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호영 Oct 22. 2019

디지털 노마드의 천국, 라구스(Lagos)의 까사망이

우연히 만난 셰프 특선 요리는 덤.




하얀 철문을 열자마자 풀 냄새가 진동했다. 눈에 띄는 초록색과 연한 나무색의 가구들이 가득 아늑해서 차가워진 손이 금세 따뜻해졌다. 노란색 코트를 벗어 소파에 올려두었다. 포르투갈식 재즈음악이 흘러나오는 공간은 진한 색 벽돌 바닥을 품고 있다. 에메랄드색 야자수 무늬를 가진 패브릭 소파가 새삼 예뻐 보였다. 우리 집 한편에 놓인 여인초도 이만큼이나 키가 자랄 거라 생각하니 남 모를 뿌듯함에 미소가 일렁였다.


4개의 핸드메이드 러그가 모여 하나의 큰 그림을 만들어 놓은 월행잉 데코 제품은 한국에 와서도 내내 그립다.




여름에 포르투갈 남부 해안 지역은 유럽인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복잡하지만 겨울에는 한가한 편이다. 그럼에도 조용한 바다를 온전히 즐기기 위해 찾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특히 비수기 가격으로 떨어진 포르투갈 감성 가득 숙소들은 디지털 노매드의 천국이 된다. 라고스(Lagos)의 까사 망이(Casa mãe)는 그중 한 곳이었다.


엄마의 집이라는 뜻의 까사 망이는 예술가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들만 잔뜩 가지고 있는 하얀 건물이다. 3-4층 높이에는 심플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객실들이 위치하고, 1층에는 레스토랑 겸 카페와 디자이너 작품 샵 등이 있다. 겨울에 장기 투숙하는 여행객들은 카페에서 글쓰기나 책 읽기로 시간을 보내다가 해가 좋은 어떤 날엔 아무 때고 바다로 산책을 나간다.


호텔에서 직접 관리하는 텃밭에서 나는 야채와 채소로 여행자의 식탁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메뉴에 있는 포르투갈 수제 맥주 MUSA를 마시며 조명과 음악에 심취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여행자의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프랑스어와 포르투갈어 같은 언어의 발음들이 노래처럼 귓가를 맴돈다.





빨간 가죽으로 만든 열쇠고리를 받아 들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이런 소소한 것들에 시선을 두게 하는 사람들에 감탄한다. 낮은 높이의 침대가 주는 안정감이 가득한 방을 얻었다. 침대만큼 커다란 패브릭 장식의 색감에 푹 빠져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다. 웰컴 디저트로 마련해준 에그타르트(Nata)와 빠알간 미니 사과에 마음이 뺏긴다. 하얀 이불 안에 파고들어 몸을 누이는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며칠간 머물 이 집에 옷가지를 차례차례 걸어놓았다. 오픈된 공간에 덩그러니 놓인 새하얀 욕조는 바라만 보고 있어도 피로가 풀리는 듯하다. 까사망이의 샤워가운은 특히 보송보송하고 부드러워서 빨리 밤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집처럼 포근함이 가득한 작은 방
발코니




발코니에 놓인 비치의자에 누워 가만히 하늘을 보는 시간, 방 안을 가득 채우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 시간만으로  평화로운 여행지의 기운을 마음껏 느꼈다.


호텔에서 마을로 오갈 때마다 텃밭과 수영장을 지나쳤다. 새파란 물이 가득 담긴 수영장에서는 겨울 냄새가 났다.


라구스(Lagos) 마을도 성벽(Castello de Lagos)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좁은 골목 주위로 촘촘히 지어진 집들의 바깥쪽, 그러니까 성벽 바로 맞닿는 공간에 호텔을 지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바다에 나갈 때는 성곽 문을 지났다. 과거를 지나는 기분이 들었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수영장> 그림이 생각나는 수영장






어느 날엔 비가 많이 내렸다. 마을을 거닐고 있을 때였다. 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쏟아지는 장대비에 서둘러 호텔로 돌아왔다. 금방 그칠 것 같지 않은 두꺼운 빗줄기였다. 때마침 하늘도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어제 먹은 문어요리(Polvo)를 또 먹자!”


따뜻한 물에 샤워부터 하고 정갈한 마음으로 저녁식사에 임할 테다. 통유리 한 장 너머로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맥주 한 모금 마시니 볼이 발그레해진 것 같다.


“오늘은 요리가 안됩니다. 특별히 모신 셰프 특선만 가능해요. 일본과 페루 요리법을 합친 퓨전 코스 요리를 제공합니다.”


“...!”


여행 중 대부분 점심과 저녁을 합쳐 한 끼로 해결하곤 하는 나에게 다른 옵션은 없었다. 간단한 식사를 위해 바깥으로 뛰쳐나가기에 빗줄기는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끌리지 않지만 어쩔 수 없지.’


호텔에서 정해 놓은 셰프 특선 금요일은 오늘 같은 날씨를 예상했던 걸까.

호텔 레스토랑 테이블 빈자리가 점점 채워지고 있었다.




| NIKKEI



입이 짧은 내가 유독 좋아하지 않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일본 음식이다. 게다가 한국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을 서유럽, 포르투갈 남부 지역, 라구스의 어느 한 호텔에서 ‘코스 요리’로 먹게 될 줄이야.


혹자는 이런 호사를 감사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나의 태도가 못마땅할지 모르겠다. 게다가 위가 작아 대부분 남겼으니 안타까워 죽겠더라.


사진에 보이는 첫 음식인 소위 ‘닭꼬치’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는데 (아니, 셰프 특선에 닭꼬치라니 말이 되는 것인가...), 이어 나온 참치회, 만둣국, 고구마 무스, 그리고 디저트인 ‘미소 마카롱 (상상하는 그 맛이다. 미소 된장국 맛 마카롱)’의 친숙한(?) 냄새는 결국 나를 취하게 만들었다.


와인만 몇 잔을 마셨는지 모르겠다.


결국 눈이 풀렸군요...


이런 날도 있군요.

여행은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니까요.

뜻 밖에 맛있는(맛없는) 음식 한 입에 행복하기도(슬프기도), 뜻 밖에 쏟아지는 비를 쫄딱 맞고 감기에 걸리기도, 뜻 밖에 주어진 따스한 시간에 ‘일본식 된장맛 마카롱’을 먹으며 포르투갈 와인을 마시는 호사를 누리기도 하며 말입니다.


¯ᴥ¯




며칠 뒤 라구스를 떠나는 날.

체크아웃하는 시간에 햇살이 호텔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체크인할 때 환한 미소로 반겨준 그는 데이 오프(day off)인가 보다. 그에게 작별인사를 못해 아쉬운 마음은 무뚝뚝한 그녀에게 얹어주었다.



*Casa Mãe

: R. do Jogo da Bola 41, 8600-712 Lagos, Portugal

: +351 968 369 732



*브런치 구독 감사합니다. ღ'ᴗ'ღ

*자세한 리뷰는 블로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ᐕ






매거진의 이전글 로맨틱 신트라! 헤갈레이라 별장과 페냐 궁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