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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ck Close 워크샵

재현의 의미

by Erin Chon

재현의 의미는 모방을 포함하지만 모방만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영어 단어 re-present 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상을 '다시 표현'하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재현은 반드시 '닮음'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인상주의 미술 이후로 이러한 경향은 더욱 뚜렷해졌고, 현대 미술에서의 '재현'은 대상의 주관적 '표현'이라고 정의도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에서의 '닮음'은 커다란 유혹입니다. 사진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그림이었을 때, 우린 감탄하지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모방된 것에서 쾌감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정교하게 표현된 것이 실제가 아니라 모방된 것임을 깨닫는 순간 느끼는 쾌감, 그것이 예술이 추구해야 할 바라 했으니, 똑같이 그려진 그림에 감동하는 것은 참으로 긴 역사를 자랑합니다.


문제는 똑같이 그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똑같음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던 고전 시기에는 뎃생 실력이 곧 화가의 능력을 가늠하는 척도였고, 바로크 시대 이후에는 핀홀 카메라 방식의 보조 기구를 발명하여 은밀히 사용하는 것이 공공연한 영업비밀이기도 하였지요. 현대에는 실제 모델(3차원)을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진(2차원)을 보고 그림으로서 좀 더 쉽게 '닮음'을 달성합니다. 나날이 기술이 발달하지만 여전히 똑같이 그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꼭 닮게 그릴 필요는 없지만 닮게 그리고자 해도 잘 되지 않습니다.


이걸 해결한 화가가 있습니다. Chuck Close이지요. 그는 난독증(dyslexia)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분은 보지만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지적장애가 아닌) 시각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고안해 낸 것이 Grid 기법입니다. Reference가 되는 사진 위에 Grid를 그리고 번호를 답니다. 그리고 종이 위에 같은 숫자의 Grid와 번호를 그린 다음 한 칸씩 옮겨 그리기 시작했지요. 이 방법으로 그는 아주 정확하게 인물을 재현해 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Hyper-Realism이라고 불리는 팝아트가 탄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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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Grid 시스템을 이용해서 그린 거대한 그림입니다. 이렇게 정확하게 이렇게 거대한 크기의 그림은 미켈란젤로도 피카소도 그리지 못했지요. 이걸 해낸 겁니다. 바로 Grid system을 이용해서요. 그렇다면 우리도 이 방법을 이용하면 '닮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요? 네. 그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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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Close는 또 한 번 극복해야 할 장애를 만납니다. 이름도 어려운 희귀병을 앓게 되고 그 후 전신마비라는 큰 난관에 봉착하지만 그는 또 한 번 자신만의 방법으로 장애를 극복하지요. 섬세한 붓놀림을 포기하고 붓을 손에 묶어 Grid를 그대로 살리는 추상화된 붓터치를 이용해서 또 한 칸씩 그려나갑니다. Washington D.C. 에 있는 Portrait Museum에 있는 Bill Cliton의 초상화가 그렇게 그려진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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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se가 또 관심을 가진 분야는 판화 분야입니다. 한 칸 한 칸 시스템을 이용해서 논리적으로 완성해 나가는 그의 그리는 방식과 딱 맞아떨어지는 기법이 바로 판화이죠. 아래 작품 사진들은 모두 판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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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건 Fingerprint로 만든 작품입니다. 그러고 보니 fingerprint도 일종의 print 네요. 이 작품이 바로 우리가 이번 워크샵에서 할 기법입니다. 이 기법은 워낙 과학적(?)이어서 별다른 뎃생 실력이나 재능 이런 거 필요 없어요. 그런데 제 작업이 다 그렇듯이 또 Chuck Close의 작업이 다 그렇듯이,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한 칸씩 옮기는 것이니까요. 이번 워크샵에서는 흑백사진을 가지고 작업합니다. 가족 또는 친구 또는 좋아하는 사람의 사진을 가져오세요. Close의 작품처럼 얼굴이 꽉 찬 사진이어야 합니다. 이 사진을 분석하고 Grid로 분해해서 위의 그림처럼 흑백톤의 그림을 만들 겁니다.


아래 컬러로 제작된 그림은 작은 felt tip으로 물감을 찍어서 그린 작품이고 이것은 겨울에 심화과정으로 한번 더 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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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음'이 보장되는 이 Grid system은 한번 익혀두시면 다양하게 응용하실 수 있습니다. 제가 '보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긴 했지만 모든 작업이 그렇듯이 애정을 가지고 정성껏 작업하셔야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겠지요. 분주했던 여름방학이 지나가고 조용한 가운데 차분히 '닮음'의 미학을 연습해 보시고 싶은 분들 모두를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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