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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영 Aug 04. 2019

활기차고 쓸쓸하다 : 오비두스의 여름과 겨울

#포르투갈 소도시 여행

낯선 풍경을 가르는 한적한 도로 위를 싱그럽게 달리는 중이다. “I’ll be your band-aid.”라고 읊조리는 gnash의 노래를 들으며. 흥에 겨운 입술을 오물거리며. 노래를 듣다가 자주 슬퍼하던 그 계절의 건조한 향기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는 듯하다. 내가 너의 상처를 덮어줄 밴드가 되어줄 거라는 가사는 아프지만은 않구나. 시절을 겪는다는 건 시절이 지나며 잊는다는 것. 


지난 여행 일기를 들추어 보니, 오비두스는 온통 예쁘다는 수식어로 가득하다. 하얗고, 노랗고, 파란 담장에는 분홍색 꽃들이 입체적으로 튀어나와있는 곳, 그래서 가만히 손을 내밀어 볼 수밖에 없는 곳, 가만히 앉아 있는 고양이와 눈을 마주치고 있노라면 비밀의 문으로 데려가 줄 것 같은 곳. 이렇게 동화 속 마을 같다는 진부한 표현을 갖다 붙여도 스스로 반짝반짝 빛나는 곳, 포르투갈 소도시 오비두스를 다시 찾았다.


오비두스 성곽길 위에서는 푸르름과 작은 마을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오비두스 숙소 에어비앤비 Casa

예약해 둔 에어비앤비 숙소를 바로 눈 앞에 두고도 찾지 못했다. 고개를 들어 본 하늘의 하늘색에 감탄을 하거나, 돌바닥을 반쯤 덮은 그림자 위에 떨어져 있는 꽃잎에 눈길을 주느라 그랬다. 게다가 내가 찾은 그 숙소의 대문은 이름 모를 생기 왕성한 덩굴이 담장 대부분을 덮고 있더랬다. 그림을 그린 건지, 그림 같은 인장을 찍은 건지 구분이 안 가는 숙소의 이름이 눈 앞에 있다는 걸 발견하자마자 어린애처럼 웃었다. 진한 초록색 대문을 두드렸다. 그 해 여름은 유난히 따사로울 뿐이었다.


실로 '궁전 같다'라는 진부한 표현을 한 번 더 해야겠다. 겪어본 적 없으나 유럽 왕실 인테리어는 이런 분위기를 풍기지 않을까 생각했다. 회색보다 은빛에 가까운 머리칼을 정갈하게 빗어 내린 호스트가 웰컴 드링크로 진자(Jinja, 체리주라고도 하며 초콜릿으로 만든 작은 잔에 따라 마신 후 잔을 함께 먹는다.)를 따라 준다. 행복하다는 찰나의 감정을 잃기 싫어 카메라에 순간을 담았다.


덩굴에 숨은 집/ 자랑하고 싶은 집의 일부일 뿐 / 체리주 건배





2017년 8월 그리고 2019년 2월


오비두스 빌리지(Obidos Village)는 성곽 안에서 오랜 시간 존재해 온 작은 마을이다. 그 크기가 아담하기 그지없어 성곽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을 전체가 한눈에 담긴다. 앙증맞은 상점들이 꼬불꼬불 이어져 발걸음 떼기가 쉽지 않다. 마을 전체를 둘러보는데 한 시간이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하루를 꼬박 써도 모자랐다. 그 해 여름 떠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다시 올 거야.'라고 한 결심을 2년 만에 이뤘다.


'포르투갈에서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야?'라고 물으면 단연코 오비두스라고 답하곤 했다. 2018년 <비긴 어게인 2> 방영 이후에 포르투갈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며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포르투갈 여행길에 오른 지인들에게는 오비두스에는 꼭 가야 한다며, 오비두스 홍보대사라도 된 듯 굴었다.


그렇게 내세운 추천은 괜찮지 않았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여행지의 느낌이라는 건 다르게 다가오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이 겪는 시절에 따라 그마저도 다르게 다가오는 것일 테니.


다시 찾은 겨울의 오비두스는 황량하고 쓸쓸했다. 


2017 8월(좌)  /  2019 2월 (우)
2017 8월(좌)  /  2019 2월 (우)


그 해 여름, 포르투갈은 특히 오비두스는 사람들로 복작거리면서도 한적했다. 올해 봄이 오기 전 겨울, 그 거리는 한가하지만 외로웠다. 매인 데가 없다지만 마땅하지 않았다. 물기를 머금은 축축한 돌바닥을 밟는 동안, 햇빛에 환하게 비추던 골목 구석구석이 그리웠다. 



올해도 한 계절을 지나고 보니 겨울의 오비두스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해가 쨍하게 마른날을 사랑하는 우리는, 토닥토닥 내리는 비가 창을 두드리는 소리를 좋아하기도 하니까. 선글라스를 끼고 호기롭게 걷곤 하는 우리는, 튀어 오르는 빗방울을 밟으려 좋아하는 색깔의 우산을 펼쳐 들고 나서기도 하니까. 



"포르투갈에서 어디가 가장 좋았어?"라고 묻는 질문에 지금의 나는 다른 답을 내놓을지도 모른다. 내가 겪고 있는 시절에 따라 대답은 달라질 것이다. 포르투갈의 중심과 북부와 남부, 여러 소도시들을 둘러보며 생긴 애정의 이유 역시 각기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내가 겪은 계절과 당신의 계절의 온도는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음산한 날에 카메라를 들고 나서는 걸 좋아한다는 여행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블로그에도 놀러 와서 오비두스 숙소 이야기도 함께 나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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