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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영 Apr 12. 2020

남자 친구의 흔적을 따라, 쿠바 아바나의 분위기 스폿

#쿠바여행 #Havana


-아바나 까사(숙소) 창문에서 바라본 말레꼰-



비행시간만 17시간.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일어난 시간은 오후 2시였다. 비행의 피로와 시차 적응을 빌미로 늘어지게 늦잠을 잔 것이다. 적당히 불편한 침대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밤새 덜컹거리던 창문에 눈을 돌렸다. 빛이 새어 들어오는 틈새를 오늘 밤에는 꼭 막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창 앞에 섰다.

'우아~!'

눈 앞에 펼쳐진 말레꼰 바다색이 청명한 푸르름을 내뿜고 있었다. 새삼 감격하며 감탄사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나는 지금 쿠바에 있구나.' 어느 허름한 건물 7층의 작고 덜컹거리는 창을 사이에 두고 바깥세상으로 나갈 생각에 갑자기 들뜨기 시작했다.


쿠바에서의 첫 식사를 하기로 한다. 쿠바에 사는 린다 언니와 함께였다. 린다 언니는 첫 식사인만큼 우리가 어느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멋들어진 식사를 하길 바랄 것이다. 쿠바라는 미지의 세상에서 발견하는 미식의 재미도 놓칠 수 없을 테니까!


*쿠바 화폐 1 CUC(쿡)의 환율은 1 dollar와 같거나 거의 비슷합니다.
*현지인 쿠바 화폐 1 CUP(쿱)은 1 쿡의 '1/24'입니다.




알 까르본(알 카본) 레스토랑
Al Carbon


개나리색에 가까운 노란 레스토랑 외벽은 지나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동화 속으로 빠져들어가듯 내부로 들어서면 한 번 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다. 어쩐 일인지 뒤죽박죽 진열된 앤틱 한 소품들이 한데 어우러져 예술작품이 되어 있다. 뒤죽박죽 다른 크기의 액자 속 그림들은 시대와 장르, 스타일을 달리하지만 레스토랑 벽면을 꽉 채워  또 하나의 큰 그림으로 다시 태어났다. 파란색 천장과 쇠창살 문틈으로 들어오는 하얀빛, 싱그러운 초록색 식물들은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자라고 있는 것만 같다.



<드라마 남자친구의 한 장면>


드라마 <남자 친구>에서 송혜교와 박보검이 식사를 한 곳이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더 많아졌을 것 같지만, 이미 이곳은 아바나에서 유명한 맛집이었다. 쿠바 스타일의 데코레이션이 가득한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매력은 물론, 쿠바 전통 음식과 칵테일의 비주얼과 맛이 모두 훌륭하기 때문이다.


동백꽃이 떠오르는 빠알간 꽃이 콕콕 박힌 테이블보가 조금은 촌스러운듯하고, 그게 왠지 더 예뻐 보인다. 테이블 매트 대신 까만 레코드판이 깔려 있었지만 우리가 자리에 앉자, 아쉽게도 직원이 치워버렸다. 주홍빛 조명 아래 스테인글라스 장식이 유난히 반짝거린다. 따뜻한 느낌의 두꺼운 나무 테이블 위에 주렁주렁 매달린 바나나와 그 넘어 요리하는 사람들의 분주한 장면이 한 장의 사진인 것만 같다.


'무얼 먹을까!'

나무판에 빽빽하게 쓰인 스페인어 메뉴 보드는 린다 언니에게 넘겨주었다.


"언니가 맛있는 거 골라줘."


 

린다언니와 제이와 셋이 먹은 식사


 쿠바에 왔으니, 쿠바 사람들이 즐겨먹는 돼지고기 통구이를 시켜보았다. 나이프가 두 개씩이나 수직으로 꽂혀있는 모양새가 무섭다기보다는 재밌다. 껍질의 질감이 바삭바삭하게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쓱싹쓱싹 반으로 갈라 한 입 베어 물었더니 속살은 또 부드럽다가도 쫄깃하여 씹는 재미까지 느껴지는 것이다!


린다 언니 추천의 통 생선구이 요리가 나왔다. 조금 과장해서 내 팔뚝만 한 생선을 통으로 구운 요리였다. 평소에 가지런히 생선 바르기를 좋아하는 나는 쿠바에 와서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언니의 '너 생선 잘 바르네!'라는 별거 아닌 칭찬에 어깨가 으쓱해진다. 곁들여 나온 가지무침과 함께 먹으면 쿠바 생선 역시 꿀맛!


에피타이저 격으로 시켜본 어니언 수프는 고소한 맛이 진해서 빵과 함께 먹기에 좋았고, 랍스터가 들어간 케사디아는 정체불명 쿠바 스타일의 소스에 찍어 먹으면 더없이 맛있다. 그나저나 랍스터가 속재료인 케사디아라니, 이거 쿠바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에린아, 이거 빨대 아니야. 사탕수수야."

이제 보니, 파릇파릇한 허브가 한가득인 모히또에 정체불명의 막대가 꽂혀있다. 사탕수수 조각이란다. 쿠바의 모히또라는 이유만으로도 그 맛이 좋다는데, 사탕수수까지 더해졌다니. 모히또를 한 모금 마시고, 사탕수수 윗부분을 잘근잘근 씹어먹었다. 새콤하고 달콤한 향이 입안으로 화악 퍼졌다. 레몬향이 났다.


쿠바에서 린다 언니와 제이와 함께 한 첫 식사, 이보다 더 완벽할 수는 없겠지!


 

*

Mojito (모히또) : 3.5

Limonada Tropical (레모네이드) : 4

Agua Panna (물) : 4.5

Sopa de Cebolla (양파 수프): 7.5

Quesadilla de Marisco (케사디아) : 12.5

Lechoncito Mamon A Hogado (통돼지구이) : 19.95

Pesca Dia (통생선구이) : 18.75

Termo Pack (남은 음식 포장) : 1.5

Tip (팁) : ?






Yuli bar


식사를 마치고, "와인 한 잔 하러 갈래?" 하는 언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yes를 외쳤다. 언니도 꼭 다시 가고 싶었다는 <Yuli bar>는 <알 까르본>의 바로 옆에 있었다. 눈에 띄지 않아 린다 언니의 소개가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칠만한 곳이었다.


1층으로 들어서는데 손님이 한 명도 없다. 고개를 갸웃하며 '올라!' 하고 인사를 하니, 가게 앞을 지키고 있던 청년이 웃으며 대답한다.

"잘 왔어. 너희들 운 좋은데? 때마침 색소폰 연주를 하는 날이거든."



2층으로 올라가니, 바깥에서 볼 때는 전혀 알 수 없던 루프탑 공간이 나타났다. 눈이 둥그렇게 커졌다. 린다 언니가 방문했던 것을 기억하는 여직원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마침 색소폰 연주가 시작되었고, 까만 밤에 어울리는 선율이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은은하게 울리는 재즈곡부터 그루브 넘치는 팝송까지, 쉬지 않고 쏟아내는 그의 연주가 한 곡씩 끝날 때마다 감동이었다.



메뉴판을 살펴보던 린다 언니가 여직원에게 물었다.

"저번에 먹었던 그 빵 이름이 뭐야? 쿠바에서 먹어본 빵 중에 가장 맛있었거든."

그 빵은 와인을 시키면 나온다는 기본 메뉴였다는 대답에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빵이 나오자마자 한 조각 잘라 소스를 듬뿍 묻혀 먹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에서 먹기에도 지지 않을 맛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녀는 한국에서 왔다는 우리가 맛보면 좋을 거라며 쿠바 전통음식인 '바나나 껍질 튀김'을 내어준다. 우리나라의 동그랑땡 크기의 부침개 같기도 한 그것은 튀김처럼 바삭하면서도 쫀득했다. 따뜻한데 고소하고 담백하여 자꾸만 손이 갔다.


쿠바에서는 쿠바에서 나는 것이 아닌 이상, 재료 공수하는 게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로컬 음식점에서는 풍부한 재료로 만든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을 기대하기는 힘들단다. 정부와 연관이 있는 비즈니스만이 수입품의 범위를 넓게 잡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곳에서는 다른 레스토랑에서 맛보기 힘든 치즈까지 나와서 린다 언니가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영국 로열 발레단의 수석 무용사가 된 쿠바 발레리노, '까를로스(Carlos Acosta)'가 이곳의 주인이란다.  까를로스의 어린 시절 이름이 'Yuli'였던 것이다.


세상에. 우연히 찾은 곳에서 우연히 듣게 된 색소폰 연주만으로도 행복한 밤을 보내던 차에 또 하나의 우연이 더해져 밤의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졌다. 루프탑 한쪽 벽면에서 소리 없이 펼쳐지고 있던 발레리노의 영상만큼은 우연이 아니었다!







*방문해주신 브런치 이웃 작가님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ღ''ღ
*지난 글인 <대체 조지아에 뭐가 있는데요> 서평단.'' 신청 감사드리며, 다음주에 책 발송할게요.

*제이와 함께 한 여행 이야기 입니다.
*저의 쿠바 여행기 속, 린다 언니는 브런치에서 활동하고 있는 쿠바댁린다 입니다! (클릭, 놀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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