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슬픔을 어떤 방식으로 조각내어 소화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잊어버리는 쪽을 선택했다. 지나온 슬픔들 중 마음속에 오래 머문 이야기가 거의 없다. 어릴 때 부모님께 혼나서 울던 기억도, 10대에 친구에게 받았던 상처도, 20대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도 나에게는 슬픔으로 남지 못한 채 지워졌다.
돌이켜보면 슬픔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기쁨 역시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 기억 속에는 붙잡아 둔 이야기가 많지 않다. 나는 어느새 텅 빈 사람이 되어 있었다. 조금 더 슬퍼해도 되었고, 조금 더 기뻐해도 되었을 일들이 차곡차곡 쌓여갔지만, 이미 지나간 일은 돌아보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야 생각해보니, 나에게는 어쩌면 ‘감정 소화 장애’가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처음으로 이곳을 떠나려 하자, 분명하게 슬프다. 강아지가 매일 산책하던 동네 뒷길도, 귤다방에서 흘러나오던 웃음소리도, 일을 하며 주고받던 “감사합니다”라는 말까지 하나하나 애틋해진다.
이 감정은 흘려보내지 않고 싶다.
이번만큼은, 이 모습들을 잘 기억하고 싶다.
'이 글은 나는 여기 잘 도착했다 중 조미연 작가의 [작은 창문]중 한 문장을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