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호영 Mar 15. 2019

선생님 제 이름 아세요?

#당연히 알지


쉬는 시간은 항상 짧다. 수다를 떨거나 간식을 먹느라 화장실 가기 조차 바쁘기 일쑤다. 그 시간에 책을 읽고 있는 학생들은 눈에 띈다. 쉬는 시간 10분씩 며칠에 걸쳐 책 한 권을 읽는 것은 주말 하루를 할애하여 책을 읽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겠다.

“무슨 책 읽고 있어?”


책 읽는 학생을 보면 묻곤 했다. 행여 내가 읽은 책이라면 할 말이 더 많아진다. 놀라운 점은 수업시간에 말이 없고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는 아이라도 책에 관하여라면 말을 곧잘 한다는 것이다. 바뀐 헤어스타일을 알아차리거나 이름을 불러주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감동한다. 그들에게 영어시간은 더 이상 끔찍하지 않은 시간이 된다.


관심사를 조금 더 깊게 파고 들어가 볼까. 문학 소설을 즐겨 읽는 아이, 일본 소설에 푹 빠진 아이, BTS 팬픽 소설만 읽는 아이... 나의 관심사에 흥미를 보이는 사람이 하나 늘었다는 것만으로도 신날 일이다. 그래서인지 영어시간이 되면 책상 한편에 읽던 책을 쌓아놓는 학생들이 부쩍 늘었다는 생각이 드는 날도 있더라. (영어수업은 이동수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쉬는시간이 끝나기 몇분전에 미리 교실에 들어가 아이들의 대화에 참여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런 짜투리 시간에는 수업시간에 잘 알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찾아온다.


영어시간에는  한마디 못해도 알고 보니 중국어를  하는 아이, 그림을  그리는 아이, 걸그룹 댄스 연습실에 다니는 아이, 유도와 태권도를 하는 아이, 피아노를  치는 아이... 그런 아이들의 잘하는 점을 칭찬하고 공감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부터 선생님에게도 흥미를 갖고 가까이 다가온다.


학교라는 공간은 학생들이 밀도 있게 촘촘히 생활하는 곳이다. 단체생활을 강요 받는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별게 아니다. 1년 동안 이름도 모른 채 헤어지는 학생이 없도록 학생들 이름을 외웠다. 내가 근무한 학교는 교복에 명찰을 달지 않아 이름을 외우려면 조금 더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나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름을 불러 소소한 일상 이야기와 안부를 주고받으며 시작하는 수업은 활기차다. 그렇게 신뢰를 쌓아가는 시간은 (성적과 100% 무관하게) 아이들의 잠재된 능력을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마음문을 꼬옥 닫아야 정상일 것만 같은 여고생들이 스스로 “선생님과 얘기하고 싶어요.” 하며 상담 요청을 하더라는 것이다. 학교에는 상담 선생님도 있고 각자의 담임 선생님도 있기에 비영역을 침투하는걸까 하는 걱정도 더러 했었다. 하지만 내가 하는게 상담이랴. 나는 걱정이 많고 불안한 평범한 10대 여고생의 이야기를 그저 들어주면 되는 것이라 여겼다.



“Do you wanna talk about it?”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하게 나오는 대사. 아픈일을 겪은 상대에게 ‘언제든지 얘기하고 싶으면 하자.’ 하는 말. 마음 속 깊은 곳에 걸림돌처럼 자리잡은 것들을 꺼내는게 상담일뿐이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함께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였고 상담자의 비밀 유지 원칙은 철저히 지켰다.


나는 단지 ‘그들에게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들의 마음이 한 뼘 부풀어올라 걱정이나 불안 같은 것을 덜어낼 수 있다면’ 하고 진심으로 바랐다.







“선생님 제 이름 아세요?”

“제 이름은 뭐게요?”

“저는요?”


간혹 ‘선생님이 쟤 이름을 안단 말이야?’라는 생각이 든 학생들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한꺼번에 달려든다.

당황하지 말고 차분하게 대답하자.


“당연히 알지! 하지만 선생님 테스트 금지! (웃음)”


*진짜 당연히 알고 있으므로!




(*위 사진들은 학생들의 허락을 받고 게시했어요.)








* 번외 편


아프리카 여행 중 있었던 일이다. 같은 리조트에서 3박 4일 머물 예정이었다. 첫날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우리 테이블 담당 직원의 명찰을 훑었다. 가벼운 안부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함께 웃기도 하였다.


다음날 조식 시간이었다.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진 장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짹짹거리는 새들이 날아들어 상쾌한 음악 선율에 맞춰 떨어진 빵조각을 쪼아대고 있었다.


“Good morning.”

어제 만난 직원과 아침 인사를 나누며, 지난밤 하다 만 대화를 농담처럼 꺼냈다.


“너 나 기억해?” 깜짝 놀란 직원이 물었다.

“당연하지. 너 Peter잖아.”


감동한 그는 활짝 웃으며 뒤돌아섰다.

3박 4일 내내 우리는 조금 더 친해졌고

사실은 명찰을 봤다는 말은 끝까지 하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착각해도 괜찮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