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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거인을 아이와 함께 읽는다는 것

by 감메자


진격의 거인은 일본에서 2009년부터 연재된 작품이다.
그리고 나는 2025년, 아이를 통해 처음 '진격의 거인'이라는 만화를 알게 되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딸이 진격의 거인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솔직히 말렸다.
거인이 인간을 잡아먹는 잔혹한 좀비물 정도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 남편이 딸과 만화방에서 진격의 거인을 함께 읽고 온 뒤 “읽어도 괜찮겠다”라고 말했다.
아이는 만화방에 갈 때마다 진격의 거인 만화책을 읽기 시작했다. 집에서는 넷플릭스에서 방영하는 애니메이션을 보았는데, 어른이 살펴봐야 할 부분이 있을까 싶어 나도 옆에서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새 나 역시 진격의 거인에 빠져들고 말았다.


진격의 거인은 단순히 거인이 인간을 잡아먹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인류의 구원, 권력과 사상, 증오의 구조를 다층적으로 담아낸 거대한 세계였다.
해석의 지점이 너무나 많아서, 작가의 인터뷰나 다른 사람의 평을 일부러 찾아보지 않고 내 생각을 먼저 정리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전 시즌을 보고 난 지금, 아이의 방학이 시작되면 만화책 1권부터 하루에 한 권씩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먼저 나서서 진격의 거인으로 아이와 공부를 해보겠다고 하는 것이 조금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요즘 크게 인기 있는 <귀멸의 칼날>조차 많은 부모가 선호하는 콘텐츠는 아니니 말이다.


<귀멸의 칼날> 이야기를 간단히 해보자면, <귀멸의 칼날>은 선과 악이 분명하다. 도깨비는 악이고, 귀살대는 선이다. 주인공 탄지로는 연대와 자비를 갖춘 거의 ‘절대적 선’에 가까운 인물이고, 결국 선이 승리한다.

하지만 진격의 거인에서는 그 경계가 흐릿하다.

등장인물 대부분은 ‘인류의 미래를 위한다’라는 대의명분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태어난 곳, 배워온 역사, 겪어온 억압에 따라 ‘미래를 지키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결국 서로의 이상을 위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눈다. 모두가 선하지만 동시에 모두가 악할 수 있다.

이 구조는 오늘날 세계 여기저기에서 일어나는 여러 분쟁과 닮아 있다. 과거의 역사나 현실의 어느 지점에서도 선악이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었다.




위 표는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 단계이다. 아이와 진격의 거인을 보면서 문득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 단계가 생각났다.

우리 아이는 만 10세, 아직 ‘제2수준’에 있다. 이 시기에는 타인의 인정이나 법과 규범을 기준으로 도덕적 판단을 한다. 하지만 실제 사회에서는 다수의 도덕적 선택이 항상 옳은 것이 아니며, 법이 절대적 진리가 아닐 때도 많다.

제3수준은 보편적 윤리 원리와 개인의 양심에 따라 판단한다. 상황에 따라 규칙을 융통성 있게 바라볼 수 있고, ‘나는 왜 그 선택을 하는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콜버그는 도덕적 판단이 성장하려면 자신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사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도덕적 딜레마 토론—서로 다른 관점과 논리를 교차시키는 활동—이 중요하다. 진격의 거인은 아이에게 이 ‘딜레마’를 다양하게 만나 볼 수 있게 한다.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는 단순하지 않다.
각 지역, 각 집단, 각 인물은 모두 나름의 이유를 갖고 있고 그 이유는 서로 충돌한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각 캐릭터를 파악하고

각 캐릭터의 처지에서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추론해 보고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고민해 보고

사실적인 역사가 아니기에 모두 다 각자 처지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고 이해까지 해본다면

비판적 사고가 자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마지막 시즌에서 가장 뭉클했던 장면은 ‘어른들의 반성’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한다. 왜곡된 역사 인식과 증오의 대물림이 아이들에게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 깨닫는다. 젊은 세대, 미래를 살아갈 세대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고 그들을 살리기 위해 희생한다. 인류 멸망을 앞둔 순간에도 갓 태어난 아이를 구하기 위해 어른들이 아이를 뒤로 옮기는 모습은 ‘어른이 가진 책임’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했다.


이사야마 하지메는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일본 우익적 시각이 담겼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일부러 작가의 말을 찾아보지 않았다.

내가 본 진격의 거인은 특정 집단을 찬양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인종 차별과 계급 사회를 비판한 작품이다. 국가 간 분쟁과 혐오가 커지고, 개인과 집단 간 갈등마저 일상이 된 지금의 세상에서 이 만화를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너무 많다.


진격의 거인을 아이와 함께 읽는 일은 결국 서로의 생각을 듣고 세상을 넓혀가는 시간이 될 것이다. 방학이 시작되면 아이와 천천히 첫 권을 다시 펼쳐보려 한다.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지, 나는 벌써 조금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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