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ostasis Ep. 01
2025년 6월 24일,
일주일도 채 안 되어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을 그저 그런 날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이 글을 썼기 때문에 오늘의 브런치에 회고로 들어올 수 있겠지.
반년이 지나 머무는 자리를 바꾸려 한다.
아래는 지난날의 감정이 녹아든 글로, 과거에 작성한 글을 다듬어 옮겨왔다.
정치 뉴스를 뒤적이다가 폭발하는 스트레스 끝에 포털 홈으로 넘어갔다가 목도한 이 기사가 발단이 되었다.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50613/131798735/1
사탕 쥐어주신 친절한 사장님 말고 아무도 없는 카페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즉흥적으로 남기는 글
고양시는 중앙 언론에 나와봐야 부동산과 일자리로 귀결된다. 신도시, 재건축과 재개발, 베드타운 이런 식이다. 선거에서 격전지도 아니라 관심을 받은 적도 없고, 같은 1기 동료인 분당과 자조적으로 비교되고는 한다.
그나마 요 근래 가장 조명받았던 게 김포 서울 편입과 경기북부특별자치도였다. 하필 이름도 평화누리특별자치도란 소문이 돌아 '평특자 도민(진)'이라 조소 아닌 조롱을 받기도 했다.
그러니 더욱 지역지가 바깥에선 르포 형식의 글이 거의 없는데 일단 지명이 나온 거부터 반가웠다.
그렇다고 기사를 읽은 후의 감흥이 크진 않았다.
일산 중심부에만 20년 넘게 살고 있는데 중산까지 굳이 안 가도 언젠가부터 길거리에서 노년층이 확 늘어났다. 신도시에 꿈과 희망 가득 안고 진입한 3040이 슬슬 환갑을 넘고 있을 때다. 덕양구야 다른 세상이라 쳐도 3호선의 특정 행정동 라인을 벗어나면 변화를 체감한다. 지금 일산에 남은 청년층은 캥거루 아니면 서울 출퇴근이 대부분이란 것도 인지하고 있기에 새삼 놀랍지도 않았다.
그런데 저 안쪽 동네는 오죽하랴.
구일산에서의 영유아기 이후로 초등학교 입학으로 인해 신도시로 넘어왔다. 중산마을은 산 적도 없고 가끔 올랐던 고봉산 아니면 특별한 추억도 없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동네는 아니지만, 기사를 읽고 나니 영업 종료를 한 달가량 남긴 '일산문고'에 무작정 방문하고 싶어졌다.
마침 일정 없이 쉬는 날이었겠다, 고민 없이 집을 나섰다.
가는 김에 한눈팔고 들렀던 알라딘에 예전부터 점찍어놨던 Fairbank의 『新中國史』가 좋은 상태로 저렴하게 나와 있길래 후다닥 집어 들었다.
그리고, 마을버스를 잡아타고 미지의 동네로 떠나는 것처럼 본래 목적지였던 '일산문고'로 향했다.
일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서점이 세 곳 있다.
"한양문고(舊태영문고), 정글북, 한빛서점"
후곡 학원가에 있어서 문제집과 만화책 사러 뺀질나게 드나들었던 한빛서점은 일산문고처럼 전형적인 동네 서점이다. 가끔 지나다니다 보면 그래도 아직 영업을 하고 있긴 하던데 여기도 언제까지 버티려나 생각이 든다. 나머지 두 곳은 나름 대형서점이고, 어디가 책이 더 좋니(?) 하면서 어릴 때 학급에서 vs놀이를 했던 기억도 있다.
오늘 방문한 '일산문고'도 누군가에겐 그런 장소였겠지.
중산에 학원가가 있었다는 건 솔직히 처음 알았는데 같은 추억을 공유했던 또래들도 있겠거니 싶다.
서점을 둘러보면서 크나큰 감동에 빠졌다면 그건 거짓말이고, 그냥 평범한 동네 서점이었다.
오래된 책과 종이에서 나는 쿰쿰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은 매캐함이 건물의 향과 뒤섞여 땅 아래에서 감돌고 있었다.
비록 10년 전에 와본 적은 없으나 아마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지 않으실까란 생각이 드는 주인아저씨도 곁에 자리한 평범한 이웃이었다.
참고서 위주의 서점이길래 오랜만에 입시 시절의 낙이었던 수능특강 세계사도 펼쳐봤다
덤으로, 단원 구성이 완전히 지역별로 나뉘었던데 공부하기 편해지기야 했다만 이전 수능처럼 시대별 구분이 통시적 기반 쌓기는 좋았던 거 같다.
동네 정취와 이질적이게 유행이 개입된 듯 보이는 한강 작가 작품이 모여있는 쪽도 지나고, 몇 바퀴 맴돌며 무슨 책을 살지 서가들을 찬찬히 탐색했다.
폐업 전 매출 올려드려야지 - 하는 결례보다는 나의 흘러가는 시간 속 점을 하나 찍기 위해 책 하나는 꼭 사야겠다는 결심과 함께 당차게 서점에 들어간 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성인이 읽을 만한 종류로는 정말 대중적으로 잘 팔리거나 한철이 분명했던 책들이 대다수였다.
정체 모를 이들이 쓴 특유의 한국식 수필이나 자기계발서, 21세기식 소설의 전형은 안 읽고 개인적으로 격하하기도 해서 뭘 살까 고민을 거듭한 끝에 -
역사문화를 벗어날 수가 있나.
이 아저씨 책을 고등학교 생기부에는 적었던 거 같은데 막상 제대로 펼치고 씹어본 기억이 없어 큰맘 먹고 35,800원 정가 그대로 긁었다. 심지어 이왕 사는 거 양장본으로!
유독 우리나라에서 잘 나가는 교양서 3대장인 『사피엔스』, 『코스모스』 와 나란히 놓여서 소복이 먼지가 쌓인 채로 주인을 기다리고 있더라. 나머지 두 친구도 집에 있으니 이참에 구색을 맞춰야지.
카페에 와선 서문만 슬쩍 읽고, 이 글 쓰겠다고 노트북을 꺼냈는데 독서의 희열이란.
학부 내내 들었던 역사 넓게 바라보기를 네 페이지로 써뒀을 뿐인데 사학과 교수가 하고 싶어지고, 독일 유학을 떠나고 싶고 그렇다.
주문하면 당장 익일 아침 책이 도착하는 속도에 기본 10% 할인까지 붙으니 온라인 이용의 당위성은 충분,
책을 읽어보고 구매하려면 도서관과 대형 서점에 탄탄하게 진용이 갖추어져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대형서점들 외 다른 곳을 통해 책을 산 게 언제였나 기억이 까마득하다. 심지어 큰 업체들조차 가격 차이가 거의 없으니 보통 구매처가 한 군데로 정착하는데, 그 경쟁에서도 승리하기 위해 중고거래를 공략하거나, 음반과 티켓을 전문으로 함께 내세우거나 하지 않나.
동네 단골을 위한 게 아니라면 우리 옆의 작은 책방들을 살릴 방법이, 아니 그럴 유인이 2020년대에 있을까.
SNS 마케팅 상품이 되고 독서 커뮤니티 등을 운영할 수 있는 독립서점은 젊은이들이 브랜드처럼 꾸려나가는데, 한두 세대 위에서부터 이어져온 마음의 보고는 시대의 물결에 따른 쇠락을 받아들어야 하는가.
책과 사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책을 통해 만나는 공간으로 변주를 시도해 카페나 바 등의 업종을 곁들이는 곳도 많아지고 있다.
유통 구조 최상위의 출판업계부터 힘들다는데 가장 아래에서 시민을 직접 만나는 서점이라면 당연히 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인가.
일산의 근본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시장판 돌아다녀서는 포착하기 어려운 소상공인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
여기까지 생각이 닿았다가 너무 나가는 거 같아서 머리 굴리기를 멈췄다.
오늘은 정말 그런 날이었다.
문득 별 거 아닌 자극을 얻은 날.
의미를 만들고 싶어서 앎을 넣은 날.
(일산문고)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탄중로 324 한선코아 지하 B1층
2026년에 다시 검색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지도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과거 태그한 위치를 찾아 이곳에 함께 붙여둔다.
- 조그맣게 접어두는 세월의 빛바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