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이다] 김탁환 장편소설
이럴 것 같아서 반년 넘게 차마 읽지 못하고 책상 위 한 구석에 올려놓고 그냥 모르는 척했었다. 세월호 참사 3주기였던 4월 16일, 작정하고 그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네댓 시간이면 충분히 읽을 소설책 한 권을 사흘이나 걸려 읽었다. 한참을 울고 다시 돌아와 책장을 넘기고, 또 한참을 울고... 이렇게 마지막 에필로그까지 작가의 말까지 모두 읽은 후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거짓말이야! 진짜 아니야! 이건 허구야. 소설이잖아?" 상상력이 뛰어난 한 소설가의 기가 막힌 허구였으면 좋겠다. 수학여행에 신이 난 열일곱 살 아이들이 304명이나 죽은 것도 허구였으면 좋겠고, 10센티도 시야가 확보가 안 되는 칠흑 같은 심해의 어둠 속에서 손 끝으로 더듬어 그 많은 시신을 찾아 가슴에 끌어안고 수습한 후 육체적 정신적 트라우마 속에서 하루하루 고통받고 있는 잠수사들의 이야기도 허구였으면 좋겠다.
세월호가 드디어 올라왔다.
'아홉 시신 찾자고 수천억 원 들여서 인양을 해? 살아있다면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야겠지만 이미 3년 전에 죽은 사람들인데... 차라리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게 백배 천배 낫지. 어려운 사람 천지인데...' 인터넷에서만 떠도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인들로 부터도 종종 듣는 이야기다.
나는 아홉 미수습자들의 시신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끝까지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죽은 자 들에게 최대한의 예를 갖추는 것은 살아남았기에 고통 가운데서 살아가야 하는 유족을 위함이다. 또한, 나의 죽음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내가 죽었을 때, 망각된 채 버려지지 않고 또 발가벗겨진 채 치부를 드러내고 나뒹굴지 않게, 누군가가 내 마지막 존엄을 지켜주고 기억해 주리라는 믿음을 갖기 위함이다. 그런 사회적 약속이 없다면 어찌 한순간도 맘 편히 살 수 있을까? 죽음은 삶의 끝자락에 예고 없이 찾아오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인데...
가난한 자로 오셔서 가난한 자들을 위해 살다가 돌아가신 예수님은, 베다니의 시몬의 집에서 옥합을 깨뜨려 당신의 머리 위에 향유를 부은 여인을 칭찬하셨다. 그리고 그 비싼 향유(300 데나리온 짜리-노동자의 일 년 연봉이니 적어도 몇 천만 원짜리)를 차라리 팔아서 가난한 자를 도울 것이지 왜 쓸데없이 낭비하냐고 여인에게 핀잔을 주는 제자들을 나무라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이 여자가 내 몸에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치르려고 한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그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이 여인이 칭송을 받은 것은 그녀가 가진 모든 걸 주님께 드려서라기 보다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가며 그의 장례를 준비하고 그의 죽음을 기억하려는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나님의 아들, 인류의 구원자의 죽음을 기억하는 것과, 3년이나 전에 죽어 형체도 제대로 남아있지 않을 한낱 아이들의 시신을 찾는 것은 다르잖냐는 질문을 하는 기독교인은 없었으면 좋겠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는 예수의 말씀을 적어도 들어본 적은 있을 테니 말이다.
인양비용을 이야기하며 굳이 가난한 자들을 호출하는 현대인들과, 향유의 가치를 따지며 뜬금없이 가난한 자들을 호출하는 예수의 제자들은 참으로 흡사하다. 그들이 가난한 자들을 호출한 이유는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자 함 일 뿐이다. 이들이 말하는 '가난한 자들'은 추상적인 '관념 속 집단'일뿐 실제로 존재하는 '이웃'이 아님은 자명하다.
[거짓말이다]에서 나경수 잠수사(고 김관홍 잠수사)는 '나는 왜 팽목항을 갔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또 독자들에게도 묻는다. 돈이었을까? 영웅심이었을까? 그저 측은지심이었을까? 44미터 바닷속 실오라기 같은 빛조차 없는 그 심연에서부터 참혹하게 훼손된 시신을, 그 많은 시신들을, 온몸으로 부둥켜안고 수습해내야 하는 일을 나는 왜 해야 했을까?
살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그렇게 필사적으로 죽은 자 들을 끌어올린 게 아니었을까? 잘 살고 싶어서... 내가, 내 자식이,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이웃이 잘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