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의 훈장, 얼굴의 역사

by 이리리


10년 넘게 잇몸을 괴롭히던 돌기였다. 동네 치과의 포기 선언을 듣고서야 찾아간 대학병원에서 의사는 낭종인 듯하니 제거하면 그만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큰 병원다운 무심함이었다. 다음 진료를 예약하고 조직검사를 위한 피검사까지 마친 뒤, 잠시 숨을 돌리려 로비 의자에 앉았다. 병원에는 언제나 아픈 사람들이 넘쳐난다. 저마다의 통증을 안고 바삐 움직이는 인파를 멍하니 바라보며, 나는 집으로 향하던 발길을 잠시 늦추었다.


그 순간, 문득 사진이 찍고 싶어졌다. 방금 전 조직검사를 위해 뽑아낸 피 때문에 불안했다면, 카메라 앞에 앉아 다듬는 내 얼굴은 내가 증명하고 싶은 삶의 활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증명사진을 찍기 시작한 건 십수 년 전, SNS에서 본 어느 아버지의 기록 때문이었다. 아들이 태어난 순간부터 매년 함께 사진을 남기는 모습이 무척이나 근사해 보였다. 나도 나만의 발자취를 남기고 싶었다. 일 년에 한 번, 때로는 두 번, 바쁠 때는 건너뛰기도 했지만, 그렇게 모인 사진들은 어느덧 중고등학교 시절의 앳된 얼굴과 겹쳐지며 꽤 묵직한 기록이 되었다.


사실 올해는 이미 여름에 사진을 찍었기에 내년을 기약하려 했다. 하지만 문득 떠오른 지난여름의 사진은 영 마음에 차지 않았다. 염색한 지 오래되어 희끗하게 드러난 머리칼, 경직된 표정, 어색한 의상까지. 마침 어제 머리도 새로 깎았고 특별히 바쁜 일도 없으니, 오늘의 나를 다시 기록하는 것은 어쩌면 예정된 우연이었을지도 모른다.


병원 로비를 빠져나와 차를 몰고 단골 사진관으로 향했다. 어머니 때부터 인연이 닿아 나까지 단골이 된 그곳은 우리 집안 사정을 훤히 아는 사장님이 지키고 있다. 이른 시간임에도 사장님은 반갑게 나를 맞이하며 어느 노신사의 사진을 보정하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이곳은 대도시의 세련된 스튜디오와는 거리가 멀다. 빛바랜 샘플 사진들, 낡은 컴퓨터와 프린터 소음이 정겹게 어우러진 공간. 하지만 그 낡음은 나에게 퇴행이 아닌 '축적'으로 다가온다. 어머니의 젊은 날부터 나의 중년까지를 모두 지켜본 사장님의 안부는 늘 "어머닌 좀 어떠셔?"라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그건 단순한 인사를 넘어, 우리 가족의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따뜻한 연대의 확인이다.

"여전하세요. 더 나빠지지 않으시니 그만해도 다행이죠."

"그래, 오늘은 뭐 하려고?"

"해 넘기기 전에 사진 한 장 더 남기고 싶어서요."


익숙한 대화가 오가는 사이, 나는 어느덧 촬영용 의자에 앉아 있고 사장님은 이미 카메라 앞에 서 있다. 셔터 소리가 몇 번 울리고, 우리는 함께 모니터를 보며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사진 한 장을 골라낸다. 지난여름의 불만족스러웠던 표정 대신, 한결 편안해진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클라우드에 저장된 지나간 사진들을 하나씩 열어보았다. 벌거벗은 백일 사진부터 학생증 사진, 치기 어린 청춘을 지나 오늘의 모습까지. 사진 속 아이의 겁먹은 눈동자 너머로, 구멍가게 유리창을 깨고 도망치던 그해 여름의 골목길이 겹쳐 보였다. 흑백의 그림자 사이로는 밤마다 이어지던 부모님의 마른 다툼 소리가 서늘하게 배어 나오는 듯했다.

세상과 불화하며 고뇌에 찌들어 있던 청춘도 있었고, 수줍게 누군가를 연모하던 뜨거운 눈빛도 보였다. 술기운에 새벽을 흐느끼던 못난 시절의 얼굴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 모든 혼돈 속에서도, 집을 나서는 나를 현관 위에서 내려다보던 어머니의 애달픈 시선이 사진 구석구석에 숨어 있다가 나타나곤 했다.


젊은 날의 내 얼굴은 참으로 사나웠다. 세상이 내 뜻대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에 분노하듯 인상을 쓰고 있었고, 눈빛은 늘 닿지 못할 곳을 향해 방황했다. 하지만 그 풍랑을 통과해 온 지금의 사진은 어느 때보다 평온하다. 깊게 파인 주름은 삶의 굴곡을 묵묵히 견뎌냈다는 증명서 같고, 살짝 올라간 입꼬리는 이제야 비로소 자신과 화해했음을 말해주는 듯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나의 시작을 기록해 주었던 어머니와 지금의 이 순간을 함께 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사진관 의자에 어머니와 나란히 앉고 싶다는 마음은 이제 간절한 욕심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비록 한 프레임에 담길 순 없어도, 내 얼굴의 주름 속에는 이미 어머니의 시간이 함께 흐르고 있음을 안다.


무심코 시작한 이 일이 이제는 나의 역사가 되었다. 사진을 넘겨보며 다음엔 또 어떤 이야기가 담길지 상상해 본다. 흰머리는 염색약으로 가리는 게 무의미할 만큼 덮여 있을 것이고, 주름은 더 넓고 깊게 길을 내고 있겠지.


그게 무엇이든 내 얼굴은 그 모든 것을 정직하게 담아낼 것이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나는 카메라 앞에 설 것이다. 내가 통과해 온 시간들이 남긴 훈장과 삶이 내게 선물한 하얀 꽃들을 소중히 기록할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표정 하나라도, 그것은 지울 수 없는 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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