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십성 프로그램 SBS ‘궁금한 이야기 Y’를 통해 두 차례 방송되며 큰 화제를 불렀던 ‘강남역 프란체스카’가 실종됐다. 방송에서 얼굴을 블러처리하고 가명으로 소개됐던 그는 한때 파리를 뒤흔든 미술작가 박홍연으로 밝혀졌다. 조현병 증세로 강남역과 성신여대 일대에서 노숙하는 모습이 2021년 6월 4일에 이어 2022년 3월 4일 전파를 탔다.
필자는 2022년 출판한 책 ‘3·1민족성지 태화관은 어떻게 여대가 됐나’를 올 3·1절을 맞아 전자책으로 다시 펴내며 박홍연 작가의 이야기를 추가하기 위해 취재 중, 그가 실종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됐다. 두 번째 방송이 나간 후 불과 3일 만인 2022년 3월 7일 전북 군산시 해망로에서 실종됐다. 최근 군산경찰서에 문의한 결과 “2년이 지난 지금까지 발견됐다는 보고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생사 자체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울서 나고 자라고, 강남에서 거주해 왔던 그가 어떤 연고로 군산까지 갔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해망로가 해변에 접한 도로라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어디서든지 살아만 있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물로 들어갔다면 발견이 영원히 힘들 수도 있다.
실종 당시 키 150㎝, 몸무게 38㎏, 갸름한 얼굴형에 긴 생머리로, 공개된 사진으로 보아 방송에서 본 모습과 비슷하다. 마지막으로 CCTV에 잡혔을 때 검정 가죽점퍼, 검정치마를 입은 것도 같으나 모자는 쓰지 않았고, 끌고 다니던 커다란 짐가방 대신 한 손에 들만한 쇼핑백같아 보이는 초록색 가방만 지니고 있었다. 전북경찰청은 2022년 3월 10일 관할 도민에게 인상착의와 함께 “군산시에서 실종된 박홍연씨(여·63세)를 찾습니다”는 안전안내문자까지 일괄 보냈지만,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궁금한 이야기 Y’ 제작진도 박 작가의 행방불명을 시인했다. “두 번째 방송 당시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돼 치료받을 수 있도록 가족에게 인계했고, 집에서 보호 중이었는데 도움의 손길을 거부하고 사라졌다”고 했다. 방송도 동의하에 내보냈고, 보호자에게 인계한 것으로 끝을 냈다는 것이다. 정신병이 있는 상태의 박 작가에게 직접 동의를 받은 것이냐, 거부하는 이를 억지로 촬영한 것이 행불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냐는 질문에는 “담당 작가가 그것까지는 확인해 주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신장애인을 만인의 구경거리 삼아 수치심을 안기고 그의 실종에 영향을 주지 않았느냐는 윤리적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 같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은색으로 치장해 2000년대 중반 MBC에서 방송된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에 나온 배우 심혜진과 비슷한 느낌을 줘 ‘프란체스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서울 역삼동에서 20년을 살았다는 박 작가는 몇 해째 강남역 일대에서 커다란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노숙과 구걸을 하며 지냈다고 한다. 집요하게 따라붙는 카메라에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까지 고스란히 방송됐다. 2021년 방송에 따르면, 인근 오피스텔에 살던 박 작가는 이웃과 싸우고 형제들도 인계를 거부하면서 정신병과 경제적 곤란이 겹쳐 길거리 생활을 하게 된 듯 보인다. 제작진의 끈질긴 취재를 괴롭힘으로 여긴 탓인지 결국 박 작가는 오랫동안 거주하던 동네에서 사라졌고, 첫 방송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40년 전 파리국립미술학교에 유학하고 한국과 프랑스에서 모두 인정받는 미모의 젊은 여성 화가의 추락은 엄청난 화제가 됐다. 온라인에서는 그와 관련한 게시물들이 수도 없이 올라왔고, 유명세를 탔던 이라 금세 그의 실명과 화려했던 이력이 모두 드러났다. 이를 접한 어느 시청자의 제보로 제작진은 2022년 두 번째 방송을 하기에 이른다. 방송에서는 “9개월 만에 그녀가 돌아왔다”고 했지만, 돌아온 것이 아니라 선정적 방송이 그를 대중에 노출시킨 것이다. 박 작가는 카메라를 피해 모교였던 성신여대 앞으로 이주한 것 같았다. 워낙 떠들썩한 화젯거리였던지라 제작진은 시청률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했는지 다시 촬영에 나섰고 이는 박 작가를 사지로 모는 결과가 됐다.
박 작가는 모교 앞으로 옮겨가 아는 이들이 많았던 고향에서보다 더 힘든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며 비닐봉지에 버려진 음식물쓰레기로 연명하고 있었다. 두 번째 방송의 대부분은 첫 번째 방송의 재탕이었다. 다만 박 작가의 비참한 모습만이 더 부각됐다. 조명과 카메라를 자꾸 들이대니 그는 욕까지 하며 화를 더 크게 냈다. 파파라치에게는 슈퍼스타도 이성을 잃기 마련이다. 인지능력을 완전히 잃지는 않은 것같이 보이는 그는 알아보는 사람들을 떠나 삶을 지속해 보려 한 것 같다. 방송이 그만큼의 자유까지 침범할 권리가 있었을까 싶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였다고 추어올리기는 했지만, 두 번째 방송만은 말았어야 했다. 제작진은 보호자에게 인계했다고 했지만, 사실 그에게는 실질적 보호자라고 할만한 사람이 현존하지 않았다. 2021년 방송에서 경찰은 이미 노년인 언니가 처지가 안 돼 인계를 거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 현지 평론가들에게 뛰어난 평가를 받으며 설치미술작가로 변신한 박홍연은 1991년 파리 시내 살페트리에르성당 부속 전시관에서 변기, 관, 생리대 같은 오브제를 이용한 작품전을 열었다. 성당 측은 신성모독을 들어 24시간도 안 돼 이 작품들을 철거했고 박 작가는 ‘예술의 자유’를 놓고 기나긴 법정 소송에 들어갔다. 성당 측을 작품손상 및 절도 혐의로 고소하는 한편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벌였다. 프랑스 유명신문들에 보도되고 인문사회서적에 다뤄질 정도로 시대적 이슈였다. 최종심에서 승소했지만, 박 작가는 생활고와 정신적 고갈 등으로 작품활동을 이어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구차한 삶이나마 이어가던 그는 자신의 정체가 만인에게 까발려지고 볼거리로 전락한 처지가 영상으로 전국에 퍼지다 보니 더 이상 도망칠 곳을 찾지 못했던 것 같다. 한 사람을 두 번이나 이용해 시청률 장사를 한 방송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유지돼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