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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영 Nov 22. 2019

조지아에서 이룬 타닥타닥 벽난로 로망

조지아 여행 게스트하우스 사건

내 인생에 무언가 예정한 일은 없는데, 예정에 없던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은 종종 있어 우습다.
예정에 없는데, 예정에 없는 일은 있다니.

우는 어른, 에쿠니 가오리



? 분명히 여기가 맞는데, 어디지?”


지도상 분명히 이쯤이 맞는데 도통 문을 못 찾겠다. 게스트하우스 주변 길을 뱅뱅 돌다가 뒤늦게 '찾았다!' 외치며 작은 문과 문패를 보고 배시시 웃었다. '끼익' 문을 열고 '자박자박' 자갈길을 밟는 짧은 시간, 싱그럽다.

2층짜리 목조 건물 1층에는 주인이 살고 있는 것 같다. 문 앞에서 두리번거리다가 빨래를 널고 있던 다른 여행자와 눈이 마주쳤다. '똑똑' 해보라는 제스처에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Thank you!'


떨어진 과일은 새의 밥이 되겠지.



"안녕? 너희 한국인이야? 요즘 한국인들이 많이 오네. 옆방에서도 머물다 갔어."


"요즘 한국인들이 조지아를 더욱 많이 찾고 있거든. 그나저나 방이 너무 예쁘다! 새로 지은 거야?"


"아니, 이 집은 100년 넘은 집이야.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하면서 내부를 리모델링한 건데, 스바네티(Svaneti) 느낌을 살리려고 한쪽은 돌벽을 그대로 살려놓았지. 오래된 가구와 벽난로도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



여행자의 마음에 쏙 드는 집이 아닐 수 없다! 주인 말대로 조지아 북부지방, 메스티아(Mestia) 느낌이 퐁퐁 난다. 주인이 미리 열어둔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새하얀 커튼이 춤추고 있었다. 침대 머리맡에 있는 돌벽에서 느껴지는 질감이 신비롭다. 건축에서는 재료가 주는 물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차가운 돌벽이라도 주홍빛 조명이 닿으면 자연 그대로의 따뜻함이 느껴진단다. 나무 침대와 나무 협탁, 보송보송한 냄새가 나는 침대 시트 위에 한 번 더 덮어 놓은 하얀 손뜨개 이불까지 완벽하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다


사랑스러운 게스트하우스에서 이틀을 지내고, 우린 산속으로 갔다. 산속에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비밀스러운 마을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거든... 호기롭게 찾아간 그곳은 실로 영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그러니까 파라다이스 같은 무인도에 불시착한 생존자들이 새 삶을 꾸리는 이야기나, 세상이 이기적인 것들로 인해 무너져 내릴 때 이곳에 있는 사람들만큼은 영원히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는 이야기에 어울릴 법한, 그런 곳 말이다. 여행자들은 구름 사이에서 그네를 타다가 담요를 덮고 책을 읽다가 통나무집으로 올라가 잠을 청하는 시간을 향유하고 있었다.


'나의 시간도 이 마을 한 페이지에 저장되는구나.'


연기가 퐁퐁 피어오르는 마을 식당에 앉아있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매니저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대감에 부풀어 올라 가득 찬 풍선이 피융~ 하고 바람이 빠져나갈 소식을 접했다. 몇 달 전에 미리 예약한 ‘나의’ 통나무집을 불과 30분 전에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었다는 거다.



'WHATTT !?'


도착 예정 시간을 5시라고 메모해놓고는 5시 30분에 도착해서 그랬단다. 아마 예약 없이 찾아온 배낭여행객들이 간절히 원하니 방을 내어준 모양이다. 미안해해야 할 그들은 합심해서 ' 탓이야.'라는 표정과 말투로 일관했다. 대신 여긴 어때!’라고 보여준 하나 남았다는 통나무집은 아직 미완성이었다.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 벌레와 바람이 숭숭 들어오고 장작 패는 도끼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창고 위에 있는 작은 방...


침대에 걸터앉아 바깥 풍경을 보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침의 산만큼 산뜻했던 내 기분은 쑤욱 가라앉고 말았다.  내가 고민을 하는 사이 제이는 매니저에게 항의를 하고 있었다. 몇 달 전부터 예약한 방을 30분 만에 강제 취소하고는 미안하단 말보다 '싫으면 그냥 가도 돼.'로 일관하는 태도에 화가 난 것이다.


휴...

새침하게 배낭 메고 휙 돌아설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수분을 고민했지만 이 산속 마을에서 예쁜 마음으로 지낼 수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마지막 남은 미완성 통나무집에서라도 지낼 줄 예상했던 매니저는, 마침내 미안했는지 아랫마을로 태워 주겠다 한다. 원하면 마을 숙소를 소개해주겠단다.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망가져가는 매니저의 차를 타고 구불구불 산길을 내려오는 동안 참았던 눈물을 핑핑 쏟아내고 있었다.





모닥불을 피우며 녹인 마음


똑똑...

우리 다시 왔어. 우리가 지낸 , 혹시 아직 비어있니?’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깨어났다며 활짝 웃는 그녀는 다시 봐서 반갑다 해준다. 그사이 침대 시트를 새것으로 바꿔놓았다. 그녀의 딸, 꼬맹이 아가씨도 우리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남동생과 장난을 친다. 나의 ABC초콜릿을 나누어주지 않을 수 없지!



‘오늘 밤엔 모닥불을 피워봐.’


그녀가 성냥과 종이 몇 장을 건네주었다. 지난밤에 내린 비 때문인지 장작에 불이 잘 옮겨 붙지 않는다. 뾰족뾰족 갈라진 장작을 몇 개 더 주워왔다. 마지막 종이 한 장이 남을 때까지 내 마음도 종이처럼 타 버리는 것 같았다. 성냥개비를 거의 다 써버렸을 때쯤 벽난로에서는 타닥타닥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울어버려서 서먹했던 공기는 금세 따뜻한 입자로 촘촘히 채워졌다. 불이 꺼질세라 장작을 날랐다. 방안을 가득 채우는 음악이 있다면 좋을 거란 생각이 든다. 드뷔시의 달빛이면 더욱 좋겠다.


장작이 타는 동안, 밤이 깊어 가는 동안 기분은 나아졌고, 조금 열린 창틈으로 불어오는 가을바람은 그리움을 데리고 왔고, 그래서 더 로맨틱한 밤이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나뭇잎들이 사각거리고, 먼 곳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다른 세계의 입구로부터 들려오는 것만 같은, 희미하고 어렴풋한 울음소리였다.
그밖에는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 어떤 소리도 우리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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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읽어주시고,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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