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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Jan 26. 2022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프롤로그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의 어머니는 여자 주인공이 못마땅했다. 결혼은커녕 둘이 만나는 것도 싫어서 여자 주인공을 따로 불러내 모진 말을 일삼았다. 남자 주인공은 어머니에게 예의를 갖추어 설득을 해보지만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마침내 남자 주인공의 인내가 바닥을 드러내고 폭탄 발언을 하고야 만다. 그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사랑하는 아들의 낯선 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뒷목을 잡으면서도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친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TV 앞에 앉아 드라마에 몰입하고 있는 엄마 옆에서, 어떻게 저렇게 뻔한 대사를 할 수 있을까 속으로 구시렁대는 나는 이대녀(20대 여자 사람)였다.




 첫 출산. 열 달 가까이 뱃속에 있는 아이를 어서 보고 싶다는 마음은 간절했지만 예상보다 빨리 찾아온 진통은 날 두렵게만 만들었다. 저녁에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다음 날 점심이 되기 전에 아이를 낳았으니 꽤 오랜 시간 고통을 겪은 셈이다. 산통이 심하면 모성애가 금방 생기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아이 얼굴을 처음 봤을 때 사랑에 빠졌다. 양수에 뿔어서 찐빵 같기도 하고, 좁은 터널을 빠져나오느라 세모가 된 머리를 보니 꼭 만두 같기도 했지만 이러나저러나 예쁜 내 새끼였다.


 출산은 시작일 뿐. 더 힘든 건 육아였다. 조리원에서의 일주일은 그나마 견딜만했는데 친정에서 조리하던 한 달은 꼬박 잠을 자지 못했다. 예민 보스인 우리 딸은 누군가의 품에 안겨야만 잠을 잤으니까. 엄마는 날 어떻게든 재우려고 나 대신 아이를 안고 있었지만 난 마음이 편치 않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낮에도 밤에도 잠을 안 자는 신생아를 돌보던 내 모습은 초췌했지만 그래도 아이는 예뻤다. 한 달만에 집에 돌아와서는 남편과 번갈아 아이를 돌보았다. 내가 밤 11시부터 새벽 3시까지 안고 있다가, 남편에게 맡기고 잠을 청하면 남편은 3시부터 아이가 잠드는 5시까지 안고 있다가 출근하는 일상이었다.


 태어날 때 3킬로그램 남짓. 결코 무겁지 않은 아이지만 계속 아이를 안고 있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모유수유는 왜 이렇게 힘든 건지. 젖을 물려보려 기를 쓰는 한 달 동안 목, 손목, 무릎이 다 성한 데가 없었다. 젊은 나이에 몸이 망가지는 건 아닐까 서러워 울기도 많이 울었다. 밤이면 손목이 북풍이 든 것처럼 시려 잠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도 하나 없이 방긋 웃는 작은 입, 오물오물 뱉어내는 옹알이, 파닥대는 짧은 팔과 다리를 보면 그 모든 서러움이 씻은 듯이 달아났다. 이런 게 엄마의 사랑이구나.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어느 날 아이를 안고 길을 걷다가, 지금은 아침 드라마에도 안 나올 것 같은 그 대사가 퍼뜩 떠올랐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이럴 수가. 그 대사는 결코 진부하지 않았다. 그거야말로 엄마인 내 진심이 아닌가 싶었다. 성인이 다 되도록 키우지 않아도, 신생아 시절 딱 한 달만 아이를 돌보아도 자동으로 튀어나올 말이었다.

 "사랑으로 널 키웠는데, 잠도 못 자가며, 먹지도 못해가며 나를 완전히 쏟아서 키웠는데! 꼴랑 여자 하나 때문에 엄마를 등져? 이 놈 자식아!"

 나는 어느새 드라마 속 못된 시어머니가 된 기분이었다.

 

 내 마음을 다 앗아갔던 딸아이가 올해 열 살, 10대 초입에 들어섰다. 밑으로 두 명의 남동생까지 거느린 든든한 누나로. 아이 셋을 키우는 10년의 세월 할 말이 많지만 드라마 속 시어머니 목소리는 다시 쏘옥 들어갔다. 내가 쏟아부은 것보다 더 큰 생명력으로 아이들이 자라 주는 모습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양가 부모님과 우리 부부의 형제들, 함께 아이를 키워왔던 이웃들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버티지도 못했을 테다. 엄마인 나만이 아이를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만 자라는 것도 아니었다.


 함께 해 온 세월보다 더 빠른 시일 내에 내 곁을 떠날 아이들. 그때 잘 자라주어 고맙노라고 인사하며 떠나보내기 위해 준비를 하는 중이다. 부족한 사랑이나마 담뿍 담아주려고. 후회함 없이 곁에 있어주고, 품에 품어주고, 세상을 함께 배워가려고, 우리는 홈스쿨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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