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이들에게는 무릎을 치며 공감할 말이지요. 하얀 종이 앞에 마주 선 화가가 느끼는 두려움을 치료하는 묘약은 단 한 가지입니다. 바로 '시작'이지요. 이 두려움은 그림이 낯선 평범한 사람들이나 Brice Marden과 같이 평생을 그려온 유명 화가나 별 다름이 없습니다. '시작'하는 법을 알아가는 것이 바로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짊어진 평생의 숙제이지요. 이건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작가의 개인적 사투이지만 이것도 함께 손을 잡고 시작을 하면 그나마 좀 수월해질 수 있습니다. 이번 워크샵에서는 Brice Marden과 함께 길고 꼬불꼬불한 선을 그리면서 함께 '시작'을 해 볼까요?
그가 처음 이 매력적인 선들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를 생각해 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머릿속에 이런 이미지가 떠올라서 미친 듯이 화폭에 옮겼다고 상상해 볼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습니다. 미술세계에서의 영감은 그런 믿기 어려운 기적의 방식으로 오지 않습니다. 그랬으면 좋겠지만요. Brice Marden은 드가의 그림을 좋아했었던 같습니다. 드가의 발레리나들을 보면서 그림에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림에 담겨있는 발레리나의 아름다운 움직임, 그 몸의 동선이 보였던 모양입니다. 그 동선을 상상하며 선을 그려보았습니다. 그는 발레리나가 아닌 발레리나의 '움직임'을 그렸던 거지요. 드가의 발레리나, 이것이 브라이스 마든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람과 사물의 움직임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다음에는 사람과 사물 사이의 관계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그려보았습니다. 아마도 이런 움직임을 기록하는 게 익숙해 지자 화가는 자신의 눈동자의 움직임(사람/사물 또는 형태가 없는 생각들을 바라보는)을 그리게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마치 안무가가 무대 위의 춤을 상상으로 그려 보는 것처럼이요.
둘째 아들이 고등학교 내내 학교 대표 축구 선수로 활동했는데 그 아이가 출전하는 경기를 관람하는 것이 저에게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내 눈동자의 움직임은 정확히 우리 아이의 움직임과 일치했습니다. 그 아이의 움직임은 그 넓은 운동장을 메우는 여러 가닥의 선이 되어 겹치기도 하고 구부러지기도 하고 멈추기도 했습니다. 초록색 잔디 구장에서 흰색 또는 검정색 유니폼을 입고 뛰는 아이의 움직임은 엄마의 가슴속 긴장감 넘치는 사랑스러운 한 폭의 추상화였던 거지요.
이번 워크샵의 주제는 '두 사람'입니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 일 수도 있겠고, 내가 사랑하는 두 사람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니면 나와 내가 미워하는 사람일 수 도 있겠구요. '두 사람'이라는 주제는 '시작'일뿐 '결과물'이 아닙니다. 브라이스 마든이 발레리나의 동선을 시작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추상화를 완성했듯이, 우리는 '두 사람'이라는 시작점을 가지고 추상화라는 종착점으로 향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과물이 두 사람을 얼마나 잘 표현하고 있느냐는 이번 워크샵과 전혀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이 작업을 시작하게 하고 완성까지 우리를 데려갈 vehicle임에는 틀림없지요. 그러니 신중하게 두 사람을 떠올려 봅시다.
이번 워크샵은 I과 II 두 번에 걸쳐서 진행합니다. 워크샵 I에서는 종이 위에 드로잉 형식으로 진행하고, 워크샵 II는 심화 과정으로 캔버스 위에 유화로 작업합니다. 워크샵 II는 워크샵 I을 하신 분만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각 워크샵은 2회에 걸친 2주 과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