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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n Chon Aug 17. 2022

매일 : No.17

2022년 8월 17일

오스카 와일드는 [거짓의 쇠락](Intentions, 1928)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연이란 대체 무엇인가? 자연은 우리를 낳아준 어머니가 아니다. 자연은 우리가 만들어낸 창조물이다. 바로 우리의 두뇌 속에서 자연은 비로소 생명에 눈을 뜬다. 사물은 우리가 그것을 바라보기 때문에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가 바라보는 대상, 우리가 그 대상을 바라 보는 방식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 예술에 의해 좌우된다.
다시 설명하면, 세계란 다름 아닌, 인간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현실에 대해 품는 다양한 이미지들의 총합이다. 이런 경험들은 제각기 주체와 현실 간의 관계가 빚어낸 결과들이다. 따라서 세계는 내가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에 선행해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세계는 오히려 내 시선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예술적 실천은 세계를 변화시킨다고 할 수 있다.
-"예술적 실천이 세계를 변화시키는가?"라는 2022년 프랑스 대학입시 철학문제에 대한 아이다 은자이 교수의 모범 답안 중에서. [르몽드지] 2022년 7월호.




미술의 역사에서 풍경화가 등장한 것은 비교적 근대에 이르러서 이다. 물론 르네상스 회화 작품에서도 배경으로서 풍경이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지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배경으로서 인물이나 서사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의 일환으로 그려진 것일 뿐, 자연을 주제 삼아 그린 것은 아니다. 자연은 삶의 터전이었고 구성원의 일부였다. 자연을 바라보는 대상으로 타자화 했던 것은 도시에 살게 된 근대인들이었다. 도시의 삶이 본격화 되기 시작했던 낭만주의 시대에 들어와서야 '풍경화'라는 장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실제보다 더 아름답게 그려진 풍경화를 보면서 도시인들은 '전원 생활'과 '산책'을 낭만화 하였고, 예술작품을 감상하면서 배우게 된 자연의 아름다움을 아는 것이 그들의 교양이 되었다.


우리의 눈은 신체 기관 중 가장 주관적이다. '내가 분명히 보았다'라는 말은 더이상 객관적인 증거가 되지 못한다. 우리의 눈은 익숙한 것을 먼저 보고,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차등하여 본다. 풍경화를 먼저 보면 실재의 자연을 더 깊게 즐길 수 있다는 농담같은 이야기는 사실일 수도 있겠다.


예술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예술적 실천이 세계를 변화시키는가라는 질문에는 반드시 그렇다라고 대답하기 어렵다. 예술가는 현실에 발을 딛고 서서 그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가시화한다. 예술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변화는 세계안에 이미 있다.


Day Eighty-Eight, No.17, 전이린, 종이 위에 연필과 아크릴물감, 21cm x 29.5cm,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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