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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영 Jan 19. 2019

비 오는 날이라 다행이야.

#1
월요일 이른 아침. 오피스텔 문을 열고 나서야 함박눈이 내리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블라인드는 열어볼 새도 없이 분주한 아침인 걸 어쩐담. 감성 세포는 ‘첫눈에만’ 120% 반응해서인지 (*유미의 세포들 참조) 새하얀 세상을 보고도 ‘월요일 출근길 기분’을 감출 수 없다니. -실제로 첫눈 내린 날에는 괜스레 생글거리며 나무들에 쌓인 눈이 예쁘다는 일기를 썼더랬지!-




출근하여 문을 열고 들어서니 피자 한판이 놓여있다. “따뜻하지는 않지만 아침식사 대신 한 조각씩 하자.”라고 하시는 말씀만큼은 따뜻하다. 하지만 그것은 지난 금요일 오후, 퇴근 직전 나눠 먹자고 하던 그 피자임을 알고 있다. 풉! 다들 퇴근하기 바빠 피자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던 것. 3일이 지났지만 이 겨울의 온도에는 괜찮겠지 뭐. 피자 한 조각을 집어 들어 한 입 베어 물었다. 파티션 건너 발랄한 수블리 선생님께도 “피자 드실래요?” 물었더니, “먹어도 괜찮을까요?” 되물으신다. 먹던 피자를 A4용지 위에 잠시 내려놓고 외투를 벗었다. “겨울이라 괜찮지 않을까요. 저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그냥 뭐.” 하고는 웃어버렸다. 미국식 해장-술 마신 다음 날 남겨둔 피자를 먹던 습관-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잠시 생각하였다. “그래요? 이런 거 많이 따질 거 같은데. 의외네.” 웃으며 피자 한 조각을 자리로 가지고 가셨다. 주말 사이 바뀐 나의 헤어스타일이 잘 어울린다고 덧붙이면서.




#2

(오늘은)
하얀색 종이 컨페티가 나에게 흐드러져 내리는 듯한 기분에, '그 한 조각이 내 눈을 찔러 눈물이 난 것이라고 핑계를 댈 수 있겠어.’ (는 너무한 클리셰잖아.)



퇴근시간이 지나
평소에 잘 먹지 않는 순대국밥을,
"먹으러 갈래? 내 단골집인데 같이 가자"
하시는데 흔쾌히 따라나서니
의외라는 듯, 또는 이 상황을 못 믿겠다는 듯,


순대국밥이 싫으면 다른 것 먹자며 말씀하시는 대안이 대구탕이라니.
훗. 
"저 순대국밥 먹어요. :-) "


순대국밥 속에 이렇게 여러 가지 종류의 고기가 있었나. 
과연 맛 집이라고 멀리 걸어오시더니.
뒤적뒤적 익숙한 것들을 건져 먹고
그대로 남아버린 국물은 여전히 새하얗다.


K’ 선생님’은 여러 가지 비밀 이야기를 '비밀'이라는 말도 없이-나를 믿고-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 주시고,
나와 함께 한 저녁식사라 맛있다고 해주시고,
나는 그저 끄덕끄덕.


"감사해요, 다음엔 저도 살게요." 하니,
"안돼. 그럼 내가 다섯 번 사면, 그때 한 번 사던지."


하얀 종이 조각들은 소리 없이 심심하게 내릴 테니,
대신하여 흐드러지게 내리기 시작한 빗소리가 맘을 달랜다.

이런 날일 수록 혼자 있고 싶어 하여
책을 읽고, 노래를 들으면 수분 내 괜찮아지는데.


French Kiwi Juice의 노래를 백 번쯤 듣고,
한낮에 찾아갈 포르투와 리스본을 다이어리에 그려 보고도 남은 그렁 그렁한 기분을 꽉 잡고 있다가.


이럴 때 기댈 수 없음을 투정하려 하니
당신도 힘든 날들인 것 같다.


여자임을 증명이라도 하려 괜한 미운 짓을 하려는데
그대 목소리도 떨리는 것 같다.







#나의 출퇴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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