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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워크샵

Rauschenberg 워크샵

Mixed Media & Image Trasfer

by Erin Ch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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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주의, 순수, 추상... 모더니즘 회화의 대표 진지 맨이었던 말레비치와는 달리, 라우센버그는 만사가 즐거운 팝아트의 전형적인 해피맨이었습니다. 끊임없는 장난기는 다큐멘터리 영화 'Painters Painting'에서도 잘 나타나지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즐겁게 일하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의 즐거운 상상력은 이야기들의 꼬리를 물고 때로는 그림으로 판화로 또 조각으로 보는 우리들을 즐겁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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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장난기 발동은 이 유명한 작품에서 시작됩니다. 당시 뉴욕을 아니 전 세계를 휩쓴 추상표현주의 거장 드 쿠닝의 작업실에 무조건 찾아간 무명의 젊은 화가 라우센버그는 그에게 차마 웃지도 못할 황당한 제안을 합니다. 작품을 한점 주면 그것을 깨끗하게 지워 보겠다는 거예요. 이미 작품값이 상당했던 드 쿠닝은 잠시 고민하다(제 생각입니다만) 당돌한 젊은이에게 드로잉 한 점을 줍니다. 지우기도 쉽지 않을 걸...이라는 멘트와 함께... 드 쿠닝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라우센버그는 그의 그림을 말끔히 지워냅니다. 그럼으로써 드 쿠닝을 드 쿠닝이게 했던 모더니즘 미술이 함께 지워지고 라우센버그는 이제 새로운 미술 팝아트를 시작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이 시작되는 거지요. 그렇지만 라우센버그의 새 그림도 결국 드 쿠닝의 작품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의 관계가 보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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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A에 가면 만나는 이 엉뚱한 조각도 라우센버그의 작품입니다. 박제된 염소에 폐타이어... 잔뜩 물감을 묻혀놓은 널빤지... 우리는 MoMA라는 무게 눌려 무슨 커다란 심오함을 찾게 되지만 라우센버그를 잘 아는 그의 동료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을 겁니다. 그는 한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어느 날 길거리를 지나는데 골동품상 구석에 있는 저 박제 염소를 발견한 거예요. 근데 그 염소의 눈빛이 너무 애틋해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작업실로 데리고 왔지요. 이 가련한 염소의 죽음이 가슴 아파서 새로운 생명을 주기로 했지요. 작품으로 재탄생되는 방식으로요. 그런데 웬일인지 이 염소가 작품 속으로 녹아들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작업실 한쪽에 있는 타이어를 허리에 채웠죠. 마침내 염소는 작품 속에서 행복한 삶을 시작했습니다... (껄껄)"


겉으로 보기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장난기 만으로 작품 쉽게 만드네 싶지요. 그런데 이작품은 Combine Art라는 이름으로 미술사적으로 무척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받게 됩니다. 물과 기름 같았던 회화와 조각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점이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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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Bed'라는 제목의 Combine Art입니다. 길거리 쓰레기통 옆에 버려진 매트리스를 주워다 찢고 붙이고 물감을 묻히고 결국은 액자를 만들어 벽에 걸었습니다. 사물을 사물답게 재현해야 한다는 플라톤식의 예술 개념은 이미 막을 내린 지 오래고 사물은 탈맥락 하여 예술품이 되었지요. 어떤 사람의 삶은 그 자체가 예술이 되어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작품을 한다는 것'이 됩니다. 나의 삶을 돌아보니, 마치 일요일에만 열심히 교회 출석하는 기독교인들처럼, 내 삶은 예술과는 상관없는데 억지로 예술을 한답시고 작품을 조작해 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앞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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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예술은 정말 쓸모없는 것이다."라는 오스카 와일드의 애정 어린 예술 찬가에 덧붙여 저는 "모든 예술가들은 정말 게으르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문자적 해석은 곤란합니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온갖 재미난 아이디어들을 물리적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작업 과정을 통해 실제 작품으로 구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게으르다고 느낀다는 얘기지요. 그래서 라우센버그는 이미지를 직접 븟으로 일일이 그리는 대신 대중매체를 통해 지천으로 널린 이미지들을 그냥 자신의 캔버스 위에 transfer 하는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이것이 Image-Transfer 기법입니다. 일종의 판화 개념이지요. 일반적으로 판화는 하나의 Matrix를 가지고 복수의 동일한 이미지를 reproduction 하는 기법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라우센버그가 시도한 image transfer는 하나의 Matrix로 한번 밖엔 찍어낼 수 없지만, 그 matrix 자체가 one-of-kind가 아니라 이미 복제된 복수의 매체이기에 결국 '동일한 복수의 matrix로 동일한 복수의 image를 재생산'해내는 어찌 보면 새로운 판화의 개념이자 기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좀 어려운 개념이고 제 생각이 다듬어지지 않아 괄호 안에 묶었습니다. 그냥 가볍게 참고만 하세요)


위의 작품은 신문과 잡지를 오려서 종이 위에 붙인 콜라주가 아닙니다. 신문이나 잡지의 인쇄물을 솔벤트(신나 같은 것)에 적셔 잉크를 녹인 후 종이나 캔버스 위에 찍어낸 것이에요. 어린 시절 '판박이' 스티커를 상상해 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화가의 게으름(?)에서 시작된 이 기법은 또 순수미술과 대중 미술의 경계를 허무는 기폭제의 역할의 하게 됩니다. 대량 생산과 대량 복제 그리고 새로운 방식의 이미지 유통 등 삶의 방식이 달라지자 삶이 예술인 일련의 작가들에 의해서 예술의 모습도 계속 달라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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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우연한 기회에 MoMA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마침 라우센버그의 특별전시 중이었어요. 새롭게 만난 작품은 'Dante Drawing'이라는 타이틀의 Image Transfer 연작이었는데, 단테의 Inferno(지옥)를 34개의 드로잉으로 재구성하면서 현대적 해석을 가미한 인상 깊은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들은 1958~60년 사이에 제작되었는데 당시 큰 인기를 끌던 케네디와 재키의 이미지가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이미지가 대중매체를 통해 얼마나 많이 소비되고 있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지요. (34개의 작품을 모두 만날 수 있는 페이지 링크는 https://www.rauschenbergfoundation.org/art/series/dante-drawing )


아래 작품들은 작고 예쁜 소품 같지만 사실은 지퍼들로 연결된 97개의 연작입니다. 일상에서 우연히 만난 가벼운 이미지들, 종이 조각, 천 조각, 그리고 화가의 자유로운 붓놀림들이 서로 즐겁게 어울리는 기분 좋은 작품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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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이번 라우센버그 워크샵은 Image Transfer 기법을 통해서 나의 삶을 재구성해보는 것입니다. 말레비치 워크샵이 삶을 돌아보며 하나씩 내려놓는 과정을 체험했던 것이라면, 이번 워크샵은 나를 구성하는 기억들 경험들 사람들을 내 멋대로 한번 재 구성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체험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거대 담론을 한 작품 안에 구현해 보고자 하는 원대한 꿈은 버리시고, 가벼운 마음으로 지금의 나는 도대체 누구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한번 돌아보는 정도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번 작품은 진실게임이 아니라 내가 주인이 되어 내 삶을 구성하고 있는 작은 것들을 내 맘대로 재구성해보는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상상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랍니다. 거짓말이어도 상관없습니다. 문학도 알고 보면 거짓말(허구) 아니겠습니까?


다음은 라우센버그의 '자화상'이라는 작품입니다. 우리에겐 뭔가 어수선해 보이는 이 알 수 없는 작품도 이 그림을 그린 본인에게는 '딱 나'라는 생각이 들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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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 몇 점 더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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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워크샵은 2-full days로 진행됩니다. image를 transfer 하는 다양한 기법들이 소개되고 동시에 여러분들이 일상에서 찾은 사진이나 매체 이미지들을 한 화면에 재구성하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거창해 보이지만 step-by-step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누구든지 (미술 경험의 유무에 상관없이)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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