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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냥이마미 Nov 03. 2015

연애는 할수록 어렵다.

그 이유는 역설적이지만, 연애를 더 많이 안해봐서 그렇다.




최근 일이다.

정말 오래간만에 데이트가 잡혔다.

이런 저런 많은 대화가 오갔다. 재밌었다.


그런데 결과는

[ 꽝 ]

이었다.


꽝도 그냥 꽝이 아니라, 완벽하게 망했다.

상대방이 연락을 단번에 끊었다.

그렇게 쌩, 사라지는 경우, 어지간한 진상짓이 아닌 이상, 흔치 않다.


이해할 수 없었다. 간만에 참으로 괜찮았다 생각했기에. 그래서 뭐가 잘못 됐는지 한동안 몰랐다.

처음에는 벙쪄서 생각이 산으로 흘렀다.


- 부끄러웠나?    (10대냐.)
- 피곤했나?       (그래.. 정신적으로 피곤했겠지.)
- 밀당하나?       (……..)


며칠을 두고 곰곰이 생각해보고서야, 겨우 그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어두침침한 방에서 여기 이 물건은 무슨 색인고, 하는 꼴로, 서투르게 더듬었다.

먼저, 난 한번도 이 문제를 마주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위처럼 무겁고 크고 단단했다.

깨부수고 치워버리고 하는 것은 꿈도 못 꾸었다.

지금까지 진단된 것도 겨우 빙산의 일각이며 이것 또한 내가 제대로 판단했다고 진언할 수 없다.

하나는 분명하다, 겉은 온갖 착각으로 번지르르 포장되었지만 내 안에는, 못나고 추한 것이, 오랜 세월 덩치만 잔뜩 커져서 웅크리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삶은 길고 기회는 많다고 자위하며 또 다시 무연애 상태로 늘어져 있을 수 만은 없는 상태라 판단했다.

하여, 그 한심하기 짝이 없는 작태를 공개한다.




단상 하나.


얼마 전, 아는 언니와 같이 밥을 먹고 나서 언니가 이렇게 말했다.


[ 남여사씨, 데이트에서는 남자가 돈 내게 냅둬요. ]


그 말을 듣고 난, 아 내가 번번이 무수리짓을 했구나, 괜히 상대방이 돈 내면 불편해하고, 자존심 상해하고. 맞아, 내가 독립적인 구석, 지기 싫어하는 구석이 좀 있지. 흠, 앞으로는 여우처럼 주는대로 받으리라, 다짐했다.


어쩜 그리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는지.. 속 터질 일이다.


이번 데이트에서, 내 후진 안목으로는 어림도 없을 레스토랑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풍성한 볼거리까지 미리 예약해 놓아 너무나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난 이쯤은 받아도 된댔어.. 하며 당연하게 여겼다.


짐짓 못 이기는 척 받고 말았으면 반은 가거늘, 안하던 짓을 하려니 병신처럼, 여기는 어떻고 저기는 어떻고 훈수까지 놓았다.


언니의 ‘냅두라’는 말은


공주처럼 도도하게 굴라는 말이 아니라,

대접하고 싶은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주라는 것이었다.



돈을 꼭 낸다고 위신이 서는 것도 아니요, 아니 로맨틱함이 세워져도 모자랄 첫데이트에 위신까지 세울 필요 없다.

거기서 기를 쓰고 내 몫을 지불한다고 독립적이고 멋있는 여자 되지 않는다. 번지수가 틀려도 한참 틀렸다. 당당한 여성상은 그런 데서 쟁취하는 게 아니다.


상대방의 호의는 고깝게 여겨서도 안되지만, 하찮게 여기지도 말아야 한다. 이건 인간관계의 기본적인 매너 아닌가? 사회에서 당연하게 적용되는 간단한 원리인데 왜 연애에서는 심사가 꼬이는 건지. 차암 어렵게 산다.

어떤 남자가, 그것도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시간과 노력을 들였댄다. 고마움에 백번 절해도 모자란다. 소중하게 여기고 기쁘게 받아들인다. 끝.




단상 둘.


대학 시절, 정말 좋아하던 과동기가 있었다.

얼굴도 반반하고, 훤칠하게 키도 큰 아이였는데, 연애경험이 전무한 상태였지만 직감적으로 ‘나쁜 남자’ 임을 알았다. (경험도 없는 게, 남자도 꼭 그런 남자를 골라 좋아했다.)


당시 나는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었고, 여러가지 지병도 한꺼번에 앓았고, 만사를 제쳐두고 절박하게 달성해야하는 목표도 있었다. 상황도 복잡하고 마음도 항상 불안했다. 잘 안 되어 상처받을 것이 뻔했는데도 불나방 마냥 뛰어들었다. 어리석은 내 잘못이라 하겠다.


겨우 성사된 ‘데이트’는…. 최악 중의 최악이었다.

어찌나 까탈스럽고 어렵게 굴던지. 조선시대 천한 기녀 신분으로 도련님 영접하는 줄 알았다.


저녁 내내, 싫은 기색을 대놓고 내던 아이는 나중에,


[ 너희 집은 어느 정도 사느냐? ]

[ 네 1학년 성적은 어땠느냐? ]


이런 것을 물었다.



이 아이가 ‘나쁜 남자’였던 이유는 자신이 관계에서 상위를 독점한 것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자길 너무나 좋아하는, 내가 신청한 데이트였으니 기고만장할 수 밖에 없었다. 내 자존감은 친히 밟지 않으셔도 이미 바닥에 눌어붙어있었다.

아무 짓이나 해도 됩니다, 저는 당신에게 눈이 멀어 똥 된장 구분도 못합니다…


누구나, 일대일 대면에서는 감정이 더 날 것으로 드러난다. 상대방의 감정과 상태가 투명하게 보이는 것만큼, 나도 투명하게 보인다. 동등한 위치에서 허풍 떨고, 거짓말로 속이려 드는 건 눈가리고 아웅, 얄팍한 술수일 뿐이다. 그 때, 과동기가 내사정 뻔히 알면서도 빙그레 웃으며 허물없이 대해줬다면, 나중에라도 그 마음 씀씀이가 참 고맙지 않았을까.


사람 관계라는 게, 가운데 추를 중심으로 이쪽 저쪽 기우는 저울과 같다. 더 좋아하는 쪽이 지는 것 같은 연애에서, 미묘한 상하관계는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일방적으로 구애 받고, 데이트 신청 받는 상황에서, 대인배처럼 굴기가 쉽지만은 않다.



허나, 니 자신을 알라.


들어갈 밀당 기술 꺼리도 없는, 한 되도 안 되는 연애 경험치를 가지고, 무얼, 되도 않는 ‘나쁜 여자’ 놀이인가. 상대방이 떠받들어주면 기분 좋은 건 인지상정이다만, 우쭐대서 날아가진 말자. 그래봤자 겨우 몇 시간 짜리 비행이다. 태극기도 아니고 이 바람에 펄럭, 저 바람에 펄럭대는 자존감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로, 얇아뵌다.


내가 거슬리는 것은, 상대방도 당연히, 기분 나쁘다.


그 날 밤, 난생 처음 기절할 때까지 술을 마셨다. 너덜너덜하게 걸레가 된 마음은 술과 함께 꾸역꾸역 토해냈다. 그 상처는 잊은 줄 알았으나 후에 다른 연애에서 삐딱하게 나왔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똥 투척한 격이었다. 구린 것을 던지면서도 냄새가 나는 것을 깨닫지 못했으니, 이번에도 오만방자했다. 습관이 이렇게 무섭다.


난 스물하나가 아니다. 철없어 그랬다, 어려서 몰랐다는 변명은 유통기한이 지나도, 너무 지났다. 정신 차리자.




단상 셋.


참 쉽게 살았다. 날로 먹었다.

어리광 부리면 부리는대로 받아주는 관계를 찾았고, 그렇게 반응해주는 것이 사랑이라 착각했다.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면서도, 상대방이 나에게 기대려고 하면 진절머리가 났다.

난 바쁘거든요, 할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거든요, 그래서 누구 투정이나 허세 받아줄 시간이 없거든요, 하면서 내쳐버렸다. 귀찮고 짜증났다.


적은 투자로 일확천금을 바라는 사람을 돈에 눈 먼 욕심쟁이라고 하는데, 주는 것도 없으면서 일방적인 관심과 애정만 강요하는 이런 심리는 뭐라고 부를까.


정서적 갈취?


인간에 대한 이해도 관심도 전혀 없고, 오로지 이 세상에 내 감정 하나만 존재한다. 유아기 관계 형성, 딱 그 수준이다.


연애라도 좀 할라치면

- 상처 받았다고 질질 짜거나.
-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신경질내거나.
- 뭔가에 실망해 냉, 하거나.


딱 몇 가지 원초적인 반응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니까 영원히 연애 왕초보, 제 1단계에서 단 한발짝도 진척이 없는 것이다.


왜 신파극을 쓰고 망념의 세계로 빠지지 않으면, 울고 불고 하는지.

너도 똑같아, 너도 어쩔 수 없어, 그리 쉽게 재단질하고 판단질하는지. 왜 난 이해받아야만 하고, 상대방은 절대로 이해 못하겠는지.

왜 계속 똑같은 일이 반복 되는지, 왜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핍이 채워지지 않는지..

한번이라도 궁금해보았느냐 말이다.


‘how does the monthly compounded interest rate compared to the force of interest impact the value of option?’

직접적인 삶에 하등 도움이 안되는 이딴 문제 (금융 세계의 큰 흐름을 보는 데도 하등 도움이 안되는 짜잘한 문제) 를 붙들고 있을 게 아니다.

‘왜 남여사는 이 모냥이꼬?’

열심히 날 탐구하고 공부해야 한다.

안 된 연애는 왜 안 되었는지, 된 연애는 왜 되었는지,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는지!

다른 문제도 아니고, 내 연애, 연애사, 연애력인데!


그냥, 무조건, 될 때까지 한번 해보겠다는 태도는

촌스럽고 무식하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수가 계속 된다면… 미안하지만, 멍청한 것 아닐까.




결국 내 무지몽매함, 이기심, 협소한 마음,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이 사단이 난 것임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나처럼 괜찮은 여자를 못알아봤으니 상대방 탓이라든가, 어차피 안 될 운명이었다든가, 하는 결론으로 정신승리한다면 영원히 2차원적인 정신상태를 못 벗어날 것이다.


해결책은 단 한 가지.

이제라도 부끄럽다면 딱 입 다물고, 정신 차리고, 앞으로 같은 실수를 하지 말아야한다.


별 볼일 없는 인간을 좋게 봐주는 건, 부모가 아닌 이상, 너그러운 마음과 폭 넓은 이해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 또한 한 ‘인간’일 뿐이지만 그런 마음을 내주는 순간, 나보다 훨씬 큰 사람이다.


그 마음,

마음을 보자.



마지막으로,

하루종일 정신연령 15살짜리 ‘애’ 데리고 다니며 소중한 시간을 낭비했을 뿐만 아니라

심신은 심신대로 지치셨을 그 분께 깊은 사과드립니다.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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