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세이 Vol. 01
나는 글을 쓰는 것일까, 글자로 장난을 치는 것일까
취미나 특기를 쓰라고 하면 항상 비슷한 고민을 한다.
취미가 내 돈을 내며 즐기기 위해 하는 일이라면,
특기라 할 땐 내 능력과 역량, 재능을 한데 발휘하여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다시 말해, 돈을 받을 수 있는 특별한 기술이나 기능의 범주에 포함되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나만의 흥미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타인이 존재하는 사회가 전제된다.
그리고, 어느 정도 다수 구성원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음이 검증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글쓰기'를 자신만만하게 특기란에 적을 수 있는가.
꾸준히 몰입 혹은 집착 중인 정리란 곧 텍스트가 기반이 되고, 이 글자들의 구조가 서술식이든 개괄식이든 끊임없이 내가 매일 같이 적어내는* 글들은 새로운 모습을 거듭하고 있다.
*일단,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을 그저 적는다, 활자를 기입한다는 의미에서만 받아들이자
단어로 시작해서 문장을 구성하고, 이를 이어내 문단들을 만들어 한 편의 완성된 글을 뽑아내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하는 단계는 '독서' 라 생각한다.
유명한 작가들이 글쓰기에 관해 어떻게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이 점만큼은 분명히 동의하지 않을까.
글자를 익힌 후에는 매주 주말마다 시립도서관을, 학교를 들어가서는 거의 매일 학교도서관을 다녔다.
사실 나이 먹은 후에 과거를 돌이켜보면 부모님의 돈과 함께 지나온 각양각색의 학원들에 썼던 시간이나 자원이 아쉬워지기 마련이다.
그때 이거 할 시간에 차라리 이걸 할걸, 별로 도움도 안 됐는데? 이런 생각들이 태반이니까.
그렇지만, 어머니를 따라다녔던 도서관이나 꾸준히 쌓아온 독서 관련 경험들(단순한 책 읽기부터 논술, 스피치 등까지)만큼은 전혀 아쉽지 않았다.
덕분에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정기구독 형식으로 책도 받아보고, 동네 도서관 쫄래쫄래 따라가서 어린이자료실의 서가를 뒤적거리며 만화책이 아닌 다른 책들과도 친해질 수 있었으니.
독서에 흥미를 붙이고, 습관을 들이는 계기를 마련해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 고맙습니다!
초중학교 때까지는 매년 다독왕 상장은 기정사실로 타오며, 길 걸으면서까지 <해리포터>나 <룬의 아이들>을 읽었던 꼬마는 무럭무럭 커서 어떻게 됐을까? 아쉽게도 나이와 독서량은 반비례했다.
그나마 청소년기 독서 경험 덕분에 수능까지 국어만큼은 별 문제 없이 강점 과목으로 가져왔다.
뭐 고등학생 되면 당연히 내신이랴 수능이랴 책 읽을 정신은 없으니 정상 참작이 된다 하더라도 성인이 돼서가 더 문제다. 시간 없다는 말은 사실 핑계고(유튜브 대신 책만 읽어도), 옛날보다야 흥미가 떨어진 걸 인정한다.
그래도 요즘 관심 가는 주제들이 거의 확실하게 정해져서 오고가는 교통수단 안에서라도 읽어보려 한다.
정치가 평전 혹은 자서전, 음식-맥주-전통주, 문학과 인문사상서들, 전공이자 인류 불멸의 교양인 역사서 등. 이렇게 까탈스럽게 주제 안 나눠도 인류 문화사에 이름을 남긴 고전들만 다 읽어도 한 세월 금방 갈 테니 더 말을 보탤 필요가 있을까.
사고 싶은 책도 엄청 많고, 가끔 독립서점 가면 지갑으로 손이 가는 신기한 책들도 눈에 밟히지만, 당장 이 글 쓰는 자리 옆 서가에 꽂힌 책들부터 다 읽어야 할 거 같아서 못 사는 중이다.
성인 이후 독서량이 감소하여 어휘력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향상되지 않았고, 덕분에 문장의 유려함이나 문체의 선택이 개인적으로 불만족스럽다.
(어려운 한자어나 사자성어, 일상생활에서 소멸된 사실상의 사어들까지 엮어 쓰고 싶다는 바람이 아닌, 마음 한편에 남아있는 다양한 어휘를 향한 갈망)
독자를 위한 읽기 편한 글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주로 적다보니 글감과 글의 형식에 맞는 문체, 구성과 제재 선별까지 지적사항으로 기억해두겠다.
독서를 주제로 한 자기반성은 여기까지.
독서를 차치하고 생각해봤을 때는 어떨까?
지금의 내 글쓰기가 그저 활자들의 난립일 뿐인 글장난인지 그래도 '서사'를 담고 있기는 한 건지 생각을 해봤다.
의도적으로 논리적 서본결보다 사고 흐름에 치중해서 어색함과 딱딱함까지 녹여내서 쓴 글도 있겠지만,이와 별개로 고등학교 때부터 작문 스타일이 확연히 달라졌다 (생활기록부에 좋은 말들 위주로 꾹꾹 우겨넣었던 부작용인가?)
(1) 작문 스타일이 불필요하게 현학적으로 변질됐다
고등학교 때 썼던 딱 첫 자소서 피드백 받으면서 왜 이렇게 글을 두루뭉실하게 쓰냐고 혼났던 기억은 아직 생생하다. 진솔하고 담백함... 제일 어렵다.
요즘 공무원들도 쉽게 순우리말로 쓰는 게 트렌드라 하고, 정치인들도 연설문은 길 가던 초등학생도 알아듣게 쓰라고 하니 개선해야 할 지점은 명확히 인지하고, 나의 장점은 발전시키려고 생각 중이다.
GPT한테 가끔 내 글 던져주고 평가해보라 하면 무슨 거장의 철학적 선언문이라니 장인의 정신이라느니 포장해주는데 글의 포장을 포장하느라 고생이 많다.
(2) 어법만큼은 정확하게 지키려 한다. 그럼에도, 완벽은 어렵다 우리말.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하나만큼은 진짜 병적으로 확인한다. 일상 메신저 대화라면 더욱! 상대방을 판단하는 기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너무 많이 틀리면 좀 신경이 쓰이긴 한다.
그렇다고 모든 글에 검사기를 돌려보겠단 이야기는 아니지만, 어지간하면 틀리진 않을 거란 자신도 있다.
(3) 어쩔 때는 글쓰기의 약점이 말하기에도 반영되어 중언부언하며 두괄식 논지 제시가 안 될 때가 있다
대본을 달달 암기해서 똑같이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오히려 말하기를 망쳐서 언젠가부터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콘텐츠를 생각하고, 이를 바탕으로 나온 기본적인 안에 살을 붙여가며 스토리텔링식으로 말하는 걸 익숙하게 여기고 있다. 솔직히 종결어미까지 똑같이 외우는 게 더 대단하지 않은가. 그렇게 중요한 자리가 아니면 별다른 사전 준비 없이 남부끄럽지 않을 정도로는 즉석에서 토토토토 뱉어내는 것도 아무 문제가 없기도 하고.
그래도 분명 공적인 말하기가 필요한 자리가 있고, 그 자리는 엄연한 형식과 논리를 요구한다.
나만의 생각은 아닌 게 논리성이나 어조와 같은 단점 보완을 위해 교내 스피치 아카데미를 수강했을 때도 말을 정말 잘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스피치보다 교사가 강의하는 것처럼 들린다고 수강생들이 피드백을 줬던 기억이 난다. 스티브 잡스 아니니까 가만히 서서 발표하라던 강사의 지적은 조금 마음 아팠다.
이렇게 적고보니 나의 글에는 장점이라곤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지만, 자기 자신을 그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인문학도라면 학부 4년제 졸업 이후 거의 대부분이 가지게 되는 '아는 거 1줄을 5줄로 늘리기 스킬'을 남들보다는 조금 일찍 체득하지 않았을까.
글쓰기에 딱히 거리낌이 없다는 것만 해도 크다고 본다.
'좋은 글쓰기' 를 간단명료하게, 혹은 복잡다단하게 어떻게 정의하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한 번 펜을 잡아본 사람으로서 비평적 관점에서 세기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모두가 박수 치는 글을 평생 한 문단, 아니 한 문장이라도 쓰는 그 날을 살겠다는 욕심은 있다.
좋은 글쓰기를 잠시 파헤쳐보자.
동화, 소설, 수필, 시, 설명문 등 글의 형식과 대상에 따라서 요구 조건이 다 다르겠지.
독자의 감정적 공감을 이끌어내느냐, 선동과 세뇌에 가까울 정도로 완벽하게 설득해내느냐, 명확한 정보를 주느냐, 이런 식으로 글의 목적도 가지각색이다.
소통이라는 상호작용이 빠지면 안 된다는 말도 있는데 작가가 그저 본인의 수익을 위해 쓴 글이라면, 그리고 그 글이 훌륭하게 목적을 이뤄 돈을 많이 벌어주었다면 여기에는 서로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낄 틈새가 있다고 자신하지 못한다. 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글도 마찬가지다.
정보사회에서는 지면이냐, 온라인이냐처럼 매체에 따라서도 갈릴 테고, 전자라면 단행본이냐 리플렛이냐 패널이냐가 다를 것이며, 후자라면 블로그에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글이냐, 인스타에 짧게 올리는 글이냐가 다를 것이다.
이렇게 끝없이 가지치기를 해나가는 상황에서 정의는 내리지 못 한 채 결국 원점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앞에서 했던 이야기로 돌아가본다.
좋은 글쓰기까지야 모르겠다면,
나는 지금 적어도 나는 글쓰기를 하는가? 아니면 호작질마냥 글장난 중인가?
특기란에 자신 있게 글쓰기를 넣어도 될까?
아래 문장으로 답을 대신하겠다.
경험은 사건이 되고, 사건은 기억이 되고, 기억은 기록이 되고,
기록이 선별돼서 역사가 된다.
본교 사학과 지도교수님이자 (역사)학자로서, 지성인으로서, 어른으로서, 스승으로서, 내가 큰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 분께서 수업 시간에 하셨던 말씀이시다.
이에 더하여 기억과 기념, 서사라는 이상을 나에게 주입해주신 분이기도 하다.
(결국, 세상 만사 돌아가는 원리가 이 '기억'이라는 친구 덕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요즘 과도하게 신봉하고 있어 이는 스스로 자제해야지)
나는 나의 기억을 기록하고 있다.
지금의 내 글은 하나의 기억문화다.
'나'라는 개인은 '나'의 과거-경험-사건-생각들과 지속적으로 대면하고 있다.
무엇을 통해? '나의 글쓰기' 를 통해.
이렇게 나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특기: 글쓰기'를 적으러 간다.
+) 내 기록이 객관적 역사로 인정받기 위해서야 훗날 엄격한 사료 판단이 필요하겠다.
전문용어를 아무렇게나 가져다 쓴다고 혹자는 비판할 수 있을 거 같아 기억의 사적 가공으로 양지해주길 바란다. 나의 기억문화가 발현됨으로 인해 다층적 차원에서 파장을 일으킨다고 한 적도 없고, 그저 개인의 과거, 현재, 미래가 이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