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2
|조지아 여행 일주일째
조금 열린 창문 틈새로 불어 들어오는 바람이 청량하다.
사랑의 도시, 시그나기(Sighnaghi)로 향하는 달리는 차에서 시작하는 아침. 오른쪽, 왼쪽을 번갈아 보며 하나, 두울 구름을 세어보는 손가락 끝에 햇살이 닿는다.
뚝뚝 떼어낸 수제비 같은 구름과 그 아래 끝도 없이 이어진 산맥에서 눈을 떼기 힘들다.
‘산의 맥이 끊기지 않는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자연이 만들어낸 성벽 같은 것. 그 옛날 적들에 대하여 방패가 되어준 것. 든든하고 아름답고 웅장하고 고요한 ‘산’이라는 이름을 가만히 발음하니 마음이 강해지는 것 같다.
이 ‘탈 것’은 마슈로카 (마쉬루트카, Marshrutka)라고 불리는 조지아 주요 교통수단이다. 20명이 넘는 승객을 꽉꽉 채우고 나서야 운전기사는 시동을 건다. 트빌리시, 삼고리(Samgori) 역 터미널에서 두 시간쯤 달려 도착하는 곳을 운전기사 재량에 따라 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단다. (조지아 운전기사들은 다 베스트 드라이버라고 한다.)
이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며칠 뒤에 내가 기차로 떠날 메스티아(Mestia)에 마슈로카를 타고 가려면 11시간이나 걸린다는 것이다.
탄자니아의 <달라달라>와 태국의 <썽태우>보다 조금 더 나은 교통수단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좌석 한 자리씩 차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자리를 빼곡히 채우고서야 만 떠나는 장거리 여행이라는 점에서 점수를 뺏겼다고 해두자.
마쉬루트카로 가득 찬 버스 터미널에서는 무작정 ‘시그나기! 시그나기!(에 가요!)’라고 외쳐야 하고, -사실은 그저 두리번두리번거리다가 눈 마주치는 사람에게 ‘시그나기?’라고 물어도 된다.(웃음)- 친절한 조지아 아저씨들은 손가락으로 ‘저기’라며 가르쳐 준다. 같은 행동을 두어 번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시그나기행 마슈로카에 앉아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 : 단 출발 시간에 딱 맞춰 갔다가는 조금 불편한 간이의자에 앉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 손잡이는커녕, 덜컹거리고 삐걱거리는 작은 간이 의자에 앉아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래도 괜찮은 것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이어폰을 잊지 않고 챙겨 왔기 때문이며, 열린 틈새로 불어 들어오는 바람을 느끼고 있으며, 하늘과 구름과 산을 파노라마 필름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 이 모든 것들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시그나기(Sighnaghi)가 사랑의 도시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구전으로 전해 오는 이야기라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조지아 친구가 직접 말해 준 전설은 이러하다.
: 옛날 옛적 그림 그리는 일을 업으로 삼는 프랑스인이 조지아의 작은 마을 시그나기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조지아에 놀러 온 이웃 나라 러시아 여인이 그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그녀의 마음을 얻고 싶었던 프랑스 화가는 자신의 재산을 탈탈 털어 그녀에게 바칠 장미꽃 백만 송이를 준비했는데...
과연 그녀는 그의 사랑을 받아 주었을까?
이루지 못한 그의 사랑을 담아낸 도시, 시그나기. <백만 송이 장미>라는 노래를 만든 러시아, 그리고 우리나라 역시 그 노래를 리메이크했으니...
이야기를 들려준 조지아 친구와 러시아 친구와 한국인인 나는 ‘우리가 만난 건 운명인 거야.’를 외쳤다지.
시그나기 성벽을 걷는 내내 햇살에 눈이 부셨다. 좁은 성벽길을 오가는 사람들은 ‘안녕?’하고 눈인사를 주고받는다. 성벽 너머 저 멀리 하늘에 길게 늘어진 ‘구름 띠’는 아이러니하게도 손에 닿을 것만 같다.
하늘과 맞닿은 곳 뷰포인트에 자리 잡은 카페에서 와인 한 잔과 킨칼리(Khinkali : 조지아식 만두 요리)를 주문했다. 함께 여행 중인 제이에게 조지아어 인사법들을 알려주고 있으려니, 옆자리 조지아 사람 둘이 말을 건다. 마침 자신들도 함께 동반한 러시아 친구에게 시그나기 구경을 시켜주고 있다며, “함께 하지 않을래?” 묻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지. 돌아가는 마슈로카 티켓을 미리 구입해놨지만 문제 될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시작된 시그나기 와이너리 투어. 소형차에 다섯 명이 끼워 타고, 시그나기보다 더 북부로 여행하기까지, 와이너리 세 군데를 들르고, free tasting을 하기까지. 매우 저렴한 가격에 와인을 구입하고, 구멍가게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깔깔대기까지. 결국 밤 11시가 넘어서야 숙소에 도착하기까지의 시간은 우리 편이었다.
바초는 쿠바에서 1년 살며, 쿠바 산 시가의 씨앗을 조지아로 가져와 조지아에서 시가를 만드는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로부터 받은 선물, 시가 이야기와 와이너리 투어 이야기, 조지아 와인과 포도 껍질에서 추출한 조지아 전통 술인 ‘차차(chacha)’ 이야기는 다음에 더 해드릴게요!
*조지아 와인은 매우 저렴해서 와이너리에서 조차 한국 돈으로 약 5,000원~10,000원부터 괜찮은 와인을 구입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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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여행기 매거진에 다 담지 못한 여행기는 다음 온라인 서점에서 책으로 만나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