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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영 Mar 14. 2019

착각해도 괜찮아.

잘 알지도 못하면서.

1.


-에린은 머핀을 싫어하지? 

-으응? 아닌데? 

(오븐에서 갓 꺼내 든 촉촉하게 부푼 머핀을 떠올리면, 달콤한 향내가 공기 분자마저 살 찌울 것 같지만 말이야.)


-그래? 그럼 에린, 클래식 음악도 좋아해? 

-……(응)! 


내가 머핀을 좋아하는지, 가끔은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지 잘 알지 못하면서 “난 네가 너무 좋아!”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2. 


집 안 전체에 울려 퍼지던 경쾌한 팝 리스트를 ‘찰칵’ 소리를 내며 핸드폰 카메라에 담고 있었어. 

뭐 하는 거냐고 웃으며 묻는 네게, 네가 즐겨 듣는 노래는 나의 플레이 리스트에도 담아 놔야겠다고. 


함께 있을 때 우리는 낯설게도 K-Pop 댄스곡을 주로 듣곤 했었어.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된 사실은. 

난, 네가 K-pop 듣기를 좋아한 줄. 

넌, 내가 K-pop 듣기를 좋아한 줄. 




3.


친한 Y언니와 동생들을 집에 초대했다. 

그들이 좋아할 만한 것이 무엇일까 상상하며 간식거리를 준비했다. 

틈난 시간 편의점에 가서 우유와 커피, 음료를 종류별로 골라 담고는 

‘앗, 이 독일산 웨하스는 Y언니가 좋아했던 거니까 (조금 비싸기는 해도) 사야지.’ 


웬걸. 언니에게 내밀었더니 언니가 하는 말은, 

“내가 이걸 좋아했었어? 언제?" 





1-1.


내가 머핀을 싫어하는 줄로 착각했다 하더라도, 

내 취향의 클래식 곡들만을 모아 놓은 플레이 리스트를 잦은 밤 재생시킨다는 사실을 몰랐다 하더라도, 


너는 내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새우깡 대신 홈런볼을 함께 먹고, 

나는 네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스콘 대신 모카빵을 함께 먹으니. 


너는 내가 추천해준 일렉 비트의 음악을 들으며 내가 즐겨 읽던 여행 에세이를 읽어보고, 

나는 네가 추천해준 영화를 감상하며, 네가 즐겨 읽던 두꺼운 스릴러 소설도 읽으며 그렇게. 


이렇게 서로 천천히 알아가는 것도 괜찮은 거겠지. 




2-2.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배려’하느라 ‘요구’도 ‘다툼’도 없이 감정을 숨기다가 

스스로 각자의 심장 깊은 곳에 지우지 못할 상처로 남게 되었을지도 몰라. 



3-3.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네가 나의 필통 속에 있는 펜을 아무 때나 써도 괜찮다고 해서 

내가 너의 필통 속에 있는 펜을 아무 때나 써도 괜찮은 건 아닌 것처럼. 


내가 책을 읽다가 좋아하는 글귀에 밑줄을 긋거나 메모를 한다고 해서 

너의 책을 빌려 읽다가 좋아하는 글귀에 밑줄을 그으면 안 되는 것처럼. 


상대에 대한 나의 기억은 순간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상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언제든 취향을, 삶의 방식을 바꿀지도 모르는 것이기에. 


기억은 변형될 수 있는 단편적인 조각일 뿐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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