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서 집 구하기

쿠바에서 온 편지 #1

by 권호영
쿠바에서 온 편지 #1



From Linda, 2019.04.06-07


에린아 잘 지내지?

벌써 내가 이 곳에 온 지도 5개월째 접어들었네.

여전히 우린 정기적인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 않지만 마음은 좀 편해진 듯 해.

나는 아바나대학교에서 스페인어를 심도 있게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고, 조단도 영어학원에서 영어공부를 시작했어. 얼마 후에 요리학원도 시작할 거고 운전면허도 실기 실습받은 후에 시험 볼 예정이야.


진작 학교를 갈 걸 하는 생각이 들더라. 쿠바 역사와 문화에 대한 내용으로 수업을 하니 새로운 것도 많이 알게 되고 잊어버렸던 어려운 문법도 다시 공부하니 좋아.

심심해서(?) 학교에 다니기로 결정했지만 아주 잘한 것 같아. 역시 공부가 남는 거야.


글은 잘 쓰고 있어?

생각보다 글 쓰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 에피소드를 쓰다 보면 너무 보고서 같은 느낌이 들어서 브런치에 보내기가 너무 민망해지더라. 아직 작가 등록도 못했어. 이렇게 힘들 줄이야...

글 잘 쓰는 사람을 한동안 제일 부러워하다가 이젠 마음을 놓고 편하게 쓸 수 있는 만큼만 쓰고 있어. 자꾸 쓰다 보면 늘겠지... 하면서.

에린이 말한대로 이렇게 편지 형식으로 주고 받는 거 좋은 생각인 것 같아!


요즈음은 인터넷도 잘 안 하고 하더라도 한 시간만 하고 끝내는 편이야. 인터넷 사용비도 그렇지만 일부로 인터넷 공원에 나와야 하기도 하잖아.

인터넷을 안 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 보면 쿠바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해 가나 봐.

김치도 직접 만들고 김밥도 만들고 제육볶음, 불고기, 닭찜, 계란찜 이런 것도 잘 만들어. 이곳에서 알게 되는 한국 사람들 초대해서 요리해주고.

집에서 호스팅 하면서 대화 나누고 사람들 만나는 게 좋아서 집에서 쿠킹클래스를 하고 싶단 생각이 들어~

어떨 것 같아? 물론 조단도 요리 연습을 해서 실력을 더 키운 후에 말이야.

한국인들한테는 쿠바 음식을, 쿠바인들한테는 한국, 음식을... 그런데 쿠바인들은 돈이 없으니 패스해야겠다 ^^;

계속해서 쿠바문화에 대해서 공부하고 배워서 집을 사면 뭔가를 해 봐야겠어.



쿠바에 와서 나랑 조단이 살 집 보기 시작한 것도 한 달이 넘었네.

아주 마음에 드는 집이 하나가 있어서 결정을 했었는데, 갑자기 집주인이 마음을 바꾸고 안 판다고 하더라.

내 생각에 본인들이 이사 갈 집을 사기에 돈이 모자란 것 같아. 아니나 다를까 어제 광고를 보니 내가 올려주고 사려고 고민했던 금액보다 더 높게 해서 다시 내놨더라고. 그래서 더욱 심히 고민 중이야.

이 집이 부엌이 꽤 넓은 데다가 건물 상태가 튼튼하고(이런 집이 잘 없음) 무엇보다 옥상을 사용할 수가 있어. 옥상에서는 말레꼰을 바라보는 뷰가 아주 좋아. 위치도 시내 중심이라 관광객들에게 나중에 방 하나 렌트하기도 나쁘지 않고...

나중에 쿠킹클래스를 해 볼 요량이니 최대한 부엌 넓은 집이 좋거든.


물론 살 집을 계약한다고 해도 화장실이랑 부엌을 일부 수리해야 해서 돈이 꽤 들어가. 시간도 몇 개월씩 걸릴 거야. 여긴 무얼 하든 재료 구하기가 아주 아주 힘드니까...


곧 영주권도 신청할 거고, 나름 구체적으로 올해 계획이 몇 가지가 생겼으니 얼른 집이 정해졌으면 좋겠네. 렌트도 하고, 여러 가지 클래스로 열어보고 싶고.


삼계탕 처음으로 시도해서 거의 다 됐는데 볼일 보러 나간 조단이 안 와서 기다리는 중이야. 에린은 요리하고 지내려나?


쿠바는 12월이나 2월 날씨가 가장 좋아.

내가 한국을 떠나온 지도 벌써 4개월이 훌쩍 지난 거 보면 시간은 참 빨리도 가지.

에린이 내년 2월에 올 때 즈음이면 나도 자리를 좀 잡았겠지?


에린아, 에린이 말한 [쿠바에서 보내는 편지]가 자꾸 마음에 와 닿네. 편지 형식으로 쓰면 나도 좀 더 편하고 진솔하게 쓸 수 있으니 다음번에는 이 제목으로 써서 저장을 해 놔야겠어. 또 편지할게.



P.S.

내 사랑이 시골 고모댁에 가서 먹을 걸 엄청 사 가지고 왔어. 특히 쿠바 와서 생선가게에서 파는 걸 본 적이 없어서 항상 레스토랑 가서 생선구이를 먹었는데 고모댁에서 생선을 많이 가져온 거야. 그렇게 집에서 생선구이 요리를 해 준 내 사랑~고마워요!

우연히 저렴이 라임을 발견해서 사서 생선위에 올리고 즙을 내려고 하니 즙이 하나도 안 나오는 웃픈 현실!

역시 싼 게 비지떡인가 봐!









서울에서 보내는 편지 #1

From Erin, 2019.04.15



여긴 한참 벚꽃이 피었어!

사실 지난 주말까지 피크 시즌이었어. 이젠 벚꽃엔딩이라는 말들이 오가는데 아직은 계속되는 거 같아.

일요일에 온다는 기상청의 비바람 소식이 무색할 만큼 이후로도 계속 맑은 날들이거든.

(요즘 한국 기상청이란...)


지금은 윤주 언니 만나러 시청 가는 길이야.

운전하고 가려다가 주차난을 겪을 것 같아서 광역버스를 탔어. 이렇게 광교와 서울을 오가는 날엔, 약수 언니네 집에서 시간 보내던 그 며칠의 추억이 떠오르기도 해.


짧지도 길지도 않은 약 한 시간이라는 여행 시간, 많은 생각을 하거나 그 생각을 글로 옮기려거나, 책을 읽거나 혹은 아무 생각 없이 음악을 들으려고 이어폰을 챙겨서 나선 그 시간까지 이상하리만치 생생하게 기억나.


언니 집 구하는 일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네? 언니는 워낙 사람 대하는 일에 능하지만... 그러다가 싸게 구할 수 있는 집을 웃돈 주고 비싸게 구할 일은 없는 걸까 라는 괜한 걱정을 하게 돼. 언니는 똑 부러지는 사람이다가도 정에 약한 사람이잖아. 그건 조단이 잘 알아서 눈치채고 조언해줄 거라 생각해!


집 새로 구해서 이사 가는 일도 힘들 텐데 게다가 가서 화장실이나 부엌 쪽 수리까지 해야 한다니 할 일이 태산이겠다. 나도 혼자 사는 오피스텔 여러 번 옮겨 다니다 보니 그 일이 얼마나 힘들거나 귀찮은지 알겠는데 말이야, 쿠바에서 언니가 구하는 집은 오피스텔이 아닌 오래 살며 일을 할 수 있는 집이어야 할 테니.


학교 다니면서 공부도 하랴, 글도 쓰랴, 조단이랑 데이트하랴... 쿠바 가서 더 바쁘겠어!

(스페인어 구체적으로 더 많이 배우는 건 너무 재밌겠다!!)


언니의 안부처럼 나는 제이랑 잘 지내고 있어...

주변에서 다들... 만난 지 얼마 안 돼서 행복한 거라고 하는데, 그런 말을 하도 많이 듣다 보니까

‘정말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을까?’

‘중년의 부부들은 이런 소소한 재미와 행복 없이 어떻게 오래도록 함께 사는 걸까?’ 같은 생각을 하게 돼.


제이는 옆에서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래: 우리 유통기한은 99년이래.


나도 갑작스럽게 학교를 그만두고 일 안 한 지 수개월이 지나다 보니 이제 슬슬 걱정 불안이 찾아오는 것 같아.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으니 단단하게 준비하고 싶은데, 이 '준비 기간'에서 조차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길 바라는거지... 욕심이겠지만.



쿠바에 내년 1,2월쯤 가려고 하다 보니 이번 여름이나 가을엔 어디 여행 갈까 생각 중이야.

조지아라는 곳에 가볼까 했다가.. 제이의 오랜 소원인 아이슬란드? 혹은 동유럽?

혼자 살며 학교 선생님 역할을 할 때에는 여름방학, 겨울방학에 구체적으로 어디 어디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나 적어도, 이번엔 이 정도의 예산으로 가까운 곳에 가야겠다는 등의 계획이 있었는데 이번엔 잘 모르겠어.


내가 일을 안 하니까 막상 선뜻 여행 가는 게 맘이 불편한 거 같기도 하고 그래.

제이는 앞으로 잘할 거니까 지금은 그런 걱정 말라고 하긴 하지만 말이야.


언니가 나에게 해주곤 하던 말이 생각난다.

"계속 일 하다가 갑자기 쉬니까 너무 좋지? 아무 걱정하지 말고 일 안할 수 있을 때 당분간 맘 편히 쉬어!"

그래.. 어찌 보면 나도 이십 대와 삼십 대 초반 열심히 살았는데...!?


이런저런 남들이 알아주지 않을 개인적인 사정으로 진로를 틀어버린다는 게 쉽진 않다.



언니, 집 구해지면 알려주어!

조다니와 언니 행복한 모습을 상상하며-




P.S.

지난 주말에 친한 선생님들과 서울 안산 자락길 벚꽃 놀이 다녀온 사진이야.

서울 숨어있는 벚꽃 명소라고 할 수 있지.^^

쿠바에는 어떤 꽃이 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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