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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영 Nov 11. 2019

진짜 세상의 끝은 호카곶이 아니라고요?

포르투갈 서남쪽의 끝, 사그레스(Sagres)

"저기 밖에는 다른 삶이 있어.내 말을 믿어."

레이먼드 카버,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



<Casa Mãe 호텔>에서 맞는 아침은 지나치게 밝았다. 햇살은 커다란 창이 난 곳으로 하염없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하얀 커튼 그림자가 출렁거렸다. 기지개를 쭉 켜고 침대 옆에 놓인 디지털시계를 보니 오전 7시다. 블루투스 오디오를 켰다. 호텔 로비에서 틀어주는 음악을 방에서도 들을 수 있다. 포르투갈에서만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잔잔하고도 리드미컬한 노래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30분을 더 가만히 누워있었다.


전 날 비가 내리더니 쨍한 해가 비추는데도 초록 잎사귀들은 물기를 머금고 있다. 오늘은 바다를 다시 찾아야겠다. 사그레스(Sagres) 마을 근처에는 아름다운 작은 해변들이 꽤 있는데 계절에 상관없이 유럽의 서퍼(surfer)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서퍼들이 사랑한 바다, 그곳의 파도와 바람은 생각보다 거세고 웅장하다.




호카 곶(서쪽 끝)과 세인트 빈센트 곶(남서쪽 끝)의 위치


the end of the world


Cabo de São Vicente (세인트 빈센트 곶)


벽에 걸어둔 세계지도를 손으로 훑어보는 시간이 있다. 여행한 나라와 도시를 손가락으로 짚어보며 설렘과 아쉬움이 뒤섞인 감정을 정리하는 것이다. 세상의 '시작'과 '끝'이라 이름 붙이는 건, 필요에 의해 의미를 두는 일인 것만 같다. 나는 그런 것들이 재미있다.


포르투갈의 호카곶(cabo da roca)은 유라시아(Eurasia) 서쪽 끝이다. 신트라(Sintra)에서 버스로 약 40분 걸려 도착한 이 곳은 세상의 끝을 밟았다는 의미만으로 행복한 여행자들에게 증명서를 팔기도 한다. 필요 없기도 하고, 필요하기도 한 일이다. 나는 이런 것들을 사고야 만다.


‘세인트 빈센트 곶(Cabo de São Vicente )이 진짜 세상의 끝’이라고 외친 사람들의 말을 들은 나는 그 땅을 밟으러 왔다. 목적지로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으나, 라구스(Lagos)에서 2박 3일 머무는 동안 사그레스(Sgres)에가지 않을 이유는 없으니까.

대체 서쪽의 끝이 아닌 남서쪽 끝이 주는 의미가 있느냐 하니, 있었다.


세상의 끝, 기다리는 마음


배를 타고 바다로 나서는 선원들이 점처럼 멀어질 때, 선원들이 마지막까지 눈에 담을 수 있는 땅이 바로 세인트 빈센트 곶이라는 것이다.


바다에 얽힌 한을 노래하는 파두(fado)의 한 조각이기도 한 장소.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지는 해를 삼키는 바다 위로 펼쳐지는 노을의 색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최대한 바다 가까이 서보지만 불어오는 바람에 몸이 떠밀려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진한 파란색 아니, 남색에 가까운 바다색과 부서지는 파도의 하얀색을 카메라에 담으려 해 봐도 바람에 흔들려 놓치기 십상이었다.


이 곳은 1979년 스페인과 영국의 접전지로 기억되기도 하며, 문학 작품에도 왕왕 등장한다.



이베리아 반도의 서쪽 해안에 괴상한 사람의 옆모습을 그려 넣었는데 코는 포르투에서 리스본까지 이어졌고, 피니스테레 곶 주변에는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을 그려 넣었으며, 세인트 빈센트 곶에는 덥수룩한 수염의 뾰족한 끝을 그려 넣었다.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작은 요새가 둘러싼 세인트 빈센트 곶에는 빨간 등대가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몸을 녹일만한 카페테리어와 빨간 등대 모형을 파는 기념품샵도 있다. 커피가 맛있는 나라인만큼 아무리 시골의 카페라도 멋들어진 에스프레소 머신은 있다. (1유로 포르투갈 커피가 맛있는 이유 글 참조)


우리는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았던 것 같다. 잠에서 깨어나 갸르릉 거리는 고양이를 쫒다가 발견한 커다란 의자에 앉아 바람을 느꼈다. 오른쪽, 왼쪽으로 탁 트인 바다를 가슴에 담기가 버거웠다. 세상의 끝에서 망망대해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부르는 파두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오랜 세월 사람들의 목소리와 눈빛을 품은 바다는 온통 반짝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집으로 가져온 세상의 끝





*커버 사진은 사그레스 마을에서 성 빈센트 곶으로 가는 길 사이에 있는 그릇(접시와 머그) 등을 파는 상점이에요. 디지털 노마드가 한 번쯤 들어 사진 찍는 스폿 유명한 곳이더군요.

*포르투갈 렌트카 여행으로 찾아간 곳이었어요. 사그레스 마을에서 운행하는 버스는 평일 하루    운행하니 참고하세요.

*포르투갈 여행이야기는 매거진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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