 부정적인 성격 묘사로 자리 잡은 모양이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민감한 친구는 이해심이 많은 친구로 여겨진단다. 즉, 친구하고 싶은 인기 성격의 유형이라는 것이다.


내 느낌이 맞다면 지금까지 내게 친구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는 지인들은 나를 그렇게 여기는 듯 하다.

비록 "넌 너무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 "내가 알아서 할께, 신경쓰지마." "넌 너무 예민하니까 스트레스를 그렇게 받지."라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여전히 그런 나를 배려하는 소소한 행동들이 포착되면 나는 마치 나만 알아차린 행동이라는 듯 혼자 웃고 말아버린다. 내가 느낀 고마움은 작은 쪽지로 대신하면 더없이 기분이 좋아진다.





*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이라는 책은 '나는 아무래도 너무 예민한가봐.' 라는 사람이 읽으면 손뼉을 치고 무릎을 탁 치며 끄덕끄덕하고 백번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을 친구로, 배우자로, 가족으로 두고 있는 (민감하지 않은) 사람들이 읽으면 더 없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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