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보아오던 그림도 문득 새롭게 다가올때가 있지요. 절대주의 또는 미래주의 작가로 알려진 말레비치의 작품 "Painterly Realism of a Football Player (1915)"을 여행지에서 들린 한 미술관에서 만났을 때 그랬습니다. 절대 추상(무無를 그림)의 극치인 검은 사각형 그림들이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그의 다른 그림들은 웬지 낯설게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말레비치(1878~1935)가 살았던 러시아는 군주제가 폐지되고 레닌이 이끄는 혁명세력 볼셰비키가 정권을 장악하는 혁명의 시대였고, 러시아의 전위파 예술가들은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예술을 위해 파격적인 실험을 마다하지 않는 그야말로 역동의 현장이었습니다. 진보와 평등의 이데올로기는 예술가로 하여금 비구상 즉 추상주의라는 새로운 미술 사조를 탄생시키게 되는데 그 한가운데 있던 사람이 말레비치였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의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색과 기하학적인 형태만을 가지고 구성한 그의 추상작품들은 혁명의 주도세력에 의해 민중을 세뇌시키는 부르조아적인 작품들이라는 오명을 쓰게되었고, 말기에는 검열에 시달리며 다시 구상작품을 하게됩니다. 1932년 작품인 '노란옷의 반신상'이 이 때 그려진 작품입니다.
다시 말레비치의 추상화로 돌아가 봅시다. 볼셰비키 혁명만큼이나 혁명적이 었던 그의 비구상 개념은 이후 독일의 바우하우스,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와 미니멀리즘에 이르기까지 모더니즘 미술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지요. 그런데 그의 추상은 현대 미술에서의 추상과 닮은 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있습니다. 현대미술에서의 추상은 출발점이 무無인데 반해 그의 추상은 종착점이 무無라는 점입니다. 그러다보니 말레비치는 구체적인 사물의 형태를 추상화(abstracting/substracting)의 과정을 걸쳐 기하학적인 순수한 형태의 결과물을 얻어내었습니다. 극한의 추상화의 결과는 '검은 사각형' 이라는 작품이지요. 프랑크 슐츠라는 미술학자는 말레비치의 이 작품을 미술의 발전을 0점으로 돌려놓은 미술의 종말이자 또한 새로운 시작점이라고 평을 했습니다.
이번 워크샵의 주제를 말레비치의 초기/전성기 추상작품으로 결정한 이유는, 순수한 색과 형태만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그의 추상작품을 이해하는 것이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입니다. 워크샵을 통해서 추상화의 과정(abstracting/substracting)을 체험해 보고 또한 색과 형태로만 이루어진 composition을 연습해 봄으로서 순수미술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직접 표현해 보는 기회도 가져보구요.
단지 감상만을 위한 작품이 필요하다면 작품을 구입하거나 작품포스터를 구입하면 간단하겠지요. 그러나 그림은 감상의 기쁨 못지않게 만드는 기쁨도 있답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소중하게 간직했다가 종이 위에 그려보고 그렇게 조금씩 구체화된 스케치를 가지고 canvas를 짜고 젯소를 발라 준비하는 과정, 조심스레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떨리는 마음으로 물감을 풀어 색을 덧입혀가는 과정은, 그 과정 자체가 즐거움이지요. 이번 워크샵은 한달 과정으로 준비했습니다. canvas 짜는 법 부터 하나하나 차근차근... 모든 과정이 주1회(3시간정도) 4번에 걸쳐 진행됩니다. 지난 워크샵과 마찬가지로 모든 재료는 제가 준비하고 여러분들은 설렘과 기대 그리고 행복한 마음으로 참가하시면 됩니다. 장소 관계로 한 session에 4명까지만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 9월에 뵙겠습니다.
(마지막 작품은 El Lissitzky의 작품입니다. 동시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