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란] “생존의 수단이냐,
향유의 대상이냐”

서세이 Vol. 00A

by 서사서기

Eric Hobsbawm의 저술,《극단의 시대》

비단 20세기만이 아니라 음식을 바라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먹는 것에 큰 욕심이 없고 주어진 여건 아래에서 하루하루 살기 위해 먹거나,
매 끼니의 식사를 허투루 놓치지 않고 만족스럽게 먹기 위해 노력하거나.


'먹는다'라는 궁극적인 행위는 동일하지만, 그저 행위에서 끝나는지 다른 목적의 방식이 되든지.

미묘하게 다른 선후관계가 보이는가.


이 글은 적어도 후자의 사람들에겐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겠으나, 음식이 그저 일상의 구성요소 중 하나일 뿐 전자의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재미있는 글이 아니란 점을 먼저 밝히며 시작한다.

*사학과인 티를 내고자 굳이 책 하나를 서두에 끌어왔다.




2020년을 기점으로 ‘맛집 탐방’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포털에 검색해서 제일 괜찮아 보이는 곳에 적당히 가는 식이다면, 20년대가 시작하면서는 네이버지도에 저장해둔 수천 여 곳의 식당들을 하나씩 방문하는 재미로 살아가고 있다.

이 지도의 수많은 하트들을 대표적으로 분류하자면, ‘식당-카페·디저트-바-맥주와 전통주-세계 음식-다이닝-노포’ 정도다. 그것도 서울에서만. 타 지역의 식당들은 타 플랫폼에 퍼져 있다.

익산에 있을 때도, 세종에 있을 때도, 수도권 외 지역살이에 큰 거부감이 없는 연원이자 일상의 낙이 곧 음식이었고(퇴근 후에 혼자라도 식당들 다니느라 동네방네 쏘다녔으니), 출장이든 여행이든 전국 어딜 가도 항시 그 지역 맛집을 중요시하는 건 여전하다.

돌아보면 군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애청 중인 유튜브 채널들(김사원세끼, 더들리, 맛객리우, 마리아주)과 자유롭게 소방서 밖에 못 나가는 서러움이 합쳐져 탄탄해진 관심사였던 것 같다.

스크린샷_2024-12-03_015432.png 늘리기는 쉬운데 줄이기는 참 어려운 하트들. 최근 들어선 신규 추가를 자제 중이다.

뭐든지 처음에는 미숙하다.

관심사라는 것이 생겼을 때 이를 외부로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소비이기에 패션에 입문할 땐 무작정 명품부터 샀고, 맛집도 마찬가지였다. 유튜버들이 고른 식당들이나 입소문이 나서 유명한 곳들, 코스요리를 팔아서 비싸 보이는 곳들부터 갔으니 말이다. 이름만 대도 누구나 아는 유명한 식당들은 차마 대기할 자신이 없어 지금까지도 엄두를 못 내고 있지만, 여하튼 한동안 안 가본 식당 가보기에 집중하며 지도에서 하트를 지우는 재미로 살아왔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물며, 이 하트 지우기는 지금도 아주 중요한 삶의 원동력이다. 매 순간 어느 하트에서 점심, 저녁과 사랑에 빠질지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맛집을 저장한 기준에 관해 덧붙이자면 그저 '느낌' 이다.

식사 연차가 쌓이면서 '식당 소개-메뉴 구성-간판과 내외부 인테리어' 만 봐도 얼추 그림이 나온다.

사람을 잘 알수록 섣부르게 타인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식당 역시 지나가면서 본 느낌만으론 절대 단정지어선 안 된다. 그럼에도, 경험에 의거했을 때 적어도 '내가 식당으로부터 받은 느낌'과 '내가 그 식당에서 직접 맛본 음식에서 느낀 맛' 사이에 큰 괴리는 없었다.

포털이나 커뮤니티에 우후죽순 올라오는 식당 방문 후기나 SNS 바이럴은 신뢰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셀럽들이 소개하는 식당들을 전혀 참고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고, 다음 글에서 이야기하겠지만 미쉐린 가이드나 블루리본 서베이 등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그저 나의 기준이 뚜렷해졌다는 게 중요한 점이다.


엄밀히 따지면 '맛집을 구분하는 실력'보다는 '방문하고 싶은 식당을 선별하는 능력'이 늘었다고 정정해야겠다.


애초에 '맛집'이란 얼마나 위태로운 용어인가


여러 인간의 취향은 절대 동일할 수 없고, 한 인간의 취향조차 일관될 수 없다.

맛을 인식하고 평가하는 기준부터 다를 테니 2명 이상이 정확히 같은 생각으로 ‘맛있다’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한 사람도 그날 그날의 기분과 건강 상태에 따라 같은 식당에서 같은 음식을 먹어도 맛을 느끼는 게 다르다. 식당 입장에서야 항상 같은 맛을 내고자 노력하겠지만, 이 역시 아무리 정량화된 조리법이 있어도 사람 손을 타는 만큼 간단한 일은 아니다.


결국, 공동체가 제대로 기능하는 사회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게 맛집이다. 혼자 맛있다고 맛집이라 소문내고 다녀서 맛집이 되면 대한민국 자영업자들이 망할 일이 없겠지. 유명인들의 지원 사격을 주로 등에 업고 대중이 한 방향을 지향하게 보이는 것처럼 만들어 이곳은 맛집이란 명제가 검증된 사회적 약속이라 보이는 데 성패가 달려 있다. 그러기 위해 많은 식당들이 대중성 있는 입맛을 잡기 위해 노력하거나, 노선을 틀어서 아예 특정 계층만을 노리는 음식을 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 생각한다.


맛집 탐방, 얼마나 단조로운 활동인가


사실, 성장을 꾀할 수 있는 취미라기보다는 돈을 소비할 뿐인 일종의 여가 아닌가?

밥 먹으면서 뭘 느끼는가. 식사 중 그 음식을 나의 성장에 양분으로 삼을 수 있나? 문자 그대로 신체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 섭취 말고, 자기계발의 측면에서 맛집 탐방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예를 들어, 전국구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들에서 아침부터 웨이팅을 하고, 특정 프로그램이나 연예인을 통해 확 인기가 올라간 식당들을 방문하기 위해 노력하고, 기념일에 비싸고 분위기 좋은 식당들을 예약하는 등... 관심과 열정의 차이일 뿐 누구나 소중한 사람을 만나서는 의미 있는 곳에 가려고 할 확률이 높으니 맛집 탐방을 취미라 하긴 어폐가 있다. 먹스타그램이나 맛집 리뷰 블로그 등을 운영하는 단계부터는 적어도 ‘맛집 탐방’을 즐긴다 당당히 얘기할 수 있는 표징이 생긴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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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한식 삼대장 '청국장/보리밥-부대찌개-평양냉면' 중 유일하게 1일 3식도 가능한 '평양냉면'



이러한 생각들을 거친 끝에 개인적으로 ‘맛집 탐방’을 취미라 외쳐오긴 조금 부끄러웠고, 여가이자 형식 행위로 간주하고 있었다.

이 생각에 한층 변화가 찾아온 것은 2022년 말이었다.

발상의 전환에 특별하게 기점이 된 사건은 없었다.

하지만, 더 많이 - 더 다양한 식당에 가고 싶다는 마음 한편의 욕망이 작용하기 시작했다.

이 욕망의 발현에는 '식사의 사회적 기능과 조건'이 영향을 미쳤다.


"누구를 만나서 이 식당에 가야지"
VS
"이 지역, 이 식당에 가고 싶으니까 누구를 찾아야지"


식사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가장 대표적인 접촉 수단이다.

한국인이 인사치레로 다음에 밥 한 번 먹자는 말을 쉽게 내뱉듯이, 좋아하는 이성과 식사 약속을 어떻게든 한 번 잡아보려 하듯이, 기업이나 정치 영역의 밀담이 주로 식당에서 이루어지듯이 식사의 사회성을 나타내는 사례들이야 수없이 많다.

그러나, 나는 맛집 탐방에 있어서 만큼은 사람 간의 연결성을 소홀히 했다.

(물론 모든 사회 활동에서 식당과 음식을 우선시할 정도로 생각이 없진 않았다. 대학 선배나 직장 상사, 공적 관계의 지인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내 취향의 식당들만 꿋꿋이 고수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으니까. 그런 자리에선 음식 사진도 안 찍고, 입으로 들어오는 음식보단 앞과 옆에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더 중요하니까 체하지만 않으면 성공!)

그러나,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이 누구냐를 논하기 전에 특정 식당에 같이 동행하는 존재로 타인을 대상화하려 해도 제약이 너무나도 많았다. 인간이 쉽게 물상화되진 않기 때문에 더욱이나.


쉽게 말하자면 내가 원하는 대로 뭐든지 다 먹을 수 있는, 음식에 심취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나야 세상에 못 먹는 음식이 없고, 안 먹어본 음식에 도전하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지만, 기호상·건강상의 이유로 음식을 가리는 사람이 태반이다. 혹은 단순히 재료만 듣고 두려움에 휩싸이거나. 아마 평생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식사를 강요할 순 없으니 어쩌겠는가. 30년도 안 된 짧은 세월을 살아오며 정말 편식 없이 모든 음식을 다 먹는 사람을 나를 제외하면 1명 정도 더 만났던 것 같다.

물론 식사란 혼자서도 가능하지만, 위장의 한계상 혼자 모든 메뉴를 다 먹을 수는 없다. 딱히 남 눈치를 보지 않기에 모든 부류의 식당 혼밥을 마스터했음에도 식당 규정상 개인 식사가 안 되는 곳은 어쩔 수 없다.

결국, 20대 중반에 만나는 또래 지인들과 함께 갈 수 있는 식당의 범위가 한정되는 것을 체감했다. 나름의 해결책이랍시고 식당에 쏘다니는 모임도 만들어봤지만 역시나 편식 없는 사람 자체가 없었다. 하물며 음식보단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지극히 동호회스러운 모습이 발견되며 얼마 가지 않아 해체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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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들과 먹기 힘든 해산물 요리이자 못 먹어서 가장 아쉬운 종류. 알고니, 아구수육, 홍어, 뽈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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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이태원은 가야 먹을 수 있는 여러 대륙과 국가의 음식들도 너무 좋다. 한국화 없는 이웃나라들의 현지식도 물론 좋고.




'맛집 탐방'을 어떻게, '식도락 기행'이란 멋진 용어를 사용하는
취미로 발전시켜 왔을까


자주, 여러 가지를 먹고 싶다. 하지만, 마음껏 같이 먹을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먹는 매 순간의 음식을 귀히 여기고 집중해야겠다.

그리고, 내가 이 음식을 어떻게 좋아하는지 고민해야겠다.

이 두 가지 사고가 변화의 시작이었다.

'식도락 기행'에서 '기행'이라 하면 여러 음식을 맛보고 두루 즐기며 보고, 듣고, 느끼고, 겪은 경험을 적는 행위라 한다. 책을 펴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매 식당마다 테이스팅 노트를 적기는 어렵다(이 노트는 맥주나 전통주, 핸드드립 커피를 챙기기도 빠듯하다). 상술했듯 맛집의 허구성에 관해 가지고 있는 소신 또한 잊지 않았기에 식당 소개 채널을 운영하고 싶지도 않다.


결과적으로 남은 건 하나였다.

- 돈 쓰고 맛있었다! 이후 소화와 배설시킨 다음에 잊어버리는 탐방 대신 기행으로 나아가려면,

- 식당보다 식도락이라는 큰 범위에서 음식에 접근하려면,

음식을 친구로 나를 알아가고 키워가는 시간이 그 해답이었다.

그렇게 2023년부터 올해까지 2년 동안은 식당을 방문하며 기계적인 하트 지우기보다는 조금이라도 하나를 더 배우고 체득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아래처럼 '나-음식-식당 간의 관계성'을 고찰하는 질문들을 던져보았다.


맛집 이전에 나는 음식을 좋아하나? 이유는? 어떤 음식을 제일 좋아하지? 싫어하는 음식이 있긴 한가?

이 음식에선 어떤 식재료를 사용해서 이런 맛이 나는 거지? 원래 나야 하는 본연의 맛과 요리사가 의도한 맛에 차이가 있을까? 어떤 조리법과 기구를 사용했을까?

이 식당은 어떠한 구체적인 이유로 성공, 혹은 실패했고, 나의 입맛에는 맞거나 안 맞는 걸까?

음식 지식과 식문화 자체에 통달해서 요리까지 섭렵하는 전문가가 되고 싶은가?

설마 셰프의 길을 지금에서라도 걷고 싶은가?


질문별로 명확한 해답을 찾은 것도 있고, 찾지 못한 것도 있고, 감조차 잡히지 않는 것도 있다.

스스로 정리를 마치지도 않았는데 여기서 구구절절 설명하지는 않고, 확신만 남기겠다.


[v] '음식을 만드는 것'보다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

[v]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이유는 포만감보다 식사로부터 얻는 '경험의 총체'가 흥미롭기 때문이다.

[v] 즐기는 식사의 형태란 외식을 의미한다. 배달, 포장도 아니고 식당에서 생생하게 호흡하며 먹는 음식들에 방점을 찍는다.

[v] 음식의 맛&본질&취지는 기본, 위생과 청결은 전제, 업장 경영과 메뉴 구성은 참고, 서비스와 인테리어는 구경 순서로 경험의 질을 판단한다. 입장하는 식당은 그저 내가 꽂힌 곳들이라 단순하게 정의한다.

[v] 음식과 식문화 관련 지식은 턱없이 부족하다. 식품 전공도 아니고, 그런 공부나 독서를 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언젠가 꾸준히 학습해서 백종원 대표까지는 아니더라도 전문가에 준하는 수준의 지적 기반을 갖추고 싶다.

[v] 일정 수준 이상의 요리는 물론 잘하고 싶다. 그러나, 최고의 음식을 만들어서 타인에게 기쁨을 주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v] 미각이 독보적으로 뛰어나거나 섬세한 편은 아니다. 음식 설명에 따라 최대한 맛을 포착해보려 하지만, 어지간하면 다 맛있게 먹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v] 예전엔 내 입에 맛없을 정도면 폐업하는 게 올바른 수순이었는데 이제 기본 이하의 음식을 잡아내는 내공은 쌓였다. 스스로 일가견이 있다 말하긴 여전히 한심하게 부끄러운 수준이다. 하지만, 그냥 평균은 하는 동네 식당보단 업장만의 차별화된 특장점이 최소 하나씩 있는 곳을 찾는 여정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당연히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


이 문장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다시 써보면


‘가보지 않은 여러 식당에서’, ‘먹어보지 않은 여러 음식을’, ‘경험하는 것을’ 좋아한다.


조금 더 전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해졌다.


그리고 이 ‘좋아함’을 내가 더 원활히 좋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지극히 이기적인 목적으로 고민했다.

스크린샷_2024-12-03_032636.png 당연히 여러 세부 분야가 있을 테고 공식 구분이 따로 있겠지만, 내 생각에만 근거한 분류


위처럼 총 세 가지로 식품 산업의 분야를 범박하게 구분했다.

그리고, 좋아함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며 찾은 내 삶의 방향성과 일치시키면:


한국 사회 미식 산업의 진보에 일조하고 싶다.

- 경영, 투자, 정책 등 다각적인 차원에서 혁신을 일으키고 싶다.



잠깐, 왜 미식 산업이라는 가장 좁은 범위로 한정했는가?


이에 대한 답은 다음 글에서 이어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