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인사동 한복판 ‘3·1독립선언광장’의 가장 높은 곳에 조선총독부의 돌기둥이 서 있다. 서울시가 애초 발표했던 구성계획도에는 ‘총독부 돌기둥 조각’이라는 표시가 분명하지만, 필자가 문제를 제기하자 안내판에는 ‘독립선언서 돌기둥’이라고 은근슬쩍 분식했다.
이 광장은 박원순 시장 시절인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3·1독립선언식이 이뤄졌던 태화관 자리에 조성됐다. 서울시는 태화빌딩 건축 전 철거된 태화관 주춧돌의 존재를 언론을 통해 알고 있으면서도 그해 광복절, 총독부 잔재를 박은 광장을 준공했다.
종로구가 기증한 좁은 주차장 터를 비스듬한 보행로로 만든 탓에 ‘미끄럼주의’ 표지를 바닥 여기저기에 붙인 광장 아닌 광장이다. 비나 눈이라도 좀 내리면 바로 안전사고가 우려된다. 가뜩이나 부족한 주차 공간까지 앗긴 셈이기도 하다.
더 큰 문제는 민족정신의 상징과도 같은 공간을 차지한 석재들이다. 멀쩡히 남아 있는 태화관 주춧돌을 외면한 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건물에 쓰인 기둥과 ‘서울돌’이라는 것들로 채웠다. 이들 돌덩이가 서울 창신동 채석장에서 채굴됐다는 검증되지 않는 지레짐작으로, 천안 독립기념관에 있던 것들을 ‘돌의 귀환’이라는 요란한 행사와 함께 서울의 심장에 꽂았다. 당시 서울시장의 최고 치적이라 내세운 ‘도시재생사업’을 기리는 공적비 세우기식 의도가 엿보이는 이벤트였다. 실제 창신·숭인 지역은 ‘서울 도시재생 1호’ 시범 사업지였다.
독립기념관 측도 “조선총독부 청사는 광복 50주년인 1995년 8월15일 일제 잔재의 청산과 민족정기의 회복을 위해 철거됐고, 청사의 철거 부재를 활용해 독립기념관 경내에 ‘조선총독부 철거 부재 전시공원’을 조성해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전시공원 조성 후 남은 잔여 석재를 2018년 서울시에서 3·1운동 100주년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사용하고자 요청해 그중 일부를 서울시에 기증하게 됐다”고 확인했다.
앞서 필자는 ‘독도 1호 호적자’ 송재욱옹이 사비로 구한 태화관 부재들을 2018년 12월27일, 2019년 2월28일 두 차례 사진과 함께 언론에 공개했다. 사업가 출신 송옹은 1979~1980년께 도시재개발계획으로 태화관이 철거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해체된 부재 일부를 사들여 전북 김제시 금산면 ‘동동동심원(동심원)’이라는 사립공원에 보관해 왔다. ‘민족대표 33인’을 상징하는 주춧돌 34개와 목재, 기와 등을 매입해 복원신청을 했으나, 행정기관의 허가를 받지 못해 무산됐다.
이러한 사실을 공개한 책 ‘3·1민족성지 태화관은 어떻게 여대가 됐나; 지워진 여성교육사 140년 추적’이 삼일절을 맞아 발행된다. 태화관은 한양천도 후 ‘서울의 중심표지석’이 놓인 주요한 자리였으며, 독립운동가였던 건축가 강윤이 태화관 재건축을 맡아 옛 한옥 기와들을 재활용하는 등 그 원형 보존을 위해 애썼다. 또 3·1정신의 영향 하에 이곳에 태화여자관이 설립됐고, 태화여학교가 성신여대로까지 발전하게 된 역사를 모두 담았다. 총독부 기둥과 서울돌은 이 모든 정사(正史)를 말살한 만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