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ostasis Prologue
거래가 힘든 글을 브런치에 작성하기로 결심했다.
정확히 어떤 글로 작가 서랍을 한 칸씩 채워나갈지 선언한다.
완벽한 인간이라면 본고가 서랍의 첫 번째 글이었어야 했겠지만, 시행착오를 거친 덕에 진솔한 내면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다른 종류의 글도 추가할 거고, 해야 하니 오늘의 분류가 영원하지 않기를.
정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글을 쓰지만, 정작 글쓰기마저 어느 방식에 고착될 때가 있다.
고등학교 때 글이 현학적이라 혼났던 첫 자소서처럼 미사여구만 덕지덕지 붙어서 쓸데없이 겉멋만 들거나,
인상 깊에 들었던 누군가의 언술들만 여기저기서 끌어올 때가 있다.
흔히 말하는 '전통적으로 좋은, 세련된 글쓰기'에 어려움을 겪는 요즘이다.
논리정연하게 명료한 주제를 전하는 글이 있고,
도저히 한 번 읽어서는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글이 있고,
문장 하나하나가 문학적으로 아름다운 글이 있고,
무엇을 좋은 글이라 하는지 여전히 모르겠지만!
"와, 글 기깔나게 잘 쓴다. 노벨문학상 뭐 하냐" 보다는
"별 내용 아닌데 읽기 편하고, 묘하게 재밌네? 기다려지진 않지만, 가끔 심심풀이로 읽을 맛은 난다."
- 라는 맛을 적어도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느끼길 희망한다.
오묘함에 이것저것 재료도 섞고, 조리법도 바꾸고, 조미료도 첨가해서
다른 맛들도 내보고자 계속 준비해보겠다.
[1] '서세이' 자유로운 사유의 총체
Essay라 생각하면 'Suh-ssay'
말한다고 생각하면 'Suh Say'
브런치 필명인 '서사서기'랑 어감도 비슷하다. 서사가 태어난 이래, 혹은 서사를 바로 세운다.
작명 감각이 그렇게 뛰어난 편이 아니라 옛날에 게임 아이디 정할 때도 힘들었는데 브런치에서 내놓고 있는 일련의 정명에는 흡족한다.
사유의 범주는 무궁무진하다. 특정 시공간의 개입보단 소재에 더 주력하는 글이다.
다만, 인문사회'學'이나 정치·사회 현안 등이 개입하거나 특정 담론을 주도하는 글은 향후 따로 분리할 예정이라 그보단 성찰을 조명하겠다.
[2] 'Chronostasis' 일대기
"Chronostasis"
- 시간(Chronos) 과 ?(Tasis) 의 합성어. 후자의 경우, 명확한 표제어로 등재된 바가 없다.
*여담으로 굳이 어렵게 안 가면 동명의 노래 제목들로 유명하기도 하고.
합성어로서의 본 단어는 '시간이 마치 멈춘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기억' 으로 대중이 사용하는 중이다.
일종의 심리적 환상인데 엄밀한 의미 포착보단 세월의 집적 덩어리일 뿐인 시간에서 찾아내는 아름다움이라 받아들인다. 역사가 세월에 매듭을 지어 시간의 순도와 밀도를 높인다면, 인간이 그 역사를 바라보며 느끼는 황홀감이라 나만의 어구로 Chronostasis를 정의한다.
그렇기에 정직한 Chronicle의 연대기와는 다르다. 미로를 지나오며 마주쳤던 미학과 회한을 발견하겠다.
글을 쓰며 글쓰기의 방향을 정리했듯이 정신이 혼탁할 때는 글을 쓰는 편이다.
꼭 형식을 갖춘 글뿐 아니라 난상토론을 기록하듯 장난치는 글도 여기 포함된다.
타인의 견해를 구하거나, 아예 다른 일에 몰두하며 자연스러운 망각을 기다릴 수도 있겠지만, 시간은 다소 걸릴지언정 적어도 갈피를 잡기에 가장 편한 방식이다.
'자기이해'를 따로 문서로 관리하는 만큼,
학부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일말의 단서를 얻은 것이라 생각하는 만큼,
이처럼 나랑 친해지길 바라는 사람이라 지나간 미래를 글로 남기려 한다.
본 일대기는 20살 대학교 입학 이후를 기준점으로 삼는다.
시계열적 연대기는 아니다. 공백기도 존재한다.
이미 오래된 페이지가 되었으니 정보로도 무가치하니 블로그식의 일상 공유나 활동 후기는 더욱 아니다.
'상황-과제-행동-결과'라든가, 어떤 이론과 기법을 활용해서 이러한 문제를 극복해 성과를 내 다음의 반응을 얻어냈다 - 식으로 소개서에 쓸 내용 정리하는 것도 아니다. 이건 질린다, 좀.
우리는 그렇게 남의 시간에 관심이 없으니 내 시간이 유독 흥미를 끌어내리란 건방진 생각은 없다.
그저 더 알고 싶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첫째로, 무수한 경험 중 사건으로 묶이는 집합이어야 하고,
둘째로, 나와 어떤 구석에서든 교차된 흔적이 있어 기억으로 남았어야 한다.
이 기억을 기록으로 전환하겠다.
브런치 집필 규범조차 형식을 먼저 만들었으니 근래 가속화하는 삶의 형해화에 일조한 것인가?
그 내용을 준수하는 것이 또 다른 문제지만, 괜히 인류의 선배들이 대헌장이나 독립선언을 기록으로 남긴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다짐의 명분을 되새긴다.
뭐, 쓰다가 보면 브런치 서랍도 채워지는데 내 알맹이도 차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