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공간아카데미 수강 에필로그
저는 일생의 많은 시기를 사대문 일대에서 보냈습니다.1980년대 정동에 있는 예중에 다녔고, 2000년대 광화문에 있는 신문사에 다녔고, 지금은 자문밖 동네에 살고 있습니다. 역사대중화붐이 불기 전이라 그때는 ( '한양'이라는 지명을 많이 썼었죠) 조선시대 한양이 600년간 있던 수도였다라는 것밖에 아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뒤늦게 많은 역사적 사실이 발굴조사, 연구되고 공공설치물과 표석 등으로 표시되기 시작하면서, 제가 얼마나 무지했던가를 많이 깨닫게 됐습니다.
저는 신문사가 많아서 신문로인지 알았지, 신문(돈의문)이 있던 자리라 신문로라는 지명이 붙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 외에 동음이의어가 뜻하는대로 사람들이 인식하기 쉬운 자리에 자리잡은 것인지, 종묘(宗廟)에는 왜 종묘(種苗)상이 많이 보일까 이런 것도 궁금했습니다.
신문사 옆에는 서린낙지가 있었는데, 재개발로 새로 세워진 빌딩으로 이주하고 그 유명한 낙지골목의 명성도 사그라져가는 듯합니다. 무교동은 중구에 속하는데 그냥 아울러 '종로낙지볶음골목'이라고도 한다고 합니다. 무교동의 골목이 낙지다리처럼 복잡하게 여러갈래로 구불거려 낙지 식당들이 들어섰다고도 하는데, 그냥 누군가 가져다 붙인 얘기인 것 같기도 하고. 피맛골이 재개발로 없어지기 전 생선구이집이 많았던 것을 보면 인근 종로시전 어물전이 가까워서 별다른 냉동시설이 없던 시절부터 이 일대에 어패류 식당이 들어서지 않았나 추측됩니다. 무교동도 재건축붐이 불어 기존 낮은 건물들에 입주한 가게들은 거의 문을 닫은 상태고, '골목'도 옛말이 돼갑니다. 그래도 무교동의 인지도는 여전한지, 다른 동네에 가도 '무교동 낙지' '무교동 골뱅이' 같은 상호간판을 심심치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청계천고가도로가 철거된 이후에도 한참동안 그 거리에는 동네슈퍼, 철물점, 작은 김밥집 등이 남아있었는데, 이제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어 슬펐습니다. 카페전문점들만 그득합니다.
제가 다니던 신문사에는 이스라엘대사관이 입주해있는데, 접이식바리케리트만 가져다놓고 청원경찰 1명이 지키고 있더군요. 그 지역이 전쟁 중인 것을 간접적으로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사대문 안 종로구와 중구의 경계는 언제나 애매했다. 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물인 '광화문빌딩'. 양 구의 필지를 합쳐 지어져 낮은 층을 종로구, 13층이상은 중구 주소를 쓴다. 세수가 많이 나오는 건물이라 두 구청이 양보가 없어, 일정비율로 나눠 받고 있다 한다. 동화면세점, 감리교본부 등이 입주해있다.
신문로풍경, 왼쪽 경찰박물관 외벽에 디지털복원한 돈의문 사진을 걸어놓고 돈의문박물관마을이 있음을 알리고 있다. 오른쪽은 경향신문 빌딩으로 1980년대에는 아직 MBC문화방송과 분사 전이라 이곳에서 방송을 했었다. 옥상에 송출탑이 그대로 남아있다.ㅡ지금은 그냥 장식용
오세훈 시장이 복원하겠다고 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돈의문. 강북삼성병원(삼성 인수 전에는 고려병원) 앞, 2007년 안규철의 <보이지않는 문>이라는 돈의문터를 기념하는 설치미술이 목재와 유리로 만들어졌지만, 교통불편 민원때문에 2018년경 철거됐다. 지금은 멋없는 철제 가림막으로 바뀌었다.
안규철의 공공예술작품을 통해 신문의 유래를 명확히 알게 됐는데, 차량통행민원 때문에 설치비보다 비싼 돈을 들여 철거되고 말았다. 도보이용자의 재미를 앗아버린 차량위주 도시의 상징물이 될 터다.
원래 무교동낙지골목에 남은 '원조'
서린낙지 등 일대 낙지식당이 입주한 종로르메이에르빌딩
빌딩숲으로 변모한 음식점거리. 대부분 재개발을 앞두고 문을 닫았다.
종로4가 사거리에 대각선으로 마주한 종묘와 종묘상. 종로성당 뒤가 종묘 위치다.
종묘 인근의 종묘상이 왠지 친근하다. 종묘 맞은 편 세운상가 등에도 종묘상이 위치했지만 지금은 재개발 이슈 속 접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